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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교실에서도 자유롭기를 원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따라잡지 못해 일사불란하게 교실을 통제한다.
 아이들은 교실에서도 자유롭기를 원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따라잡지 못해 일사불란하게 교실을 통제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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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저 눔 자식이 제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또 그러네…."

녀석을 만나면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녀석은 선생이 그러거나 말거나 교실을 놀이터 삼아 이리저리 배회하고 뛰어다닙니다. 뿐만 아닙니다. 글쓰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고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합니다.

"너 이 눔 자식, 가만히 좀 못 있어!"

호통을 쳐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호통을 치면 히죽 히죽거리며 '나 잡아 봐라'식으로 도망칩니다. 다른 선생의 말 한마디에는 꼼짝도 못하는 녀석은 유독 내 말은 귀로 듣고 입으로 퉤퉤 뱉어냅니다.

"뭐요! 왜 그러는데요."

꾹꾹 눌러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최후의 수단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물러터진 선생의 최후의 수단이라 해봤자 별 것 없습니다.

"안 되겠다. 일루와!"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녀석이 움찔합니다.

"일루와서 업혀. 쌤 등에 업혀 공부하자."

등에 올라탄 녀석, 수염까지 낚아채다니

잔뜩 굳어있던 녀석의 입이 금세 헤하고 벌어집니다. 배짱 좋게 말 등허리에 올라타듯 '얼씨구나 좋다' 내 등에 덥석 올라탑니다. 녀석을 업고 수업을 합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꺄르르 웃습니다. 학교에서 내놓으라 하는 천덕꾸러기 녀석을 업어 준 선생에 대한 눈물의 감동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녀석은 깔깔깔 웃어대며 말에 박차를 가하듯 두 손으로 목을 꼬옥 감싸 안고 마구 흔들어 댑니다.

녀석의 엉덩이를 떠받치고 있던 두 손을 놓자 이번에는 말갈기를 잡아채듯 내 수염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턱이 따끔따끔합니다. 녀석에게 복수하듯 엉덩이를 아프도록 꼬집습니다. 녀석은 그제서야 내 수염을 움켜 주었던 두 손을 놓고 말 잔등에서 내립니다.

"아, 왜 꼬집어요! 아프잖아요!"
"아이구, 이 눔 자식아, 쌤 수염은 안 아픈 줄 알어? 글쓰기 싫으면 운동장에 나가 놀라니께."

녀석은 교실 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교실 밖으로 쫓겨나는 것을 체벌이라 여기는 모양입니다. 끝내 교실 잔류를 사수합니다. 이런 녀석과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내 입에서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천덕꾸러기 녀석들... 선생님이 무섭지 않아?

"선생님은 무섭지 않아요" 밉도록 솔직한 녀석들입니다. 영화 <선생 김봉두> 중 한 장면
 "선생님은 무섭지 않아요" 밉도록 솔직한 녀석들입니다. 영화 <선생 김봉두> 중 한 장면
ⓒ 좋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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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글쓰기 공부를 재밌어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바닷길은 늘 행복했습니다. 논술 시간을 재밌어하는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바닷길이 섭섭할 정도였으니까요. 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지난해와는 달리 글쓰기를 원해서 선택한 아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천방지축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예닐곱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한 학년 모두 논술을 배웁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심 없어 하는, 천방지축, 천덕꾸러기 녀석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아이들과의 만남이 늘 즐겁다며 떠벌리고 다녔는데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지요. 그 천덕꾸러기 녀석을 떠올릴 때마다 '그려, 내가 아니면 널 누가 받아 주겠냐'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었습니다. 받아 주지 않겠다 해도 별 뾰족한 수도 없는 처지인데도 말입니다.

천덕꾸러기 녀석들은 다른 선생들의 말 한마디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내 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곧잘 듣질 않습니다.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다른 선생님이 호통을 치면 말을 잘 듣는데 왜 쌤 한티만 그러는 겨?"
"혼내지 않잖아요."

녀석들은 밉도록 솔직합니다. 나는 험악한 해적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려 봅니다.

"그려? 이 눔 자식들이 니들 한번 혼나 볼래? 쌤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지?"
"에~, 안 무서워요."
"좋아, 그럼 오늘부터 쌤도 진짜루 소리치고 화내고 벌 세운다!"
"안 그러실 거잖아요."
"그려?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이눔들!"

아이들의 폭력적 행동... 원인은 딴 데 있었다

두고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하나도 없다는 듯 녀석들은 들은 체 만 체합니다. 얼핏 보면 녀석들은 아주 자유로워 보입니다. 제멋대로 자유로움에 익숙한 것 같지만 결코 자유로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압적인 교육에 눌려 있어 보입니다. 

녀석들은 강압적인 교육에서 오는 불만을 나처럼 헐렁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분풀이하고 있는 듯합니다. 녀석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면 화를 내고 소리치고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무엇인가를 내던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아이들을 휘어잡지 못한 탓'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한편, '인권을 존중해주는 자유로운 교육'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로움에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천덕꾸러기 아이들의 폭력적이거나 대책 없는 행동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억압의 분출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세 군데의 초등학교를 오가며 아이들과 방과 후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학교 아이들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 교실을 아주 재미있어하지만 또 다른 글쓰기 반 아이들은 글쓰기 자체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제멋대로 교실을 싸돌아다니지도 않는 녀석들이었는데 합창하듯 "쌤 글쓰기 하지 말고 놀아요!"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녀석들의 고통스러운 간절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수다 떨어가며 놀메놀메 하구 있잖어? 왜? 글쓰기가 싫어?"
"예!"
"얼씨구, 쌤이 재미없나 보네."
"아니요, 그게 아니구요, 그냥 글쓰기가 싫어요."

"그려…. 글을 억지로 써서는 안 되지…. 근디, 글쓰기 공부를 하겠다고 너희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잖어. 그래서 이 교실에 온 것이고."
"아녀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녀요. 엄마가 하라구 해서 하는 거예요."
"잉? 너희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구?"
"예."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신나게 놀고 싶어요." 

원하지 않는 글쓰기는 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뭔 짓인가?' 글을 억지로 꾸며서 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한 달 넘게 속내를 감추고 억지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나는 또 뭐란 말인가? 그동안 돈벌이를 위해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단 말인가? 아이들이 놀아야 할 시간을 빼앗고 있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아이들과 나, 모두가 글쓰기 교실에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다면 나 또한 그 시간에 바다에 나가 밑반찬 고기를 낚아 올리거나 밭에 나가 흙하고 놀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글쓰기 교실을 없애면 모두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곧바로 학교 측에 요구했습니다. 부모가 아닌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과 후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게 해달라고. 아이들이 원치 않는 글쓰기 교실이라면 당장 그만두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가르친다면 그것은 사기꾼들이 하는 짓거리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죽도록 패주고 싶다'던 녀석의 글

교실에서 천덕꾸러기 아이들의 자유로운 몸짓은 강압적인 통제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그 반항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강력한 몸짓인 것이다.
 교실에서 천덕꾸러기 아이들의 자유로운 몸짓은 강압적인 통제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그 반항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강력한 몸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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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업혀 내 수염을 움켜주었던 천방지축 녀석과의 관계는 좀 나아졌냐구요? 여전히 천방지축입니다. 하지만 녀석은 아주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녀석이 돌아다니거나 말거나 짐짓 무관심하게 대했더니 녀석이 슬그머니 내 뒤로 다가와 등을 툭 치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뒷걸음질치며 물러납니다. 때는 이때다 싶어 은근슬쩍 말을 건넸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께,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번 써 볼래?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께 한 줄이라도 써 봐라."

녀석은 나를 쓱 치켜 올려보더니 휙 하니 교실을 한 바퀴 돕니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앉아 하얀 백지 위에 뭔가를 적어 놓고 내 앞에 툭 던져 놓습니다. 뭔 얘기를 썼을까요. 잔뜩 기대하며 교실 바닥에 나뒹구는 녀석의 글을 봅니다. 녀석이 내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쓴 글은 아주 처참했습니다.

'다 때리고 싶다. 죽도록 패주고 싶다.'

녀석이 교실 저만치 뒤편에서 힐금거리며 나를 봅니다. 살짝 웃어줬더니 녀석도 멋쩍게 웃음을 보냅니다. 녀석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를 기다려 물었습니다.

"근디 말여, 왜 죽도록 때리고 싶은 겨? 이번에는 그 이유를 한 번 적어 보면 어떨까?"

녀석은 선생에게 혼날 줄만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다시 종이 앞에 섭니다. 낙서하듯 거침없이 한마디 적습니다.

'그냥 미워서.'

"그려? 왜 미운 디?"

이번에도 말 한마디 없이 개발새발 휘갈깁니다.

'나를 싫어 하니까.'

'니가 애들은 괴롭히니께 애들이 널 싫어하지'라고 말해 주려다 그만뒀습니다. 녀석이 죽도록 패주고 싶은 '모두'에는 선생인 나도 포함돼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녀석이 내 등에 업혀 수염을 움켜잡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녀석을 볼 때마다 '아이구, 저 눔 자식이'라며 한숨을 내질러 골치 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녀석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업어준 것이 아니라 골칫거리를 잠재우기 위해 업어줬다는 것을 녀석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니가 하두 수업시간에 돌아다녀 골치 아프게 해서 그렇지 나는 너를 싫어하진 않는디…."
"나는 쌤이 싫어요!"
"진짜냐?"
"쌤, 쌤은 왜 수염을 기르고 다녀요?"
"자식이 딴소리 하기는…. 그래, 수염? 수염이 자꾸만 나니께 그냥 기른다 임마."
"에이, 거짓말 말아요."

몰랐습니다... 녀석이 손을 내밀고 있었음을

그렇게 녀석은 '죽도록 패 주고 싶은' 내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 또한 그동안 녀석에게 진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천덕꾸러기 녀석의 자유로운 몸짓은 강압적인 통제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습니다. 그 반항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강압이 아닌,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강력한 몸짓이었던 것입니다. 녀석은 나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녀석의 대책 없는 손내밀기가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 군대나 다름없었던 교육 환경에서 강압적인 교육을 받아온 내게 낯설게만 다가왔던 것입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녀석을 만나면 손을 잡아 주겠다는 자신감이 사그라지곤 합니다. '아이구, 저 눔 자식이'라며 한숨을 내지르지 않을 자신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녀석 스스로 글쓰기 교실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녀석이 낯설게 내민 손을 끊임없이 잡으려 할 것입니다.


태그:#글쓰기 교실, #천방지축, #강압적인 교육과 폭력성, #돈벌이 가르침, #마음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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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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