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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는 당연히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돈버는 기계가 아니다. 사진은 영화 <가족>의 한 장면.
 어렸을 적, 아버지는 당연히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돈버는 기계가 아니다. 사진은 영화 <가족>의 한 장면.
ⓒ 튜브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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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렸을 때는 이 단어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아버지는 당연히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서로를 아꼈지만 엄마와 나 사이, 혹은 엄마와 남동생 사이처럼 아버지와 자식인 우리들과의 사이는 그렇게 긴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의 믿음은 무조건적인 것이어서, 살아오면서 여러 시련들이 우리 가족에게 따랐지만 아버지의 위치에 대한 나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지금에서야 느낀 건데, 어쩌면 아버지가 시골에서 어렵게 자라 고학으로 그 시대에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K대'를 나왔다는 것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더 존경했는지도 모른다.

등록금은 당연히 아버지 몫인 줄 알았는데...

대학 입학 후 나는 대학 등록금 400만 원을 낼 돈이 없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20년 동안 단 한 달도 쉬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해왔고, 엄마도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직장에 꾸준히 다녀왔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이 입학 첫 학기, 내게 학자금 대출을 받자고, 다만 이번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대출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 3학년 2학기가 될 때까지 즉, 6학기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전액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빚이 1000만 원이 훌쩍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학교 활동으로 장학금을 일정 정도 받기는 하지만 등록금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컸다.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은 당연히 전적으로 부모님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잘못이 크지만, 그 당시에는 '왜 우리 가족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다른 집부모님들은 등록금만큼은 '척척' 잘 내준다고 생각했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도 보통 한 학기만 받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컸다.

하지만 지금은 내 그런 생각도 어리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예 신용 기준 때문에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는 판국에 나는 부모님이 등록금 안 대준다고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홍익대 학생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거리에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홍대생이 떳다' 거리 퍼포먼스를 벌였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홍익대 학생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거리에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홍대생이 떳다' 거리 퍼포먼스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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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진실, 왜 솔직하지 못했을까

그러던 지난 겨울, 아버지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명문 'K대'를 나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하다가 무역회사로 옮겨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것은 절반만 진실이었다.

서울에서 어렵게 공부한 것은 맞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형편이 되지 않아 아버지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또한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던 것도 아니라, 고등학교 행정실 사무원으로 일하셨다. 22년 동안 믿어왔던 게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존심이 셌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우리에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제대로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고 십여 해가 지나버린 것이다. 연예인과 각계 인사들의 학력 위조는 많이 들어봤지만,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학력을 속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 내용을 어머니에게 들은 이후, 어머니는 그냥 모르는 척 하라고, 아버지가 먼저 이야기 꺼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아직도 아버지는 내가 진실을 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신다. 이제 와서 그 얘기를 꺼내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저 그 이후로 아버지가 좀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명문대가 아니어도, 행정실 사무원이 아니라 고등학교 관리실 아저씨였다 해도 우리에겐 그저 '아버지'였을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자식들에게 솔직하지 못했을까.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진짜 열심히 사는데 왜 안 될까"

그 일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굳건한 바위가 아닌, 한없이 연약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22년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딱 한 가지 실수하신 거고, 나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막말과 실수를 그 분에게 저질러오지 않았던가.

쉰이 넘은 우리 아버지. 아직도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일이 뜻대로 안 되면 너무 괴로워하시는 우리 아버지. 지금은 은행에 다니시는데, IMF 이후 또 한 번 찾아온 경제 위기로 은행·공장에서 대대적인 감원이 이뤄지는 시기라고 해서 걱정이 많다.

얼굴만 보면 아직도 사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동안(내가 보기에)인데, 나이 때문에 감원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많이 되시는 눈치다. 지난주 나와 남동생 앞에서 엉엉 목 놓아 울던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린다. 술에 취해 들어오시더니 우리를 붙잡고 "진짜 열심히 사는데 왜 안 될까"라며 정말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는 엉엉 우셨다.

우리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나는 너희를 위해 살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던 아버지. 아버지가 항상 우리를 안아줬는데, 그 날은 내가 아버지를 꼭 안아줬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살면서 남에게 해 끼친 것이라곤 없고, 사람 좋아하는 우리 아버진데 왜 이렇게 힘들어 해야 하는 걸까.

경제위기, 우리집 행복만은 앗아가지 않기를...

거짓 학벌에 대한 충격도 금방 잊혀졌고, 학자금 대출이야 졸업 후 차차 갚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우리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아버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이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도 "우리 아버지처럼 항상 웃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 자신이 너무나도 자신감을 잃어 버린 것 같아서, 오로지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야만 아버지로서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가 아닌데. 나도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아버지는 스스로 아직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고 계신 것 같다.

그깟 경제위기, 우리집에서는 항상 함께해 오던 것이니까 두렵지 않다. 다만 행복만은 뺏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자신감과 웃음을 앗아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직 미완성된 우리 가족 그리고 아버지와 나와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고 또 걱정된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우울해하면서 그런 하루하루가 또 지나갈 거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마치고 서로의 무릎을 베고 TV를 보는 그 정도의 행복은 찾을 수 있을 거다. 나는 정말, 그 정도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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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족에게 길을 묻다] 공모작입니다.



태그:#아버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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