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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시험, 시험… 초등학교 때부터, 취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 바로 '시험'이다.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물론, 이제 좀 놀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기는 쪽지시험까지, 가끔은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갈 때는 시험을 칠 일이 없어 그 하루라도 해방감을 누리긴 하지만, 교회에도 시험이 없는 건 아니다.

들어는 보셨나요? '성경고사대회'

교회에도 시험이 있다. 이 시험은 신학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이후 각 학교에서 보게 되는 시험도 아니고, 전도사님이 강도사님으로, 강도사님이 목사님이 되기 위해서 치는 시험도 아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라면 내가 이 시험을 알 이유가 없다. 나는 신학생도 아니요, 신학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회의 시험은 신학생들이나 전도사님, 혹은 강도사님이 치는 시험이 아니다. 각 지역교회와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주관으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각 교회에서 선발된 일반 학생들이 각 개인의 성경 지식을 겨루는 시험이다. 시험지에는 우리 눈에 익숙한 객관식과 주관식 형태의 문제가 있고, 수험번호도 있으며, 시험 중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감독관도 있다. 여느 다른 시험들과 다를 게 없이, 단지 '성경'에 대해 묻는다는 것이 이 대회 시험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대회에 대한 각 교회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대회에 나갈 학생이 없어서인지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르지만 참여하지 않는 교회도 있고, 그와 반대로 대회 입상을 위해서 합숙훈련까지 하는 교회가 있다. 내가 성경고사대회에 나갔을 때는 합숙까지는 아니었지만 성경 교재 요약본을 가지고 1주일에 한 번씩 쪽지시험을 치기도 했었다.

첫 시험에서 쓴 잔, 3년 내리 계속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우리 부모님은 교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때문에 나 역시도 덩달아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명한 집사님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교회를 다니고 있을 때,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내게 성경고사대회에 한번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고, 나서기를 좋아한데다 성경고사에 대한 아무런 감이 없던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열심히 주일학교 공과책을 공부했지만, 정작 대회 당일날 본 시험 문제에는 주일학교 공과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첫 대회를 나갔을 때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8살짜리가 평소에 성경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얼마나 하겠는가. 결국 OX 문제와 객관식은 전부 다 찍었고, 주관식은 거의 적지도 못했다. 등수 안에 들어가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성경고사대회 참가자 명단에는 내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사실 처음 대회를 나갔을 때만 해도 '다시는 이 시험 안 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참가자 선발을 위한 자체시험을 칠 때마다 내 시험점수가 꼭 높게 나왔다. 난 단지 부모님이 유명하니까 나도 성경공부 시간에 공부 열심히 해야지 안 그러면 부모님께 혼난단 생각으로 성경공부를 했을 뿐인데. 여하튼 그렇게 성경고사대회에 나갔지만, 3년 동안 단 한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

가장 혹독했던 준비기간, 그리고 찾아온 1등

초등학교 4학년 때가 되자 내 이름은 참가자 명단에 아주 자연스럽게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 해는 좀 특별했다. 이전의 성경고사대회 준비가 교사 지침서를 던져주고 잠깐 요약해주는 정도에 그친 반면, 이 때는 담당 집사님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셨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공부 시작 처음에는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교사지침서의 내용과 핵심 성경구절을 요약한 A4지 10여 장짜리 요약본을 가져오시더니 '1주일에 한 번씩 시험을 치겠다'라고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거기다 나와 함께 공부하던 친구는 자기 혼자만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이 공부를 열심히 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이 없었겠지만, 난 이야기가 달랐다. 그 집사님 부부와 우리 부모님이 정말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내가 만약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 사실이 바로 부모님의 귀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학교 공부보다 더 열심히 성경고사대회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전의 대회날. 시험지를 받아든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전까지는 시험지를 받아들면 모르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반 이상이 아는 내용이었다. 성경고사의 경우 일정 시험시간이 지나면 시험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아는 문제다 보니 약 15분만에 모든 시험문제를 다 풀고 한참 기다리다가 나가도 된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갔다. 자발적이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열심히 공부한 게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문제가 쉬웠는데, 너무 성급하게 풀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4등, 3등, 2등의 시상식이 다 끝나고 나서도 내 이름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떨어졌다고, 공부 조금 더 했다고 너무 문제를 성급하게 풀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있을 때 1등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유년부 1등 명단이 호명되고, 이제 초등부 차례였다. 그런데,

"초등부 1학년 1등 ○○교회 하지혜!"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내가 1등이라니. 함께 있던 우리 교회 사람들이 상 받으러 나가라고 하는 걸 보니 잘못 들은 건 아니다 싶었다. 정신없이 앞으로 나가 시상대에 서서 내 이름이 적힌 상장을 받았을 때에야 내가 진짜 1등을 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와 2등과의 차이는 1점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내가 하나라도 답을 잘못 썼다면 잘해야 2등, 아니면 그 아래로 밀려났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1등 그 이후 지금까지

이후 얼마 뒤 나는 광주에서 열린 전국성경고사대회에 참가했지만, 이번엔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3등을 했지만 전국성경고사에는 나가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대회 참여를 아예 하지 않았고, 나갈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대회 당일날 아예 가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고사대회가 머릿속에서 잊혀져버렸던 2006년, 나는 다시 한번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아닌, 내가 지도교사로 되어 있는 우리 교회 아이가 상을 타면서 지도교사상을 받게 된 것이다. 아이가 대회는 나가야 하는데 마땅한 지도교사가 없어서 내 이름을 올린 거였고 난 정말 한 게 없었는데 상을 받게 되어 정말 부끄러웠다.

이렇게 오래 전부터 성경고사대회에 참여하고 상도 두 번이나 탔지만, 그 때 외운 성경 지식 중 지금 생각나는 건 하나도 없다. 모든 시험이 다 그렇듯이, 성경고사 역시 시험지에 답을 적고 나면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다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성경구절도, 성경 인물 이름도, 성막 구조도, 그 외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들도 지금 다시 성경을 펼쳐 보면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단지 엉뚱하게도 항상 시험을 치던 그 교회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만 생각날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끼리의 경쟁밖에 안되는데 왜 이런 시험을 치는가' 싶지만, 그래도 이것도 내게는 작은 추억이 되어 생각날 때가 있다. 당시 상품으로 받았던 전화기를 볼 때마다, 집 구석에 처박혀 있는 상패를 가끔 꺼내볼 때마다.

덧붙이는 글 |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응모글입니다.



태그:#성경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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