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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로 만든 임시 무덤인 '초분'.
 초가로 만든 임시 무덤인 '초분'.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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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하고도 몇 년 더 전이었다. 초분(草墳)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이. 어릴 적, 상여 나갈 때 꽹과리 치고 북 치던 진도 사람들의 장례풍습을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놀랐다. 초분이란 걸 왜 할까? 무섭다, 혐오스럽다, 비위생적이다 등등의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었다.

나중에 초분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면서 그 존재와 의미를 인정할 수 있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짚으로 만든 가묘(假墓)에서 탈골을 한 다음 뼈만 매장하는 장례법으로, 서남해안 일부 섬에만 남아 있는 이중장(二重葬)이다.

초분 장례를 하는 이유는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특수한 여건 때문이다. 그것은 섬 지역 특유의 풍습이고 문화이다.

2007년 2월, 청산도에서 초분을 하고 올 6월23일 본장을 했다.
 2007년 2월, 청산도에서 초분을 하고 올 6월23일 본장을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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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청산도에서 초분을 했다. 이 초분은 만 3년이 안된 지난 23일 본장을 했다.
 2007년 2월, 청산도에서 초분을 했다. 이 초분은 만 3년이 안된 지난 23일 본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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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초분을 쓰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인의 조문(弔問)을 위해 완도 청산도에 갔다가 고인(지인의 할머니)을 초분으로 모신다는 얘기를 듣고 장지까지 따라갔었다. 옛날 풍습으로만 알았던 초분 장례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당시 조문을 함께 갔던 일행들은 "초분이 지금도 행해진다는 게 놀랍다",  "두 번 장례를 치르는 게 번거로울 것 같다" 등등의 말을 했었다. 외지인들의 눈에 비친 초분은 이렇게 부정적이었다.

2009년 5월, 청산도에서 초분을 쓰고 있다.
 2009년 5월, 청산도에서 초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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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초분이 완성되고 있다.
 2009년 5월, 초분이 완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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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청산도에서 두 번째로 초분 장례를 봤다. 3년 전 할머니를 초분으로 모셨던 그 지인의 집에서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문을 한 후 장지까지 동행했었다.

생전에 고인이 초분을 선호한 데다 초분으로 모셨던 할머니의 본장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초분을 한다고 했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청산도의 풍습이라는 것이다.

초분은 한마디로 초가로 엮어 만든 임시무덤이다. 땅바닥에 크고 작은 돌로 '덕대'를 만들고 그 위에 관을 올린 다음, 짚을 엮어 만든 이엉으로 초가집을 지어주는 것이다. 빗물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지붕을 올리고 큰 돌을 매달아 단단히 고정시켜주면 된다.

산 자들은 틈날 때마다 가서 이 초분을 돌보고 또 새 이엉으로 덮어준다. 이런 풍습을 청산도 사람들은 효도의 한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가까이 모셔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뭍에서 산소를 돌보며 벌초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9년 6월, 초분을 해체하고 있다. 본장을 하기 위한 첫 작업이다.
 2009년 6월, 초분을 해체하고 있다. 본장을 하기 위한 첫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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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본장을 위해 초분을 해체하고 있다.
 2009년 6월, 본장을 위해 초분을 해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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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든 초분의 본장을 참관했다. 6월 23일이다. 3년 전 초분을 했던 지인 할머니의 본장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터 찾아가 봤다. 초분에서 3년 가까이 지난 시신의 상태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본장은 초분을 만들고 3∼4년이 지나 뼈만 골라 땅속에 매장하는 장례를 일컫는다. 시신의 뼈를 드러내 깨끗이 하는 '씻골' 과정을 거쳐 땅에 묻는 것이다.

초분 해체는 씨줄날줄로 엮어놓은 밧줄과 그것으로 묶어놓은 돌멩이를 풀고, 그물망을 벗겨내는 것으로 시작됐다. 비바람으로부터 초분을 보호할 목적으로 달아놓고 덮어놓은 것들이다.

이젠 몇 겹으로 덮어놓은 초가 이엉을 걷어낼 차례. 한 겹의 이엉이 벗겨지더니, 그 안에 한 겹, 또 한 겹이 나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볏짚의 색이 더 누런 게 시간이 더 오래됐음을 짐작케 한다.

다섯 겹쯤 벗겨냈을까. 마침내 베일에 싸여있던 나무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3년 전 초분을 만들 당시 그대로다. 관 위에 올려놓았던 솔가지의 색깔만 조금 변했을 뿐 관도, 그것을 동여맸던 동아줄도 전혀 썩지 않았다. 초분 안에도 바람이 잘 통했다는 반증이다.

그 관을 조심스럽게 옮겨 땅속에 매장하는 것으로 본장이 마무리됐다. 기대했던 관 속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관을 열고 뼈를 드러내 깨끗이 해서 매장하는 것도 좋지만, 청산도 풍습은 관 그대로 다시 묻어주는 것이라고. 남은 가족들도 그걸 원치 않았단다.

본장의 마무리는 뭍의 일반적인 장례풍습과 비슷했다. 포클레인이 동원돼 땅을 파고 또 덮고…. 모여든 사람들은 묘 자리의 지형과 터를 놓고 이렇고 저렇고….

2009년 6월, 본장을 위해 해체된 초분에서 관을 옮기고 있다.
 2009년 6월, 본장을 위해 해체된 초분에서 관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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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을 위해 임시무덤인 초분에서 옮겨온 관을 땅속으로 옮기고 있다.
 본장을 위해 임시무덤인 초분에서 옮겨온 관을 땅속으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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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초분에서 나온 이엉은 불에 태워지고, 저만치에선 포클레인을 동원해 매장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해체된 초분에서 나온 이엉은 불에 태워지고, 저만치에선 포클레인을 동원해 매장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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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슬로시티 청산도에서 '초분'은 기본 예의


태그:#초분, #청산도, #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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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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