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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단위면적당 세계 최고 밀집도의 핵발전소(21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전력소비량은 8423kWh(2008년)로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1998∼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전력소비량이 10% 이내로 증가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124% 증가했습니다. 전력소비를 규제하는 방안 보다는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주력해왔던 것입니다.

지난 2월 22일. 취임 4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핵발전소를 폐기하면 전기료가 40% 올라가고, 가구당 1년 전기료가 86만 원 올라간다."

이 대통령의 주장이 협박처럼 들려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전기세 오르니까 핵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막대한 세금이 투자되는 핵발전소 건설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들이 "전기요금 보호해주겠다.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해라"라고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피아식 협박입니다.

핵발전소 폐기로 1년 전기세가 86만 원 올라간다고 전제해봅니다. 우리 가족이 현재 지불하고 있는 전기세는 월 평균 4만 원이 채 안 됩니다. 핵발전소가 폐기되면 매달 11만 원 이상을 전기세로 납부해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지금보다 거의 3배에 가까운 전기세를 내야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기세로 협박을 한다하더라도 "핵발전소를 폐기할 수만 있다면 그까짓 것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그만큼 덜 먹고 덜 쓰면 된다"라고 다짐할 수 있습니다. 자손대대로 물려줄 인류의 가장 위험한 시설이 바로 핵발전소이니까요.

하지만 86만 원의 전기세 협박을 감당할 수 없어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1년에 86만 원 정도는 개껌 값 정도로 여기면서 핵발전소 건설을 적극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을 통해 핵발전소가 인류의 가장 위험한 시설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빤히 목격했음에도 왜 그들은 그토록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건설을 부르짖고 있는 것일까요? 국가와 민족과 후손을 위한 것일까요? 원전 폐기와 함께 엄청난 전기세를 감당해야 할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만큼은 안전하다는 맹신도 한몫을 했겠지만 적어도 1년에 86만 원의 전기세가 부담스러워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4대강 사업이 그러하듯 그들에게 핵발전소는 어떤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핵발전소를 통해 따로 챙길 수 있는 이익도 없이, 1년에 86만 원의 부담금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게끔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핵발전소로 전기세를 보호해주겠다는 '마피아식 협박'에 익숙해져 있거나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그 어떤 세력에게 조금씩 세뇌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전기세 인상 → 전력대란 →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건설'의 시나리오가 잘 짜여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발전소 건설이 꼭 필요함을 각인시키기 위한 사전 계획처럼 말입니다.  

핵발전소 건설과 화력발전소 건설이 전기요금 인상이나 전력대란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전남 고흥의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할 무렵부터 살펴보았습니다.

2010년 8월 전기세 평균 3.5% 인상.
2010년 11월 신규원전 후보지로 전남 고흥과 해남, 강원 삼척, 경북 영덕 등 4개 지방자치단체에 유치신청 요청.
2010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말레이시아 경제인들을 만나 원전과 원전 폐기물 처리장 인근에 많은 주민이 거주할 정도로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가 우수하다는 것을 강조(내가 목격한 영광핵발전소 인근에는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지 않음).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
2011년 7월 경북포항, 남해 화력발전소 건설 추진(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으로 핵발전소 건설 대신 화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됨). 
2011년 8월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
2011년 9월 15일 전력대란.
2011년 10월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사설과 기고를 통해 핵 발전 확대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니, 발전소를 더 짓거나 전기요금을 올려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의 반대로 쉽지 않기에 값싼 전력을 공급하는 핵발전 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한겨레 2011. 10. 12.)

2011년 11월 24일 지식경제부 장관 전기료 10% 인상 검토.
2011년 11월 30일 전남 해남, 고흥 화력발전소 추진.
2011년 12월 3일 전기요금 4.5% 인상.(2011년 한 해 동안 전기요금 인상 폭이 무려 9.4%)
2011년 12월 22일 후쿠시마 원전 재앙으로 미루고 있던 강원 삼척, 경북 영덕 원전건설후보지 발표.
2012년 1월 30일. 전력대란 예고

날짜별로 보시면 알겠지만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대란이 마치 발전소 건설을 위한 수순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날씨 탓도 한몫을 하고 있지만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너무나 잘 짜여 진 각본 같지 않습니까? 이 잘 짜여진 각본에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바로 핵발전소 건설을 강력히 주장하는 보수 신문과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12년 2월 11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전기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전 영업 손실이 크다는 것을 강조.
2012년 2월 18일 <매일경제> 기사에서 전기요금과 관련해 노골적인 핵발전소 건설 불가피 보도.
"원전을 폐기했을 때 전기료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1982년 이후 작년까지 18.5%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40%와 비교하면 지나칠 만큼 낮다. 요금을 이 정도로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원전의 덕이 절대적이다.(중략) 원전을 폐기하면 경제적 약자인 서민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사실도 알려줄 의무가 있다."

2012년 2월 22일.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명박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식을 통해 핵 발전소의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폐지하자고 하는데, 우리는 기름·가스 안 나는 에너지 제로 나라다. 전력 30%를 원자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전을 폐기하면 전기료가 40% 올라가고, 가구당 1년 전기료가 86만 원 올라간다. 독일이 핵발전 않겠다고 하는데, 프랑스 걸 갖다 쓰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

과연 그럴까요?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원전 안 쓰면 전기요금 40% 올라?...MB의 거짓말>(2월 22일) 기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력관계에 대한 무지를 넘어선 사실 왜곡이며, 일국의 대통령이 대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또한 후쿠시마 핵 재앙의 교훈을 철저히 무시한 발언으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먼저, 독일은 지난 한 해, 6십억 kwh 가량의 전기를 유럽 전역에 수출했다(2010년 1/4분기는 180억 kwh 수출, 89억 kwh 수입). 작년 우리나라 고리 2호기가 생산한 전력량보다 많은 양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가동 중이던 노후 원전 7기를 즉각 폐쇄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 전기의 비중(20.4%)이 원자력전기비중(17.7%)을 앞지르게 되었는데 전기는 오히려 남았던 것이다.

독일은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 당시의 신재생에너지법(EEG)에 의해 촉발된 재생에너지 붐으로 지난 2002년부터 전력 수출 초과현상이 꾸준히 증가해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기본 사실관계를 몰랐거나, 혹은 인지하고 있었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사실 관계를 왜곡하여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프랑스는 "OECD 국가 중 미국, 일본, 독일, 한국, 이탈리아에 이어 6번째로 에너지 수입이 많은 나라(2009년 기준 프랑스 134.38Mtoe, 한국 198.1Mtoe)"라고 합니다. 전력 중 핵 발전 비중이 75%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겨울마다 전력이 부족해 독일과 이탈리아 등 이웃 나라에서 수입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사는 '원전을 폐지하면 전기요금이 40%가량 올라갈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세계 각국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는 기술 발전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는 반면, 원전은 사고 위험으로 인한 지속적인 비용 상승이 나타난다. 독일은 작년 한해 전기 가격에 변동이 없었던 반면,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로 향후 2년간 피해보상 비용만 6조 엔이고 방사능 오염 제염 비용도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를 폐기하는 만큼 재생에너지를 늘려나가는 동시에 세계 최대의 전력 소비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수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한 대로 전기 요금은 40%까지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대체할 만큼의 재생에너지 활용과 전력 소비를 줄여나갈 수 있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전력대란 극복 사례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17.1℃까지 떨어져 2월 기온으로는 55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전력사용량은 역대 최대인 7331만 kW. 예비전력은 500만kW 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전력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감코리아> 정책정보 기사(2012년 2월 13일)에 따르면 320개의 대규모 산업체가 조업일정을 조정하는 등 긴급감축을 했고 피크시간 동안 1만4000개의 산업체와 일반건물이 전년 사용량 대비 10%를 감축해 300만kW의 예비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식경제부는 이번 동계 전력수급 기간 동안 국민들과 기업들의 협조로 500만kW 이상의 안정적인 예비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절전규제 효과가 본격 시현된 1월부터는 절전 규제만으로 원전 3기에 해당하는 300만kW 수준의 절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이상한파에도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해 9월 15일 전국적인 정전대란을 경험하며 절전 규제의 필요성을 인식, 정부가 전력위기의 범국민적인 극복을 위해 다양한 에너지사용제한 조치를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옥외광고물 중 네온사인은 전력피크 시간대인 오후5~7시까지 사용을 금지했다. 피크시간대 이후인 오후7시 이후에는 업체당 1개의 네온사인 점등만 허용했다. 네온사인 설치개수는 전체 조명간판의 4.4%에 불과하지만, 전력소비량은 28.7%를 차지할 정도로 불필요한 사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 밖에 계약전력 100kW 이상 중대형 건물은 동계기간 내내 20℃이하로 난방온도를 제한했다. 1만9000개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18℃ 이하로 낮췄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잇따랐다. 지난해 12월 22일 에너지절약 시민감시단이 활동을 시작해 난방온도 준수, 네온사인 소등 여부 등 에너지 절약 우수·낭비 사례들을 홍보했다. 2010년 12월 41만3000벌이던 내복판매량도 지난해 12월에는 94만3000벌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전열기 판매량은 17만1355개로 전년도 18만7847개 보다 감소했다. 전력과 가스 판매량 증가폭도 전년에 비해 크게 둔화되는 등 동절기 에너지 소비패턴도 변했다.

이 기사에서 주목할 것은 '절전규제 효과가 본격 시현된 1월부터 원전 3기에 해당하는 300만kW 수준의 절감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환경단체도 아닌 정부에서 내놓은 분석 자료입니다. 

300만kW 수준(핵발전소 3기 해당)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핵발전소'만이 아니었습니다. 절전규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에너지를 절약하겠다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핵발전소 3기를 없애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폐기하는 만큼 덜 쓰면 되고 핵발전소 건설 비용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늘려 나가면 됩니다.

전력대란을 대비해 원전 3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확보한 것은 그만큼의 욕망을 줄여나간 대가이기도 합니다.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는 '욕망의 핵'입니다.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늘려나가겠다는 것은 좀 더 많이 생산하고 좀 더 많이 소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연은 물론이고 내 몸조차 망가지게 됩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재앙에서 볼 수 있듯이 '핵 욕망'은 파멸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파멸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대량생산과 소비 중심의 삶의 양식을 바꿔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내 자신과 후손들을 위한 것입니다.


태그:#전기 요금 , #핵발전소 건설, #전력대란, #마피아식 협박, #핵발전소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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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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