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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배 타고 기차 타고 8시간 걸려서 왔어요."

할머니와 손녀가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이렇게 먼 길을 온 이유는? 바로 입학식을 하기 위해서이다. 더 정확히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세상에는 친구들과 함께 입학식을 하기 위해 이렇게 어려운 여정을 거쳐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올해 초 초등학교에 혼자 외롭게 입학했던 '나홀로 입학생'들이다.

<오마이뉴스> 주최 제3회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전국의 나홀로 입학생들이 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주최 제3회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전국의 나홀로 입학생들이 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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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제3회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하는 이 아이들은 10일 또래 친구들 30여 명과 함께 생애 '두 번째 입학식'을 치른다. 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 동안 서울과 강화도를 오가며 문화체험도 하고 체육대회를 하며 친교를 다진다.

이들이 처음 모이는 9일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에버랜드에 가는 날. 낮 12시경이 되자 '나홀로 1학년생'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용산역 대합실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새벽부터 배타고 기차타고 친구 만나러 왔어요

친구를 만나게 해주려고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와준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상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에게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했다. 인사 좀 해보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그저 서로를 흘긋흘긋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처음 만났을 때는 기자가 이름을 물어도 쑥스러워 대답도 않던 광재(전남 진도 진도서초등학교 가사도분교)가 태환이(전남 담양 남면초등학교)의 손을 이끌고 대합실 내 자동차 전시장으로 내달렸다.

곧 전남 신안에서 온 바다(흑산초등학교 영산분교)도 합세했다. 이렇게 서로 금방 친해지는 아이들을 보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 캠프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매일매일 만나서 우정을 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첫 번째 방문지인 에버랜드에 도착해서 보니 아이들은 이미 둘셋씩 짝을 지어 함께 다니고 있었다. 벌써부터 서로 간에 '얼짱'이니 '괴물'이니 하는 별명도 지어 불렀다. 할머니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던 안나(전남 신안 지도초등학교 어의분교)가, 이제는 새로 사귄 친구 소희와 이야기하느라 할머니는 어디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와, 저기 봐! 인간 되게 많다."(구안나)
"'인간'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야지."(박소희)
"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어서 '인간'이라고 하는데…."(구안나)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토론'도 벌어지고 있었다.

덥지도 않나, 꽉 잡은 두 손 놓을 줄 모르는 아이들

<오마이뉴스> 주최 제3회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전국의 나홀로 입학생들이 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사파리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마이뉴스> 주최 제3회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전국의 나홀로 입학생들이 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사파리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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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처음으로 향한 곳은 '사파리 월드'였다. 기자가 "어흥" 소리를 내며 호랑이를 보러 갈 거라고 하자 아이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진짜 살아있는 호랑이예요? 죽어 있는 거 아니에요?" "에이 호랑이 안 와요"라며 기자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아이들은 호랑이 모양의 열차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짜 살아 있는 호랑이를 보는 건지 의심하던 아이들은 "호랑이야 일어나봐" "백호야 안녕?" "내가 메롱 했더니 호랑이도 메롱했어요"라며 연신 즐거워했다.

회전목마를 비롯한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함께 타며 아이들은 더욱 친해지는 듯 보였다. 덕섭(경기 포천 강포초등학교)이는 회전목마의 안전벨트를 풀지 못하는 오경이를 도와주는 예쁜 모습도 보였다.

에버랜드에 도착했을 때부터 손을 잡고 있었던 연진이와 안나, 소희는 이때까지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서정이와 수아와 지수 그리고 산하와 석진이도 마찬가지였다.

'꽉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들에게는 예외인 듯 보였다. 아이들은 서로 '꽉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은 채' 서로의 기억 속에 파고들고 있었다.

아이만큼 부모도 즐거운 '나홀로입학식'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님들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북 군산에 있는 어청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민환이는 학교 현장학습을 뒤로 하고 이곳으로 왔다. 민환이 엄마 김아영씨는 "학교 행사와 겹쳐서 망설였는데 오길 잘한 것 같다"며 "또래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서 온 산하(죽장초등학교 상옥분교) 아빠 이용일씨는 "만날 2학년 형, 누나들과 지내는 아이가 '이제 야야 소리 좀 할 수 있겠네'라고 하더라"며 "친구들 만나 노는 것을 너무 즐거워한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손자 오경(물야초등학교 개단분교)이를 데리고 경북 봉화에서 온 김금규 할머니는, 아이들을 좇아 넓은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는 게 힘겨웠을 텐데도 힘든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정신 장애를 지닌 오경이의 엄마 아빠를 대신해 거의 손자를 키우다시피 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오경이가 친구하고 놀다가 할머니 찾을지 모르니 따라 댕기겠다"며 잠시 앉아서 쉬시라는 기자의 권유를 뿌리쳤다.

이 밖에도, 동행한 엄마들은 유독 아이들의 키 얘기를 많이 했다. 물론 "왜 이렇게 커, 쟤는?" "바다는 3학년 같아" 등 미취학 및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많이들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일상적인 말을 나홀로 1학년 학생 어머니들의 입을 통해 들으니 그 의미가 남달랐다. 자녀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보기 힘든 어머니들에게는 오늘의 만남이 아이들의 발육 상태를 점검해보는 기회였을 테다. 

또래 친구 만난 즐거움에 잠못 이뤄... 매일 이랬으면

9일 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유스호스텔에서 '제3회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한 1학년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베개 싸움을 하다가 TV 만화를 보고 있다.
 9일 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유스호스텔에서 '제3회 나홀로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프에 참가한 1학년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베개 싸움을 하다가 TV 만화를 보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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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고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해졌지만 아이들은 지칠 줄 몰랐다. 놀이공원을 떠난다는 말에 "아 더 타고 싶은데…"라며 아쉬워하는 눈치다.

하지만 숙소인 유스호스텔에 돌아와서도 아이들의 하루 일정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난생 처음 부모님들과 떨어져서 또래 친구들과 한방에서 자게 된 아이들은 당연히, 그냥 잘 수 없었다. 베게 싸움을 하는 방, 발차기 씨름을 하는 방, 함께 만화영화를 보는 방…. 부모님들과 떨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던 거였다. 

아이들은 10일 <오즈의 마법사> 난타 공연을 관람하고, 인천 강화도 '오마이스쿨'에 가서 '더불어함께 입학식'을 치를 예정이다.


태그:#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나홀로 입학생, #더불어 함께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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