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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큰 이슈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단어가 있다. 교육감의 자리에서 이 단어를 직접 정책으로 옮겨 지역 주민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도 있었고,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며 주민투표를 강행해 결국 시장직을 사퇴한 이도 있었다. 복지 분야의 이슈가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그 중 이 단어, '무상급식'이라는 단어 이후로 신문이나 인터넷, SNS 서비스에 '복지국가'라는 이야기가 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 건, 기분 탓일까.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보통 '복지국가'라 하면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예로 많이 드는데,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른 걸까? 아니, 좀 더 포괄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도대체 '복지국가'란 무엇이고 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뭘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복지국가>, 정형오, 2010
 <복지국가>, 정형오, 2010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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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저자 정형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복지국가의 정의를 짚고 넘어간다. 즉, '복지국가'는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활동인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국민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복지국가'와 '복지사회'를 다른 것으로 보는데, 전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지만 후자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

복지국가를 정의한 다음, 이 책은 복지국가의 필수 요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국가가 국민의 생활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하며,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정치 과정을 거치거나 의회 민주주의가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중도좌파 혹은 사회민주주의가 복지국가와 가장 친화적이라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영국과 스웨덴을 언급하며 두 나라 모두 복지국가였지만 사실 성격이 많이 달랐음을 이야기한다.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를 중심으로 빈곤 없는 사회 목표를 지향한 반면, 스웨덴은 불평등의 완화가 주된 목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은 노동당이 집권한 이래 NHS를 포함한 다수의 사회복지 법안을 통과시킨 반면, 스웨덴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 경제에 개입하면서 공공 일자리 창출과 연대 임금 정책 등을 펼쳤음을 언급한다.

이후 저자는 복지국가의 복지제도를 크게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사회수당과 사회복지서비스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덴마크의 사회학자인 에스핑-앤더슨(Gøsta Esping-Andersen)이 탈상품화의 정도, 즉 노동자 가시장에 노동력을 팔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정도로 복지국가를 분류한 세 가지 유형(자유주의적, 조합주의적, 사회민주적 복지국가)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복지국가에도 위기가 있다. 1950~60년대 지속적 경제성장과 함께 황금기를 맞이한 복지국가는 1970년대 세계경제 위기를 맞이하며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산업에 투입할 인력과 자본이 모자라고, 근로 동기 약화로 노동 공급이 축소되며, 위험대비 필요성 약화로 저축 동기가 감소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복지국가들은 위에서 분류한 세 가지 유형별로 각기 다른 정책을 펼친다. 영국, 미국 등의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채택하여 과도한 복지지출을 줄이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며 시장 자율성을 강화하고, 독일 등의 조합주의적 복지국가는 주로 여성 및 중·고령자의 일자리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남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노동 감소형 정책을 선택한다. 반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사회민주적 복지국가는 공공 고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그리고 저자는 현재 복지국가의 변화 양상을 이야기한다. 우선 복지 공급체계가 다원화되어 민간에서도 복지를 공급하고 있으며, 노동과 복지가 연계되는 경향을 띤다. 그리고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이루며,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둔화된 경제 성장률과 복지국가의 과성숙, 인구의 고령화, 가족구조의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저자는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초입에 있다. 환경적 요소는 미약하나 복지국가의 최소수준은 갖추었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와는 친화력이 낮고 복지재정도 미약한 편이다. 이런 의미에서 환경적 요소가 미약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관련정책이 이슈화되고 시행되고 있으며, 서구 복지국가 출범시기와 비교했을 때 견주어볼 만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하진 않다. 복지국가의 기원과 에스핑-앤더슨의 탈상품화 정도에 따른 복지국가 분류, 각 복지국가의 위기와 재편까지 굵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빠짐없이 넣으면서 기본적인 개념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별히 이 책은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도 빠지지 않고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입장인데, 사회복지 역사를 다룰 때 우리나라와 영국, 미국과 독일은 다루는 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거의 다루지 않아 이 지역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복지국가의 기원에서 영국만큼 스웨덴에 비중을 실어주면서 초기 복지국가의 각기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다.

하지만, 외국의 사례는 잘 서술한 반면, 우리나라 이야기를 할 때는 '복지국가의 초입'임을 강조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4대보험 등 어느 정도 제도가 갖춰져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1960년대 서구 복지 국가들의 GDP 대비 복지 지출과 우리나라의 현재 GDP 대비 복지 지출의 정도를 비교하면서 다른 사회경제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 수치만 비교하면서 '수치가 비슷하니 우리나라도 재정면에서 서구 복지국가의 출발 당시와 비슷하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특히 저자 자신도 이런 비교가 무리라는 것을 언급한 상황이라면 더욱.

복지국가를 이야기할 때 재정적인 부분을 언급할 수밖에 없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당시 상황을 전부다 고려해서 비교해 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초입'이라는 조금은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니라도 좋으니 말이다. 이 부분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yes24.com/existsea)에 쓴 글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복지 국가

정원오 지음, 책세상(2010)


태그:#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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