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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과 어우러진 청산도 돌담길. 한 쌍의 연인이 양산을 받쳐들고 걷고 있다.
 유채꽃과 어우러진 청산도 돌담길. 한 쌍의 연인이 양산을 받쳐들고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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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도청항 풍경.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온 여행객들이 청산도 도청항에 내리고 있다.
 청산도 도청항 풍경.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온 여행객들이 청산도 도청항에 내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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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완도 청산도가 뜨고 있다. 올 봄 들어서만도 하루 평균 수천 명이 청산도를 찾고 있다. 슬로걷기축제가 열린 지난 4월 주말엔 하루 6000∼7000명이 찾았다. 청산도를 찾은 여행객들은 때묻지 않은 자연에다 그림 같은 풍광에 반했다.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돌담과 흙길을 걸으며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유채꽃에서 황홀경을 만끽했다. 푸른 청보리와 마늘밭도 청산도를 찾은 여행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여행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것이 2차, 3차 방문으로 이어지면서 청산도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민관광지가 됐다.

그 청산도를 다시 찾았다. 지난 5일 어린이날이다. 이번 청산도 길은 단순한 여행 목적이 아니었다. 청산도만의 오랜 풍습 가운데 하나인 초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초분은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을 만들어뒀다가 3년 정도 지나 정식 매장을 하는 섬마을의 독특하면서도 오래 된 장례풍습이다. 이번 청산도 길은 5월 6일 예정돼 있는 이 초분의 본장을 보기 위함이었다.

청산도 당리마을 풍경. 여느 섬마을보다 풍경이 아름답고 깔끔하다.
 청산도 당리마을 풍경. 여느 섬마을보다 풍경이 아름답고 깔끔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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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을 따라 걷고 있는 여행객들. 언덕 위에 보이는 집이 드라마 '봄의왈츠' 세트장이다.
 청산도 슬로길을 따라 걷고 있는 여행객들. 언덕 위에 보이는 집이 드라마 '봄의왈츠' 세트장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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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집을 나서 완도항여객터미널에 도착한 게 오전 9시께. 9시30분 출발 예정인 청산도행 배를 타기 위해서다. 터미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 청산도를 찾으려는 여행객들이었다.

청산도행 배표를 파는 매표소 앞으로 서 있는 줄이 꽤 길었다. 쉽게 줄어들지도 않았다. 줄을 선 채로 9시 30분 배가 떠나는 걸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배는 10시 30분,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표를 끊고 보니 12시에 출발하는 배표다. 10시 30분 출발하는 배의 표가 이미 매진이란다. 낭패였다.

청산도행 배는 여행객들로 넘쳐났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경상도, 충청도에서 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제주도, 강원도에서 온 단체여행객도 많았다. 청산도가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여행지가 됐고,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섬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청산도 특유의 초분장 풍경. 덕대에 놓인 멍석 위에 관을 올려 놓고 솔가지를 얹어 묶고 있다. 3년 전 모습이다.
 청산도 특유의 초분장 풍경. 덕대에 놓인 멍석 위에 관을 올려 놓고 솔가지를 얹어 묶고 있다. 3년 전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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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초분 풍경. 시신을 땅 속에 바로 매장하지 않고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을 만들어 탈골을 시킨다. 3년 전 모습이다.
 청산도 초분 풍경. 시신을 땅 속에 바로 매장하지 않고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을 만들어 탈골을 시킨다. 3년 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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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여행객과 어우러져 뜨거웠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슬로길을 따라 걸었다. 걷기 열풍이 청산도를 휘감고 있었다. 나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해 청산도에서의 첫날 오후를 보냈다.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도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봉분을 만드는, 이른바 '산일'이라는 게 대개 아침 일찍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자칫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초분의 본장을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수년 안에, 아니 영원히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3년 된 청산도 초분. 본장을 앞두고 저만치서 포크레인이 봉분을 만들 땅을 파고 있다. 지난 5월 6일 모습이다.
 3년 된 청산도 초분. 본장을 앞두고 저만치서 포크레인이 봉분을 만들 땅을 파고 있다. 지난 5월 6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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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 해체. 본장을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초분의 이엉을 벗겨내고 있다.
 초분 해체. 본장을 위한 첫 번째 작업으로 초분의 이엉을 벗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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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산도에서도 요즘 초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편제' 촬영지인 당리마을에서도 촬영을 위한 세트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초분 장례를 처음 만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진으로 보고 말로만 듣던 초분장을 처음 본 게 5년 전이다.

청산도 출신의 지인(김병국·45)이 할머니 상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조문을 갔다가 초분장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장지까지 따라가서 본 게 처음이었다.(돌담길도 걷고 초분(草墳)도 보고-2007. 2. 7. 오마이뉴스) 당시 처음 본 초분은 놀라움 자체였다.

초분장은 바닥에 돌멩이를 깔아 덕대를 만들고 그 위에 멍석과 관, 솔가지를 올려놓고 초가 형태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초분 본장은 그로부터 3년 뒤 이뤄졌다. 초분을 뜯어내 가까운 곳에 다시 매장하는 이중 장례방식 그대로였다.(두 번씩 장례 치르는 마을, 사연 있었네-2009. 6. 27. 오마이뉴스)

초분 해체. 씨줄날줄로 엮어놓은 줄을 끊고 이엉을 벗겨내자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분 해체. 씨줄날줄로 엮어놓은 줄을 끊고 이엉을 벗겨내자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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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 속의 관. 초분의 이엉이 벗겨지고 드러난 관이다. 3년이 지났지만 겉모습이 튼실하다.
 초분 속의 관. 초분의 이엉이 벗겨지고 드러난 관이다. 3년이 지났지만 겉모습이 튼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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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은 오래 전 섬마을을 중심으로 많이 행해졌다. 가족이 고기잡이 나가고 없는 틈에 상을 당하면 그냥 매장해버리지 않고 기다렸다는 설도 있고, 육탈을 하고 땅으로 돌아가는 게 예의라는 속설도 있었다. 어떻든 초분은 섬사람들의 지극한 효심의 표출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본장을 하는 초분은 3년 전 초분장을 한 그 지인의 아버지다. 당시 고인의 어머니가 초분 상태에 있어 어머니보다 앞서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자연스럽게 연달아 초분장이 이뤄진 이유였다. 절차는 할머니 때와 비슷했다.(슬로시티 청산도에서 '초분'은 기본 예의-2009. 5. 12. 오마이뉴스)

이 집안의 초분장은 3년 전 고인이 된 지인 아버지의 주장으로 이뤄졌다. 2007년 당시 고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초분장을 주장했다. 번거롭더라도 그게 자식의 도리이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효도의 한 방법이라는 이유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땐 지인의 형제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초분 장례를 행했다. 요즘 보기 드물게 최근 5년 사이 두 번의 초분장과 본장을 하게 된 사연이다.

초분 해체. 본장을 위해 유가족들이 초분 속의 관을 들어 옮기고 있다.
 초분 해체. 본장을 위해 유가족들이 초분 속의 관을 들어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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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 해체. 본장에 앞서 관의 덮개를 뜯어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초분 해체. 본장에 앞서 관의 덮개를 뜯어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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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오전 9시께. 초분이 자리한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구장리 야산으로 지인의 일가친척들이 모여들었다. 앞서 할머니의 초분과 본장이 이뤄졌던 그 장소다. 먼저 도착한 굴착기와 일꾼들이 본장을 위한 봉분 터를 파고 있었다.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풍경이다. 다른 게 있다면 조금 떨어진 곳에 초분 하나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굴착기가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삽질하던 일꾼 두세 사람이 삽을 놓고 초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세 초분을 감싸고 있던 동아줄과 새끼줄을 낫으로 끊어내고 볏짚으로 엮은 이엉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한 겹씩 벗겨낼 때마다 잿빛으로 변한 이엉이 드러났다. 처음 보는 풍경이 아닌데도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의 호기심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초분 해체. 초분 상태에서 3년 동안 지낸 시신의 모습이다. 아직 사람의 형체가 많이 남아있다.
 초분 해체. 초분 상태에서 3년 동안 지낸 시신의 모습이다. 아직 사람의 형체가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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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 시작. 시신 상태를 확인한 관은 덮개를 다시 덮고 본격적인 매장 절차에 들어간다.
 본장 시작. 시신 상태를 확인한 관은 덮개를 다시 덮고 본격적인 매장 절차에 들어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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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엉에는 3년 세월이 그대로 묻어났다. 잿빛이 된 이엉은 오래된 초가지붕에서 나오는 것과 흡사했다. 그렇게 몇 겹을 걷어내니 소나무 가지와 함께 관을 감싸고 있는 멍석이 형체를 드러냈다. 초분을 쓰면서 벌레들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올려놓았던 것이었다. 관 밑에 깔아놓았던 멍석도 일부만 해졌을 뿐 초분을 쓸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관의 상태도 깔끔하다. 3년의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주변 정비가 대충 끝나고 가족들에 의해 관이 봉분 쓸 자리로 옮겨졌다. 가족들의 요청으로 관의 덮개가 열리고 시신의 상태를 가족들이 잠깐 확인했다. 시신이 많이 부패됐지만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어 매장 절차가 진행됐다.

매장 작업은 뭍에서 진행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관을 땅 속에 넣어 흙으로 덮고 봉분을 만들었다. 초분이 자리했던 곳에선 초가 이엉이 불태워졌다. 구들장논과 함께 청산도의 독특한 풍습 가운데 하나인 초분 한 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땅 속에 안장된 관에 유족이 삽으로 흙을 떠 덮고 있다. 본격적인 매장의 시작이다.
 땅 속에 안장된 관에 유족이 삽으로 흙을 떠 덮고 있다. 본격적인 매장의 시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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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이 끝나고 봉분을 만드는 사이 한쪽에선 초분에서 뜯어낸 이엉을 불태우고 있다.
 매장이 끝나고 봉분을 만드는 사이 한쪽에선 초분에서 뜯어낸 이엉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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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 마무리. 초분의 본장이 끝나고 유족들이 봉분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본장 마무리. 초분의 본장이 끝나고 유족들이 봉분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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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초분, #초분장, #전통장례, #청산도, #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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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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