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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큰 아들 인효 녀석이 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느닷없이 집에 왔습니다. 금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충남 홍성에서 1시 30분 열차를 탔다는데 다 늦은 저녁에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장장 7시간. 네 차례에 걸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녀석은 집에 오자마자 기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뭔 사고를 친 겨? 뭔 일 있는 겨?"
"아니, 그냥 왔어."
"집이 그리운 게로구나?"
"아니 그런 건 아니구, 그냥."

녀석의 낯빛이 지쳐 있습니다. 말 많은 녀석이 말이 짧아졌습니다.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바리바리 보따리 싸들고 기숙사 생활을 하기 위해 충남 홍성으로 떠난 것이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 녀석이 벌써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녀석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해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 '음유시인'을 꿈꿔왔습니다. 입시에 시달려야 하는 일반 학교생활보다는 노래할 여유가 있으리라 여기고 풀무학교에 지원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빡빡한 학교 일정 때문에 그럴 짬이 쉽게 나질 않았던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다 좋고 형, 언니(풀무학교에서는 누나를 '언니'로 부르고 있음) 친구들도 다 좋은데, 학칙이 너무 까다로워."

학칙 싫다던 아들 녀석... 머리까지 갈색으로

우리 집 앞바다. 큰 아들 인효 녀석이 곰순이를 데리고 나와 인상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앞바다. 큰 아들 인효 녀석이 곰순이를 데리고 나와 인상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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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학교 기숙사 한 모퉁이에 따로 텃밭을 가꾸고 있다며 기분 좋게 떠벌여 대던 녀석이었는데 1학년 2학기에 들어서부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가 다 돼야 취침을 하는데도 그런 학교가 너무 맘에 든다고 했던 녀석이었는데 말입니다.

녀석이 반항기로 접어들면서 까다로운 학칙을 들먹이며 몇몇 선생님의 눈총까지 받아가며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인 내가 보기에도 꼴사나워 보였습니다.

"아이구, 자식이 그 머리... 그거, 너 머리 좀 원상 복귀 하믄 안 되겠냐?"
"그냥 한번 해 보려구."
"그냥? 그려, 그래라 니 머리 니가 알아서 해야지,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녀석이 싫증나면 언젠가 머리색을 원상복귀하겠지 싶었습니다. 녀석의 반항은 머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학칙을 어기고 누구 생일, 아이들과 함께 몰래 밤중에 치킨을 사먹었던 일. 묵학 시간(저녁 밥 먹고 오후 10시까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에 PMP로 영화를 봤던 일. 시험보기 일주일 전에는 외출이 금지돼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교문 밖을 나가 치킨을 사먹었다고 합니다.

학교 앞 다리 밑에서 감자를 구워 먹기 위해 작당을 하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디 이것뿐이었겠습니까? 몇몇 과목을 제외한 학교 수업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학 같은 수업 시간에는 멍 때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칙을 중요시 하는 학교에서 골머리 아픈 녀석으로 찍혔을 것입니다(동생 인상이가 풀무학교에 면접시험 보았을 때 네 명의 선생님들 중에 세 명이 학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을 정도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올바름' 속에 널 가뒀구나

결국 녀석은 1학년 2학기 때, 방학도 아닌데 일주일 동안 집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녀석이 원한 것이었지만 학칙에 대해 생각 좀 해보라고 학교에서 나름 배려를 해준 것이지요.

녀석이 집에 있는 동안 전에 없이 '진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로 학칙에 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실 녀석이 어긴 학칙은 일반 고등학교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아이들과 한바탕 싸움질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녀석이었기에 몰래 치킨이나 피자를 사먹고, 학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집에 오는 날이 거의 없다보니 금지된 외출을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모르지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학칙을 어겼을지도.

"아빠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풀무고등학교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지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너무 심한 거 같어. 사소한 것 같고 전체회의를 열어야 하고... 너무 답답해."

"만약에 그 학칙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못된 사람들이라면 그 학칙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너희 학교는 다르잖어. 니 말대로 하나같이 좋은 선생님들이잖어. 거기다가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맘껏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잖어. 몸은 고될지 몰라도 생각만큼은 자유롭잖어."
"그건 그래. 그래도 답답해."

"너는 인마 아주 행복한 거여. 일반 고등학교서 공부하는 친구들 생각해봐. 입시에 시달리는 그 친구들 생각하면 이런 불만은 사치여. 그 친구들한티 니가 미안하게 생각해야 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빡빡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아빠는 니가 학칙을 어긴 걸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녀. 니들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여. 공동체 생활에서는 너 혼자가 문제가 아녀. 작고 사소한 것을 어기게 되면 자칫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그걸 걱정하시는 거지."
"작고 사소한 것까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선생님들도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걸?"

"암튼 기타 칠 시간이 너무 없어."
"묵학 시간에 하믄 안 되냐?"
"안 돼."
"왜 안 돼?"
"학칙이 그래."

기타를 붙들고 그토록 하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없기에 무척 답답할 것이었습니다. '그런 힘겨움을 이겨내야지만 좋은 노래를 만들어 노래할 수 있다'고 교과서 같은 말을 해주려다가 그만뒀습니다. 1학년 때, 한미FTA 반대 촛불집회 서울 원정, 홍대 앞 놀이터공연을 하기도 했던 당찬 녀석이었지만 '올바른 학칙'에 대한 강요에 힘겨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보약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듯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녀석에 올바른 것만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풀무고등학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성을 키워내는 훌륭한 학교다. 거기에 사소한 학칙이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그 틀을 견뎌내야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 녀석에게 자유롭게 살아가라 말하면서 규정지어 놓은 '올바름'이라는 틀에 가둬 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려, 사실 아빠 말에도 한계는 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니가 혼자서도 충분히 자유롭게 좋은 노래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학교 그만둬도 좋다. 지금 기숙사 생활비로 들어가는 비용을 너한테 다 줄테니께, 그것으로 니 맘대로 해봐라, 기타 들고 홍대 앞을 떠돌아 다녀도 좋고, 그 돈으로 작곡 할 수 있는 음악 장비 구입해 집에서 노래에만 열중해도 좋아, 아니면 그 돈으로 맘껏 여행을 떠나든지, 결국 니가 선택할 문제인 거 같은데?"
"... 생각해 볼게."

"높게 높게 날아서 발 밑 세상을 볼 거야"

인효 녀석은 노래를 통해 끝없는 자유를 꿈꾸고 있습니다.
 인효 녀석은 노래를 통해 끝없는 자유를 꿈꾸고 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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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며칠 후 녀석은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학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답답한 학칙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뒤로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나름 적응하고 있었던 녀석이었는데 이번에는 뭔 고민이 있을까? 녀석은 기숙사로 떠나기 전날 밤까지 내내 노래를 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2학년들은 곧장 실습지로 떠나게 된다고 합니다. 녀석은 2주 동안 약초 키우는 농장에서 '빡세게' 농사일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작곡 좀 했냐?"
"몇 곡 정도..."
"그럼 인마, 아빠한티 선보여야지."

녀석은 휴대폰 녹음기를 작동시켜 놓고 이번에 새롭게 작곡했다는 <달빛으로>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녀석 말대로 아직 다듬어야 할 곳이 많지만 그런대로 들어줄만 했습니다. 예전에 잘 소화하지 못했던 높은 음이 시원스럽게 올라갔습니다.

<달빛으로> - 송인효 작곡 작사 노래

오~우~ 저 달~ / 오~우~ 달빛에 실려
어둠 속에 은은하게 고요하게 / 차겁고도 무심하게 빛을 내고
회색빛은 쪽빛으로 변해가다가 / 고요한 이 밤에 나와 같이 걸었네
어제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 아주 작은 나에게도 찾아와서
아프도록 내 심장을 주무르며 / 날 둘러싼 이 세상을 부정하네

오~우 숨이 차 / 오~우 이 설렘
오~우 날고파 / 오~우 달빛에 실려
허우~허우~ 가벼웁게 / 허우~허우~ 다 버리고
허우~허우~ 너에게로 / 허우~허우~ 달빛으로

내 머리위에 저 달이 있는 거조차 / 잊고 있을 때가 아주 많아
저렇게도 아름답게 빛나는데 / 고개 들면 날 부르고 있을 텐데
달에 실려 날아가려 하는 건 / 이 현실을  피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냥 높게 높게 날아서 / 내 발 밑에 이 세상을 볼 거야

허우~허우~ 가벼웁게 / 허우~허우~ 다 버리고
허우~허우~ 너에게로 / 허우~허우~ 달빛으로
허우~허우~ 남김없이 / 허우~허우~ 비워내고
허우~허우~ 내가 찾는 / 허우~허우~ 달빛으로
나~나~나~나~나~나~나~나~

▲ <달빛으로> 송인효 작사 작곡 노래. <달빛으로>
ⓒ 송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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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풀무고등학교의 공동체 생활이 때론 답답하다고 말했지만, 노랫말에서 엿볼 수 있듯 훌훌 벗어던지고 달빛으로 날아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어 할 정도로 내면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의 나이 올해 열여덟, 녀석뿐만 아니라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은 녀석의 노래 <달빛으로>처럼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합니다. 달빛으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로 내면의 자유를 갈망합니다. 사회의 관념과 틀 속에 틀어박힌 시각으로 보면 '현실 도피'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녀석이 오죽하면 '현실 도피가 아니다'라는 노래 말을 끼워 넣었겠습니까? 달빛 향한 자유로운 갈망은 세상이 정해놓은 '옳고 그름'이라는 부조리한 틀 속에서 벗어나 본래의 마음 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녀석이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가끔 오늘처럼 공동체에서 문제가 생기면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아야겠다, 머리아파 죽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3시간 가까이 걸쳐서 회의를 하다 보니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내가 풀무에 다니는 이유를...! 아프면서 자란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네요.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갈 때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옳은 것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품어 안아야 합니다..."


태그:#노래하는 아들, #풀무고등학교, #학칙, #아름다운 것들, #달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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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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