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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가 고등학교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그 공범은 우리 부부입니다.
 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가 고등학교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그 공범은 우리 부부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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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식 때에는 애들이 울어서 덩달아 울었다고 하더니, 중학교 졸업식 날 혼자서 찔찔 눈물을 짜다가 졸업생 전체에게 눈물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송인상. 생각 없이 눈물 많은 우리 집 작은아이 인상이 녀석이 고등학교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그 공범은 부모입니다.

"예? 고등학교를 안 보내요?"
"안 보내는 게 아니라 그냥 고등학교를 안 가는 거쥬."
"왜요? 왜 안 가요? 인상이 생각은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인상이 녀석을 걱정합니다. 고등학교에 가질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걱정합니다. 어떤 이들은 혹시나 자유분방한 부모의 강압으로 진학을 포기하게 된 것은 아닐까 걱정합니다. 그동안 친구 만나는 재미로 학교를 다녔던 인상이 녀석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거나 학교에 적응 못하는 뭔 문제가 있지 않나 조심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작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녀석은 태평인데 주변 사람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외곬로 자랄까봐 걱정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동떨어져 고립될까봐 걱정합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른이 되어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입니다. 학교를 통해 인맥이 형성되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그 인맥이 끊겨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그 걱정거리는 인상이 녀석의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그 걱정거리를 내놓는 사람들 자신들의 걱정거리입니다. 평생 그런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런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녀석에게 고등학교를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녀석이 정말 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린 녀석의 태평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그 걱정은 녀석의 걱정이 아니라 부모인 내 걱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울진에 사는 아저씨한티 칼 만드는 거 배우고 싶어"

초등학교 때 아궁이불에 못을 달궈 칼을 만들었던 송인상. 그 후로 전통칼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궁이불에 못을 달궈 칼을 만들었던 송인상. 그 후로 전통칼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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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상이 망치로 메질하여 만든 못 칼.
 송인상이 망치로 메질하여 만든 못 칼.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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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녀석이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지난해 가을, 큰아이 인효가 다니고 있는 풀무고등학교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습니다. 대안학교 중에서 비교적 경제적인 부담이 덜하고 또 대학 진학을 위해 죽어라 공부시키지 않는 풀무고등학교였지만 경쟁률이 높은 편입니다.

입학자격 중에 학업 성적과 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인상이는 큰아이 인효에 비해 말솜씨는 물론이고 학업 성적이 한참 뒤쳐집니다. 풀무고등학교에 원서를 접수할 무렵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너 성적은 몇 프로에 속한다냐?"
"내 친구는 70%라는디, 나는 40%래~."

녀석이 자랑스러워 하는 성적은 풀무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큰아이 인효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효보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농사일도 썩 잘 거들어주는 편입니다. 거기다가 주말이 되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정도로 친구들과 아주 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으로 이사와 중학교 2학년으로 전학 온 첫날, 처음 대면하는 1, 2학년 아이들과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경쟁이 뭔지도 잘 모르는 녀석의 나름 착한 심성 하나만을 믿고 경쟁 치열한 풀무고등학교에 보내고자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로서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이지요.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시키지 않겠다고 풀무고등학교를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경쟁적으로 입시 명문 고등학교를 보내려 하는 부모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아내와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편하게 생각하자.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까?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면 밤늦게까지 입시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자신 있어? 니 생각은 어뗘?"
"아빠 생각은?"
"니가 대학을 가기 위해 다른 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하겠다면 일반학교를 가도 상관없어.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다고 보는디. 니가 하고 싶은 게 목공이었으니께, 집에다가 목공실 차려놓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디."

녀석이 풀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풀무고등학교의 목공실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부모인 나 역시, 본래 손재주가 있었던 녀석이었기에 녀석의 바람대로 대학입시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농사일을 배워가면서 목공 기술을 연마했으면 싶었습니다. 큰아이를 풀무고등학교에 보낸 것 역시 대학입시를 강요하지 않는 풀무고등학교를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목공도 배우고 싶지만 먼저 울진에 사는 아저씨한티 칼 만드는 거 배우고 싶어."
"그려? 그것도 좋지? 아빠는 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대학 따위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봐. 인효 엄마 생각은 어뗘?"
"그래, 그래도 좋지. 아빠 말대로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대학 가고 싶으면 검정고시 보면 되고."

아내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과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려, 엄마 말대로 그렇게 허자. 고등학교에 가서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는 것보담 집에서 부지런히 책 읽어가며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대학이 꼭 필요하다 싶을 때 검정고시 봐도 늦지 않어. 지금 당장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오로지 대학 공부만 해도 상관없고."
"칼 만드는 것 배우면서 검정고시 보면 좋겠어."
"그렇다고 집에서 늘어지게 놀기만 하면 안 돼.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돼.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

전통칼, 조각, 그림, 목공, 여행... 고등학교에선 꿈도 못 꿀 일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조소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조소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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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 무렵 음료수 병을 이용해 지점토로 빚은 송인상의 체 게바라.
 초등학교 졸업 무렵 음료수 병을 이용해 지점토로 빚은 송인상의 체 게바라.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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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녀석은 30분도 채 안 돼서 고등학교 진학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오로지 대학입시 한가지에 매달려야 하는데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나니까 녀석의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손아귀에 꼭 쥐고 있던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것을 놓아버리자 녀석의 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녀석의 바람대로 전통칼 만드는 장인 밑에서 칼 만드는 일을 배워도 될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궁이불 앞에 온종일 쪼그려 앉아 못을 달궈 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던 녀석입니다.

또한 목수 삼촌이 티벳승이 되어 인도 다람살라로 떠나면서 놓고 간 온갖 목공기계로 너른 마당 한구석에 목공실을 차려놓고 나무와 놀아도 됩니다. 우리 부부가 집 설계도를 그릴 때 녀석은 흙과 나무젓가락으로 집 모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런 저런 대회에 나가 인정을 받곤 했던 그림과 조각 솜씨를 살려 평소 알고 지내는 조각가에게 보내 조각을 배워도 상관없고 그림을 전공한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려도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신나게 드럼이나 기타를 치면서 농사일을 배우면 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자유롭게 여행 다니며 친구들을 사귀면 됩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에서 보낼 3년 동안 녀석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가면 될 것입니다. 전통칼, 조각, 그림, 목공, 자유로운 여행은 입시 경쟁 치열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렇다고 녀석이 칼 만드는 최고의 장인이 되겠다고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재미있어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름 손재주가 있는 목공일이며 그림, 조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목이 되겠다거나 명망 높은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하고 싶고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것뿐입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찾아가는 과정들이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스스로 즐거울 것이고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고통스럽게 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전가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막상 고등학교 안 간다니께 좀 불안허지?"
"아니 안 불안해. 친구들 못 만나는 게 좀 아쉽지만."
"아빠도 니 친구들이 맘에 좀 걸리는데, 어차피 고등학교에 가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야잖어? 니가 하고 싶은 걸 하다보면 친구들은 저절로 만나게 돼. 지금 친구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날 만나면 되고."
"그러면 되겠네."

녀석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몰라"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인효와 함께 겨울 방학 내내 책 읽기와 드럼, 기타 치기를 했던 송인상.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인효와 함께 겨울 방학 내내 책 읽기와 드럼, 기타 치기를 했던 송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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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전통 칼 만드는 장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큰 욕심 없이 그 어떤 마음을 내면 그 마음자리에 길이 열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1년에 한두 차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인상이 녀석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생각 없이 어떤 일에 집중을 잘하는 인상이 녀석의 성품을 눈여겨 보아왔던 그였습니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녀석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전통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주겠노라 합니다.

전통칼 만드는 무명의 장인은 가난합니다. 쇠를 불에 달굴 숯을 구입하기 위해 막노동까지 하기도 한답니다. 올 겨울 한파로 작업실에 딸린 보금자리의 보일러가 터져 잠시 일손을 놓고 다른 곳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날이 풀리는 대로 집수리를 할 것이라 합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인상이 녀석은 늘 그래왔듯이 태평입니다. 전통칼 만드는 장인 아저씨의 연락을 기다리며 '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어울러 아무 생각 없이 드럼을 두들깁니다(실용음악 학원을 하던 성제훈씨가 작은도서관에 드럼을 기증했습니다). 기타를 튕겨대다가 평소에 읽지 않았던 책을 펼칩니다. 때로는 컴퓨터 축구게임에 빠지기도 합니다.

날이 풀리면 녀석과 함께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목공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작은도서관 옆에 작은 생태 화장실도 만들기로 했습니다. 날이 풀리면 녀석의 태평한 나날은 지금처럼 순조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그만 앉아 있고 책 좀 읽어라, 전통칼이나 목공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봐라, 등의 잔소리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눈물은 감염될수록 홀가분한 일이지만 걱정은 감염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말수가 적은 녀석이지만 틈틈이 내 걱정거리를 덜어줍니다.

"아빠, 칼 만드는 아저씨 언제 오셔?"

녀석은 학교에서 해방된 태평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분명하게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녀석도 모르고 나도 모릅니다. 다만 녀석이 하고 싶은 뭔가를 재미지게 찾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10년 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면서 두 권의 책을 냈는데 대부분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이 녀석이 글감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녀석이 그 책(2003년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을 읽은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딱 두마디 "재미있다. 아빠 글 잘 쓴다(자신과 비교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녀석이 어떻게 홀로서기를 하는지 틈틈이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송인상 , #고등학교 포기 선언, # 걱정거리, #다양한 할일,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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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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