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환자 분이 갖다주신 리베이트
▲ 리베이트 환자 분이 갖다주신 리베이트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보건지소 2층에 마련된 내 방. 방 안에 냉장고가 하나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먹을거리가 쌓여 있다. 마른 오징어 한 마리, 조기 한 두름, 얼린 낙지 뭉치, 유자차가 담긴 유리병, 계란 한 줄, 요구르트, 김치 등등.

직접 산 게 아니라 1층 진료실에서 받아온 리베이트다. 이른 아침부터 2층 방까지 찾아와 생 낙지를 건네준 노덕심 어머니. 직접 담궜다며 유자차를 책상에 놓고 간 김종임 어머니. 수고한다며 요구르트를 몽창 사 가지고 노나먹으라던 오귀방 어머니. 이 모습을 보고는 자기만 질 수 없다며 계란이랑 김을 냉큼 사가지고 온 한섭방 어머니. 내가 곁에 오자마자 번개같은 솜씨로 진료복 호주머니에 오징어를 넣어준 아주머니도 있다. 가끔씩 사탕 무더기를 손에 쥐어주고 황급히 도망가기도 한다.

같은 곳에서 2년 있다 보니 안면을 트는 건 물론 말까지 트기도 한다. 노덕심 어머니는 날 보고 '머임마'라고 부르며 손자 취급을 한다. 말이 트일수록 정도 더 트이는지 가장 많은 리베이트를 갖다준 분도 그분이다.

요즘 리베이트에 대한 감시가 심해져서 리베이트를 건네는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졌다. 단잠에 빠져 있는 아침 무렵, 방문 두드리는 소리. 남들 몰래 먹으라는 리베이트 품목은 어제 갓 잡은 해삼이었다. 돌기를 사방으로 뻗으며 꿈틀대는 해삼에 기겁을 했다.

"어머니, 이걸 어떻게 먹어요?"
"아이, 머임마야. 그냥 잘라서 먹으면 돼."

덕분에 생전 처음 해삼을 잘라 보았다.

리베이트 덕분에 식사메뉴가 바뀌는 일도 있다. 전날 갖다주신 굴을 먹다 보니 물렸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굴떡국을 해먹기로 했다. 뜻밖에 한 할머니께 매생이 한뭉치를 받았다. 점심은 매생이굴떡국으로 바뀌었다. 

달라고 안 해도 리베이트는 들어온다. 며칠 전에 김장을 하셨다는 한 아주머니. 치료를 하면서 김치 얘기가 계속 화제에 올랐다.

"아, 김치 담그셨어요? 맛있게 됐나요?"

침을 맞고 나가신 아주머니는 잠시 후 김치 한 통을 들고 오셨다. 다들 센스 만점이다.

매주 금요일 날에 나가는 출장진료. 명목은 출장진료지만 실제로 향응(?)을 제공받는 자리다. 마을 회관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침을 놓는다. 점심 때가 다가오면 식사 담당 아주머니가 부른다.

"선생님, 점심 드세요."

차린 게 없다지만 부러질 것 같은 상다리. 한 거 없이 큰 대접을 받는다.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해서 특별히 해 주는 건 없다. 빈 손으로 오신 분이랑 진료시간도 똑같다. 이쯤 되면 뇌물 줄 맛도 안 날 텐데 리베이트는 계속된다. 

갈수록 심해지는 리베이트에 정부 차원에서 리베이트 상벌제를 도입하는 등 엄벌을 주겠다고 으르렁댄다. 이미 공중보건의 몇 명이 시범조로 걸려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런 분위기에서 아직도 리베이트 맛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한번 습관이 되면 무섭다. 이제는 받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거절 못 하는 나는 오늘도 리베이트를 기다린다.


태그:#리베이트, #한의사, #공중보건의, #나로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