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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가가 많이 올라 너도나도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죠. 앞으로도 이런 오름세는 계속된다니 사람들이 '주식주식' 하는가 봅니다. 그래도 저에게 주식은 선뜻 다가오지 않습니다. 주식이란 여윳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물론 저도 주워들은 건 있어서 CMA(종합자산관리계좌)니, MMF(머니마켓펀드)니, 주식형 펀드니 하는 말들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습니다.

주식 하면 제가 일했던 한 만화가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화실엔 막 만화를 배우는 문하생까지 11명이 있었는데, 워낙 인기가 없다 보니 부지런히 원고를 해야 생활비를 버는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이 하나 있는데, 선생님이 화실에서 일하는 제자보다 돈을 적게 가져간다는 겁니다.

화실 제자보다 수입이 적다니. 그래도 화실을 이끄는 작가인데. 저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일을 많이 한 사람이 더 가져가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는 것이죠. 그 뒤로 선생님들 몇 분을 더 겪어봤지만, 그분처럼 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만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원고료를 받아 팀원들에게 나눠줬어요. 실장 직함을 가진 선배가 제일 많이 가져갔고,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빠른 제 또래가 있었고, 다음이 선생님이셨죠. 그러니까 선생님은 수입 순위가 화실에서 세 번째였던 겁니다.

ⓒ 위창남
수입이 제일 많았던, 실장 직함을 가진 선배는 두 살이 조금 넘는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고, 선생님도 초등학교 들어가지 않은 아이 둘이 있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선생님 수입으로는 생활비가 모자라거나 빠듯했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모자라는 생활비를 메웠을까요.

그건 바로 주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이득금으로 모자란 생활비를 조금씩 보탠 것이었어요. 정확히 얼마를 버셨는지 모르지만, 자신감 있을 때 하시는 큰 헛기침을 거르지 않는 걸 보니 도움이 되긴 했나 봅니다.

그런 선생님께 큰일이 터졌습니다. 전 '깡통주식'이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어요.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주식이 폭락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하던 출판사에서도 원고료가 계속 깎이자 결국은 만화화실을 접기에 이르렀어요. 화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화실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뒤 선생님은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를 하셨고, 사모님과 함께 광명 어느 시장에서 지금까지 장사를 하십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란 차를 몰고 도매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 오는 것이지요.

인사드리러 갔더니 큰 키만큼 그 큰 목소리는 변함 없으셨습니다. 다시 주식을 조금씩 한다며 댁에서 가까운 증권사 객장에 발걸음을 하시나 봅니다. 그곳에서 주식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모양인데, 그런 정보라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 비해 아무래도 부족하겠죠.

"돈 좀 버셨어요?"라고 여쭙자 "다들 벌었다고 난린데, 나만 왜 비켜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돌아왔어요.

"돈도 없지만, 옛날일 때문에 겁나서… 말 그대로 푼돈이지 뭐."

그분이 언젠가 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돈이란 그래. 특히 남자에겐.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은 가장이 아닌 것 같아서 면목이 없거든."

전 그분이 주식으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더는 손해 보지 않는, 그래서 예전 화실을 할 때 얼마 안 된 돈이었지만 가장으로서 자존심은 지켰던 만큼은 버셨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대박·쪽박의 기억> 응모글


태그:#주식, #깡통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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