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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에서 좌측부터 어머니, 이모, 삼촌 이며, 뒷줄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 젊은 시절 외갓집 가족사진 앞줄에서 좌측부터 어머니, 이모, 삼촌 이며, 뒷줄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 유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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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조심히 다녀와라."

구수한 전라남도 사투리, 40년 넘게 서울생활을 해도 고향의 말투를 버리지 못한 나의 외할머니(김명님, 75세)께서 외출하는 어머니(강수용, 53세)에게 던지는 말이다. 어머니는 "엄마, 먼데 안 가니 걱정하지마. 은총아, 할머니 잘 돌보고 있어"라는 말을 하고 외출한다. 어머니가 말한 '할머니를 잘 돌보고 있어'라는 말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예의 없다고 들릴수도 있겠지만 나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면 결코 예의 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2008년 6월 외할머니는 외아들 내외와의 갈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가상성 치매(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에서 자제력을 상실하여 치매와 같은 상황)'를 앓게 된다. 외할머니는 1남 2녀에 남편도 일찍 여의고 홀몸으로 자녀를 키워온 '억센 범띠' 전라도 여자였다.

그런 외할머니에게 '금지옥엽'같은 외아들은 할머니 인생에 희망이었다. 그런 희망이라 생각한 외아들의 행동에 75년 인생을 아들을 위해 살아온 외할머니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외할머니와 같이 살던 외아들인 삼촌은 병든 할머니를 둘째 이모에게 맡겼다가 삼촌과 12년 터울이 나는 첫째 누나인 나의 어머니에게 맡기게 되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외할머니와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죽일 놈의 치매', 3년간의 전쟁

점차 호전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제일 즐거워 하셨다.
▲ 어머니와 치매를 앓았던 당시 외할머니 점차 호전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제일 즐거워 하셨다.
ⓒ 유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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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말 외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오셨다. 여러 집을 거치는 동안 외할머니의 심신은 쇠약해졌고, 치매증상은 심해져 결국 외할머니가 낳은 자식과 나를 비롯한 손자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정도가 됐다. 어머니는 우리집으로 오신 외 할머니가 자신을 보고 한 말을 아직도 잊을수 없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외할머니의 첫말은 "누구요, 아줌마는?"이었다.

큰 딸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과 남동생 내외가 미웠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아버지(유경배, 59세)와 장남인 나(유은총, 27세), 그리고 동생인 충만(25)이에게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이 컸다고 우리에게 어머니는 고백하셨다.

외할머니의 치매증상은 사람을 못 알아보는 단순한 현상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환영을 보고, 가정 집기를 파손하고, 수시로 집밖을 나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김포에서 의정부까지 가서 그곳까지 찾으러 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1년간의 치매환자인 외할머니와의 생활 중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된다. 우연히 새벽에 식칼을 가지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외할머니를 본 어머니는 전문기관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입원할 결정을 내린다.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가정에 외할머니를 계속 돌보기도 어려웠고, 외할머니 자신을 위해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요양원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 특히 '요양원 가면 일찍 돌아가신다', '죽으러 가는 곳이 요양원이다'라는 풍문은 어머니를 괴롭혔다.

하지만 좋은 요양원과 전문 요양관리사 그리고 주기적으로 외할머니를 찾아가 정신과 치료와 사랑과 기도을 쏟은 어머니의 노력으로 외할머니의 치매증상은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무려 3년간의 고군분투 속에서 외할머니는 치매에서 벗어나게 됐고 거처를 다시 우리 집으로 옮기게 됐다.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낸 질병 그리고 작은 소망

가상성 치매완치 후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은 외할머니
▲ 견진성사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 가상성 치매완치 후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은 외할머니
ⓒ 유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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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너땜시 내가 나은 거여."

외할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하시는 말씀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으로 '가상성 치매'의 올가미에서 벗어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하지만 어머니는 "엄마, 난 엄마한테 더 고마워. 엄마가 나 안 버렸잖아. 나 13살 때 이태원에서 말야"라고 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외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인 외할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별거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살림을 차린 남편에게서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데리고 이태원 달동네로 가서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외할머니는 이혼을 생각했지만 나의 어머니를 보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2년 뒤 다시 외할아버지와 가정을 합치고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40년 전 버릴 수 없었던 혈육의 정이, 40년 뒤 질병을 이긴 모녀의 정으로 재현됐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이미 삶에 있어 떼버릴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한 작은 소망이 있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너무 오랜시간 잊고 지낸게 이제와 생각나. 늦지 않았다면 엄마 남은 삶을 같이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가상성 치매를 앓을 당시부터 회복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 성당에서 올해 견진성사(천주교 '칠성사' 중 하나로 성인으로 인정받고 신에게서 많은 은총을 받는다는 예식)를 받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다시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남은 시간이 행복해지길 기도했다. '나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나 역시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어머니' 응모 글



태그:#나의 어머니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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