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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열흘 앞두고 막바지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남편은 '대견하다' 하고, 아이들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내 발등 찍은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책을 붙들고 있는 이 마음을 가족들이 알 리가 없다.

못 배운 게 죄가 아닌데, 아이들에게 주눅드는 나

26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날. 학업보다는 다른 곳에 뜻이 있어 고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접어야 했던 내게는 남들보다 짧은 학력이 언제나 걸림돌이었다.
 26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날. 학업보다는 다른 곳에 뜻이 있어 고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접어야 했던 내게는 남들보다 짧은 학력이 언제나 걸림돌이었다.
ⓒ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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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보다는 다른 곳에 뜻이 있어 고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접어야 했던 내게는 남들보다 짧은 학력이 언제나 걸림돌이었다. 같은 직장에 같은 일을 하면서도 대학 나온 친구들이 하는 실수는 말 그대로 '실수'지만, 내가 하는 실수는 언제나 실력 부족으로 치부되었다.

못 배운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안 배운 것이고, 고등학교 시절 나 또한 우등생이었노라고, 이제라도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서울대가 별 거냐? 콧방귀 뀌어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배움에 대한 열망은 내 안에 똬리를 틀었다.

하지만 배움에도 다 시기가 있다고 했듯,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만 하면 되던 시절에도 안 했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겁도 나고, 두 아이 키우며 박봉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될 것 같아 수없이 망설였다.

'밥 잘하고, 빨래 잘하고, 애들 잘 키우면 되지 공부는 무슨….'

그러다 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무심코 "엄마는 어느 대학 나왔어?" "엄마 대학 나오면 선생님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는 거야? 나는 의사될 건데…"하고 던지는 질문이 어떤 칼보다 아프게 마음을 도려냈다.

'가난이 죄가 아니듯 못 배운 것도 죄가 아닌데, 왜 이럴까?'

아이들에게 대학을 나오면 더 많은 꿈을 꿀 수도 있고, 더 나은 생활을 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대답은 하면서도 정말 그런지는 확인해 줄 길이 없었다. 대답을 하는 내가 대학을 다녀본 적도, 대학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는 아이들 입에서 '대학교'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죄책감에 화까지 내는 내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했는데, 난 왜 내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는 대학때문에 화를 내고, 아이들의 입을 무서워하고 있는 거지?'

"나이 마흔에 대학생이랑 살게 되다니..."

무섭지도 더럽지도 않은 걸 피하려고만 하는 건 상책이 아닌 듯싶었다. 이래 저래 고민을 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생각에 공부할 방법을 찾아봤다. 수능을 준비하자니 솔직히 살림하며 미분과 적분을 다시 공부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를 하자니 애써 먹은 결심이 아까웠다. 게다가 공부를 새로 시작하겠다는 엄마 앞에서 머루알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엄마 이제부터 대학생 되는 거야? 와! 멋지다, 우리 엄마 최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주던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재주는 없고, 그렇다고 쿨하게 접어버릴 배포도 없는 내게 희소식이 날아든 건 작년 수능시험 무렵이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얼핏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 접속을 해서 보니 내가 찾는 왕도가 이거다 싶었다. 우선 고등학교 시절 내신을 기준으로 선발을 하니 미분 적분을 다시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등록금도 저렴한 데다가 공부를 마치면 정식 대학과 똑같이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방송통신대를 다니는 학생의 대부분은 못다 한 학업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만학도라, 교수님들이 문제를 아주 쉽게, 눈 감고 발가락으로 찍어도 장학생이 될 만큼 쉽게 낸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한다는 계획도 좋지만, 밤 잠 안 자고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저조하다면 의욕마저 상실할 테니 그것 참 괜찮은 대학이다 싶어 바로 등록을 했다.

책과 함께 수강등록증이 날아오자 남편과 아이들은 마치 내가 대통령이라도 된 듯 축하를 해주었다. "나이 마흔에 대학생이랑 살게 되다니 꿈이냐 생시냐?" 하지를 않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도 우리랑 같은 학생이니까, 누나라고 불러줄까요?" 하며 너스레를 떨어대다.

시험 일주일 전에 한 번만 훑어보면 충분?

등록을 하고 몇 달 나는 대학생이 됨과 동시 세상을 다 얻을 계책마저도 물려받은 듯 대학생이 됨을 자축했다. 그러는 사이 지문으로 닳아야 할 책에는 먼지만 수북히 쌓이고, 공부에 대한 절박함도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방송 강의 한 번 안 보고 그렇게 놀고 있을 때 중간고사 시험 일정이 공지되고, 시험 범위가 공지되었다.

"이까짓 거 발가락으로 찍어도 장학생인데 공부는 무슨…. 그냥 아줌마답게 졸업장이나 따지 뭐."

그렇게 또 며칠을 발가락 운동만 하며 보내는데 놀아도 너무 놀기만 하는 나의 모습에 남편이 "시험 본다며 공부 안 해? 그러다 등록금만 날리는 거 아냐?" 한다. 얼마 안 되는 등록금 대주더니 생색을 내나 싶어 "안 하기는? 할 거야! 지금부터 해도 충분해~" 하며 방으로 들어왔고, 이왕 문 닫고 들어온 거 시험기간만큼은 학생의 본분을 다하자 싶어 처음으로 책을 폈쳤다.

"헉 !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라. 분명 세종대왕님이 '새로 맹가놓은 스믈여듧자'의 한글이 맞건만 왜 아는 건 하나도 없을꼬?"

이상야릇하지만 현실이었다. 내 눈 앞에 놓인 건 틀림없는 한글로 구성된 책이건만, 내가 읽고 있는 이 말은 외계 단어보다 더 심오했다. '이런 걸 발가락으로 찍을 수나 있을까?' 의문이 발생했다. 주위에 같은 공부를 하는 분께 전화를 걸어 시험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정말로 발가락으로 찍어도 장학생이 될 수 있냐고 물었다. 그 분은 호탕하게 웃으며,

"시험 일주일 전에 한 번만 훑어보면 충분해!"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 과목 중 겨우 한 과목을 끝냈을 뿐인데,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내가 타고난 둔치가 아닌 이상 한 번 읽어본 책에서 찍을 수있는 수준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때 벼락치기로 우등생의 타이틀을 얻었던 나답게 대학 공부 역시 벼락치기에 돌입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료를 받고, 중요 포인트를 잡아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오도록 '깜지'를 쓰며 외웠다.

하지만 외웠다 싶으면  어느새 하얀 백지가 되어버리는 머리 속 때문에 외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몇 과목은 서술형이란다. 주둥이 야물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손끝 야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소리까지 듣는 내가 나의 생각을 하얀 종이 위에 마음껏 표현한다는 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 시험날이 됐고 드디어 쉽디 쉽다는 시험지를 받아봤다. 시험의 원칙이 쉬운 것부터 푼다, 중요 단어를 문제 위에 적어서 그물 엮듯 엮어나간다,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작성한다, 등등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막상 시험지를 딱 받아드는 순간 하얘지는 머리 속이라니. 덜덜 떨리는 손과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간듯 캄캄해지는 눈앞에 아무것도 쓸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시험문제는 절대 안 쉬웠다. 발가락은커녕 손가락 열 개를 다 동원해도 찍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는 것이 없어도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해주던 튜터님의 말씀처럼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요리조리 엮어서 답을 작성했다. 해 보지도 않고 얕잡아 본 나의 건방과 거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거저 얻는 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 외에는 하나도 없다는 걸 또 한 번 절감하게 됐다.

공부 한번 해봐, 발가락으로 찍어서 장학생 되는지

1학기 중간고사의 뼈아픈 기억으로 기말고사는 시험일자 공고되기 전부터 준비를 했고, 다행히 일부 장학금마저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나의 장학금 소식에 주위에서는 "너 발가락으로 찍었지?" 하며 웃었지만 난 예전처럼 웃지 못했다. 아니 웃을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저렇게 호탕하게 웃었으니까.

장학금으로 술이나 사라는 친구들에게 폭탄주 한 잔씩을 돌리며 너도 해보라고, 공부를 적극 권했다. 해보지 않고는 그저 쉬울 거라고, 발가락으로 찍어도 장학생이 될 거라고 마음대로 평가를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일부 장학금도 기쁨이 아닌 아쉬움으로 기억하는 남편은 2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내게 "전액 장학금"을 외치고 있다. 그 얼굴에 난 "당신이 해봐 되나~~"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 열심히 준비한다고 준비했는데, 이번 중간고사는 어떻게 출제될지 걱정이다.

이런 걱정을 앞으로 3년 더 해야 한다니 이제와 생각하면 그냥 못 배운 아쉬움을 간직하며 살 걸. 내가 이 나이에 대학공부해서 검사판사 될 것도 아닌데, 왜 시작을 했을까? 맨 처음 공부에 대해 자문을 구했을 때 '발가락으로 찍어도 장학생한다'고 조언해주던 그 언니, 공부를 해본 적도 없는 그 언니는 정말로 발가락으로 찍어도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찾아 떠난 걸까?

세상에 발가락으로 찍어야 하는 건 반찬투정하는 남편의 정강이뿐이란 걸 난 왜 진작 알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중간고사 십일 전, 공부하느라 터진 입술과 충혈된 눈 때문에 십년은 더 늙어버린 듯한 내 모습에 무슨 걱정 있냐고 물어봐주는 가족들. 이들에게 차마 장학금은 둘째치고, 졸업만이라도 무사히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기사공모



태그:#방통대, #중간고사, #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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