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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화력발전소 저지를 위한 천막 농성장. 일반시민과 농어민들로 구성된 고흥 민주시민단체 사람들이 지난 3월 19일 부터 고흥군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고흥 화력발전소 저지를 위한 천막 농성장. 일반시민과 농어민들로 구성된 고흥 민주시민단체 사람들이 지난 3월 19일 부터 고흥군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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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사는 전남 고흥이 복잡합니다. 화력발전소 추진 문제와 국회의원 경선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지난 2월 중순 광주·전남지역 언론사들의 합동여론조사에서 22.2%로 고흥·보성 지역 1위였던 장성민 전 의원이, 5.6%로 5위였던 김승남 후보에게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뒤집혔습니다.

장성민 후보는 곧바로 "고흥·보성 예비경선에서 김승남 후보가 관광버스를 동원했다. 현장에 동원된 대부분이 고령자였다. 이분들이 민주당 모바일 선거인단에 자발적으로 가입했을 리가 없다"며 경선 불복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맞서 김 후보는 관광버스를 동원했다는 장 후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보수 언론들은 이 문제를 놓고 얼씨구나 좋다, 일제히 민주통합당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고흥의 민주·시민단체 사람들 또한 김승남 후보가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우려는 누가 후보로 나서든 말든 민주통합당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보수 언론들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탈락한 장성민 후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무소속 예비후보들은 현재 고흥의 가장 큰 이슈거리인 화력발전소 추진 문제를 적극 반대했는데, 경선에서 당선된 김승남 후보만큼은 화력발전소 추진 문제에 대해 유보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흥 민주·시민단체 사람들은 김 후보의 '유보 입장'을 화력발전소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김 후보 또한 고흥이 고향이고, 고향의 농어민들을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생면부지의 고흥에서 이제 겨우 3년째 정착생활로 접어들고 있는 나 같은 보잘것없는 뜨내기조차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청정고흥과 농어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화력발전소를 반대하고 나서는데 말입니다.

나 같은 뜨내기조차 청정고흥 위해 화력발전소 반대하는데... 

나로도에 내걸린 '삶의 터전 빼앗아갈 화력발전소 어민들은 반대한다' 나로도 어민회 현수막.
 나로도에 내걸린 '삶의 터전 빼앗아갈 화력발전소 어민들은 반대한다' 나로도 어민회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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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남 후보는 "4·11 총선 고흥·보성 민주통합당의 공천자로 확정된 것은 새로운 변화와 신뢰의 정치를 바라는 지역민들의 오랜 여망이 담긴 결과"라며 "4·11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초고령화와 FTA 때문에 황폐화 위기를 맞고 있는 농어촌을 되살리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고흥의 민주·시민단체 사람들은 김 후보의 말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황폐화 위기를 맞고 있는 농어촌을 되살리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지만,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황폐해진 농어촌을 더 황폐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농어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화력발전소가 아니라 농수산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드문 청정고흥에 온갖 오염원이 될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농수산물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농어민들이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고흥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어민들입니다. 농어민들은 땅과 바다, 자연환경으로 먹고 살아갑니다. 화력발전소는 자연환경을 훼손시킵니다. 결국, 화력발전소는 지역 농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세월이 그래 왔듯이 고흥에서는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될 수 있다 합니다. 하여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군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민주당 깃발을 꽂으려 합니다. 그 민주당의 깃발이 농어민들과 같은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화력발전소가 들어서야 발전한다는 사람에게 받은 전화 한 통화

그런 깃발이라면 드높게 휘날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깃발이 군민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화력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는 개발지상주의자들을 위한 깃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깃발이라면 끌어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새로운 깃발을 꽂아야 마땅합니다. 얼마 전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서야 고흥이 발전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화력발전소 반대 운동을 한 내게 협박에 가까운 말로 그럽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려 하네…."

그날 늦은 오후 뒤틀린 속을 달래기 위해 장화를 신고 삽과 양동이를 챙겼습니다.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바다에 나섰습니다. 바닷바람이 몹시 불어댔습니다. 잠바 깃을 세웠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좁은 앞이마를 훌러덩 벗겨 내고 볼때기를 할퀴어 댔습니다. 한창 조개를 캘 시기인데, 거센 바람 때문인지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되돌아갈까 망설이다가 모래와 벌 흙이 뒤섞여 있는 물 빠진 바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내 몸을 밀어내는 거센 바람과 맞섰습니다.

2년 전 집 앞 해변에서의 조개캐기 사진. 첫 해에는 한 끼 반찬거리 정도를 마련했는데 올해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하루 세끼 반찬거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만큼 조개 캐기에 익숙해졌습니다.
 2년 전 집 앞 해변에서의 조개캐기 사진. 첫 해에는 한 끼 반찬거리 정도를 마련했는데 올해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하루 세끼 반찬거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만큼 조개 캐기에 익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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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에 익숙해지다 보니 물러설 수 없다는 어떤 의지가 생겼습니다. 두 발에 힘을 주고 구멍이 뚫려 있는 벌 흙을 꾹꾹 밟았습니다. 장소를 이동해 가며 계속해서 밟았습니다. 작은 구멍 속에서 모래를 뿜어내면 조개가 나오기 때문에 부지런히 삽질해댔습니다. 모래를 뿜어낸다 하여 모두 조개는 아닙니다. 조개의 씨를 말리고 있는 넓적한 불가사리도 나오고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바다 생물들이 나옵니다. 어쩌다 손바닥 반쯤 되는 크기의 조개가 나왔습니다.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조금씩 들어차면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점점 바람이 거칠어졌습니다. 콧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잠바가 바람 먹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등을 떠밀어 댔습니다. 그나마 삽질로 건져 올린 몇 마리의 조개가 희망이 되어 두 다리를 버티게 해줬습니다. 바람 먹은 몸뚱어리로 끊임없이 벌 흙을 밟아대면서 삽질을 해댔습니다. 열 군데를 파헤치면 조개 두어 마리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청정고흥에 굴러 온 돌은 화력발전소

그렇게 해질녘까지 한두 시간에 걸쳐 거센 바닷바람에 맞섰습니다. 두 발에 힘이 풀릴 때까지 물 빠진 바다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예닐곱 마리의 큼직한 조개를 비롯해 갯바위에 붙어 있는 작은 조개와 굴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조개 서너 마리에 불과했던 예년보다 나은 수확입니다. 지난해에는 한 끼 찬거리에 불과했지만, 하루 세 끼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거센 바람에 맞선 만큼 바다가 내준 선물이었습니다. 문득 거센 화력발전소 건설을 이겨내면 바다는 그만큼의 선물을 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바람이 등을 떠밀었습니다. 볼때기는 이미 얼어붙었지만, 바다를 등지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등을 세차게 밀어대는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거센 바람을 견뎌낸 힘 때문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개를 캐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개발업자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려고 하네…."

그 말을 뒤집어 보았습니다. 내가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것은 인심 좋고 환경 좋은 고흥의 어느 한구석 붙박이 돌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굴러 온 돌은 화력발전소였습니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대한민국의 신선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청정고흥은 뽑혀나갈 것입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청정한 먹을거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의 청정한 환경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거센 바다바람에 맞서 캐온 조개와 굴. 농어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화력발전소가 아니라 농수산물입니다.
 거센 바다바람에 맞서 캐온 조개와 굴. 농어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화력발전소가 아니라 농수산물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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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남 고흥·보성 민주통합당 김승남 후보는 현재 고흥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화력발전소에 관련된 의견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 진정으로 군민들을 위한 길인지를.



태그:#전남 고흥.보성 민주통합당 경선, #고흥 화력발전소 추진, #민주당 깃발, #농어민 , #박힌돌과 굴러온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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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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