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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형제 중 막내인 나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다. 모두 두 살 터울로 큰형과 나는 4살 차이가 난다. 예전 형제 간에 비하면 그리 큰 나이 차는 아니지만, 저출산이 보편화돼 많아야 둘만 낳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꽤나 큰 나이 차라 할 수도 있겠다.

 

더욱이 막내인 나에게 '큰형'은 산술적인 네 살 차이보다 훨씬 더 큰 나이차가 있다. 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는 우리 '큰형' 이야기다.

 

모든 책임 떠안아야 했던 큰형의 어린 시절

 

비교적 도시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우리 동네에서도 3형제는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부모님은 이웃 어른들로부터 "아들이 셋이라 든든하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듣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셋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라며 짐짓 엄살(?)을 부리셨지만, 얼굴엔 미소가 넘쳤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경험하신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 형제들에게 '우애'를 강조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말싸움한 것을 빼고는 부모님 말씀처럼 사이좋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큰형은 언제나 "동생들을 잘 보살피라"는 부모님 말씀대로 학교에서 저학년인 동생들이 무슨 사고를 치지는 않는지, 선배에게 맞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며, 작은 형과 나를 아주 잘 돌봐(?)줬다.

 

큰형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형에게는 '장남'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마냥 개구쟁이 시절이었던 초등학교를 넘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명절과 같이 친척 어른들이 많이 모일 때면 장남으로서 큰형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언젠가 한 번은 큰형과 작은형, 그리고 나까지, 똑같이 부모님께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잘못에는 벌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벌을 받고 난 후에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정도로 호되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런데 큰형은 똑같은 벌을 받고 난 이후에도 장남이라는 이유로 작은형과 나보다 더 많이 혼났다. 상당히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는데, 그 이후로 큰형은 작은형과 나에게 부쩍 잔소리를 많이 했다. 난 그런 큰형이 서운하기만 했다.       

 

대학을 포기한 형, 권하지 못한 나

 

어느덧 큰형과 작은형이 고등학교, 난 중학교에 다니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형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부모님이 성적을 가지고 형들을 나무랄 때면 그 비교 대상은 항상 내가 됐다. "넌 형이 돼서 동생보다 못하면 어떡하니." 난 형들에게 미안했지만, 형들은 오히려 "셋 다 못하는 것보다는 너라도 잘해서 다행"이라며 나를 격려해 줬다.

 

학창시절, 내가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반은 아마도 그런 형들에 대한 미안함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큰형이 고3, 작은형이 고1, 내가 중2던 1997년. 고등학교를 나오면 당연히 대학을 가던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을 나와야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그 시기(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 큰형은 공장으로 취업하는 것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다.

 

2년을 주기로 작은형과 내가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에서 큰형은 대학진학을 스스로 포기했다. 넘쳐나는 대학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못 갈 거 없었지만, 큰형은 그렇게 무언의 양보를 했다. 집안 형편상 3명을 모두 대학에 보낼 수는 없다는 게 부모님의 생각이기도 했다.

 

매번 한 자리 수 등수가 새겨진 성적표를 받아오던 그때의 나는 어렴풋하게 형이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형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때의 나는 내가 무슨 고등학교를 진학해 어떤 대학을 갈까에 관심이 더 많았지 형이 대학을 가고 안 가고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서른에 전문대학 졸업한 형

 

2년 뒤 작은형이 대학에 진학했고, 다시 2년 뒤 내가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길에 올랐던 큰형은 몇몇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지금은 꽤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두 동생을 위해 부모님에게 학비를 보태주기도 했으며, 대학 생활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며 동생들의 용돈을 챙겨주는데도 아낌이 없었다.

 

그러던 큰형이 재작년 대학에 진학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본인이 공부하고 싶었던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했다.

 

나에게 수강 신청하는 방법을 묻고, 영어가 너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놓는 형을 보며 내 마음은 뿌듯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2년, 올해 30이 돼서야 큰 형은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진급하려 해도 '대졸'이 '고졸'보다 유리하고…, 사회에서는 정말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하더라. 그래서 대학에 들어간 거야."

 

허물없이 동생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형은 끝내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형이 포기한 대학을 편안하게 다닌 나로서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 지난날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지난날부터 지금까지 형이 살아온 삶은 앞으로 내 삶에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인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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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족에게 길을 묻다' 응모글.


태그:#대학,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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