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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스승의 날 하면 기억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사람은 비록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또 대학교 교수님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이보다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사람이 전해준 말은 약해빠진 나의 마음가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또한 그 말은 어린 내게 '용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게 해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그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나는 답한다. 그 사람은 바로 나의 하나뿐인 사부, 금산 '비룡태권도의 관장님 정현도 관장님이라고. -필자 주

1호 제자, 사부를 만나다

▲ 나의 생일날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셨던 사부님, 편지에 멋진 말씀을 잔뜩 넣어 주셨다.
ⓒ 곽진성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다. 당시 부여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직장 이동 때문에 금산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사가 즐겁지 않았다. 친하던 친구들과 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 금산에서 학교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한 아이와 사이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키고 컸고 덩치도 산만한 아이였는데, 그 덩치를 믿고 나를 귀찮게 했다. 나도 강하게 나갔어야 했지만 그 아이의,

"너 한판 뜰래?"

그 한 마디에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었다. 이런 아들의 마음고생을 안 엄마는 긴급처방을 내렸다. 태권도장에 다니게 한 것이다. 나는 태권도 배운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지만 엄마 말을 고분고분 들어야 했다. 당시 나는 말 잘 듣는 초등학교 2학년생였으니까.

하지만 엄마 말마따나 처음 가게 된 도장은 도장이라 하기엔 너무나 조용했다. 보통 태권도 도장이라면 수련생들의 기합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야 하는데 그런 열기는커녕, 사람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왜 아무도 없지? 누구 없어요?"

내가 도장 구석구석을 돌며 소리쳤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네가 진성이구나? 반갑다. 하하하."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돌아 본 물체에 나는 더 놀라고 말았다. 어린 내눈에 곰보다 더 크게 보이는 우람한 체구의 사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저 사람이, 이 도장의 주인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내가 생각없이 물었다.

"아저씨, 왜 다른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들려온 것은 그 남자의 쩌렁쩌렁한 말.

"아저씨가 뭐니, 이제부터 사부님이라고 불러!"
"네!"


그 남자의 우렁찬 말에 나는 주눅이 들어 나는 얼른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남자, 아니 사부님이 이번에는 웃으면서 말을 한다.

"사실, 태권도장이 엊그제, 문을 열었단다. 진성이 네가 첫 번째 제자다."

사부님 말대로 나는 제 1호 제자였다. 사실 사부님의 제자라고는 나뿐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수식어가 불필요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부님께 들은 무도인의 자세

▲ 처음 출전한 대회라 내심 걱정되었지만, 사부님과 함께였기에 한편으로 편한 마음이었다.
ⓒ 곽진성
뭐 어쨌든, 다음날부터 사부님과 나의 일대일 수련연마가 시작되었다. 뭐, 수련연마라고 해서 궁극의 필살기라든지, 권법전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둘이서 어색하게 준비운동하고 발차기 하고, 틈나면 품세 연마하는 지극히 평범한 수련이었다.

너무 평범한 운동이었기에, 아무리 연습한들 실력이 늘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제자가 나 하나뿐이 없는 사부님도 왠지 실력없는 사람같아 보였다. 그래서 뾰루퉁하게 사부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사부님, 괜히 시비를 거는 아이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나의 뾰루퉁한 말, 하지만 사부님은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진성아, 무도인은 참아야 하는 거야. 아무 때나 주먹을 쓰면 그건 무도인이 아니지. 하지만 물론 참아서 안 되는 상황도 있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소중한 사람들이 곤욕을 치를 때. 그때는 용기 있게 맞서야 돼. 그것이 무도인이야."

참아라. 하지만 참아서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용기 있게 맞서라는 사부님의 말, 너무 멋진 말이었다. 그 말은 어린 내 마음 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부님은 어린 내가 깜짝 놀랄 만큼의 경력을 지닌 분이셨다.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다가 은퇴해 금산으로 내려오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겸손하셨고 무도인임에도 유쾌하고 다정하셨다. 그렇기에 처음 봤을 때의 "곰이다!"라는 무서움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친구들을 위해서 맞서라는 사부님의 그말, 하지만 내게 그 말을 실천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 당시 키 큰 그 아이의 시비는 다행히 내게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친구들 사이에 태권도 유단자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이의 횡포는 내게서 내 친구들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내 친구들은 순하디 순한 아이들이라 그 횡포에 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야 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아이의 횡포가 나를 벗어났다는 데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부님의 도장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부님의 출중한 지도력과 실력이 소문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장은 곧 내 또래 친구들과 몇 살 더 많은 형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렇기에 재밌는 시간이었다. 나도 친구, 형들과 친해져서 재밌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 나의 사부였던 정현도 관장님, 사부님과 함께 출전한 대회에서 우리 태권도장 사람들은 모두 발군의 실력으로 메달을 차지했다.
ⓒ 곽진성
용기를 내, 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그리고 다음해 여름, 사부님은 태권도 단원들을 이끌고 타 지역으로 태권도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도 처음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첫 출전이다 보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과연 1회전이나 통과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도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부님과의 오랜 수련이 빛을 발했는지 나는 파죽지세로 상대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준결승전 상대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큰, 당시의 나로서는 최홍만 선수보다도 크게 보이는 상대였다.

그리고 준결승 상대는 전 경기 KO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고 한다. 세상에, 초등학교 경기에서 KO승이라니, 나는 경악했고 몸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나와 내 친구들을 못 살게 굴던 그 키 큰 아이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경기 시작. 역시 상대는 엄청 강했다. 나보다 키도 크고, 다리도 긴 상대방의 공격에 계속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맞은 곳이 너무 아팠다. 이것은 어른과 아이의 싸움 같았다.

그런데 일방적인 경기가 계속되는 찰나, 그 키 큰 상대편이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는 그 주먹에 맞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태권도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것은 반칙이었다.

덕분에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고 나는 너무 아파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사부님, 너무 아파서 더 못하겠어요. 기권할래요. 안 할래요. 너무 강해요."

하지만 사부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진성아, 여기서 포기하면 안돼. 지금 포기하면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게 돼. 용기라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수록 도전해야 하는 거야. 상대가 아무리 높아보여도 최선을 다해 맞부딪치면 되는 거야. 지금은 무도인으로서 너 자신을 위해서 싸워야 할 때야."

▲ 키 큰 상대방의 발차기를 막아내고 있는 나, 몇 번 멋지게 막아내자 용기가 생겨 상대방을 몰아붙였다.
ⓒ 곽진성
사부님의 그 말에서, 친구들이 괴롭힘을 당해도 보고만 있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내가 지금 그 아이처럼 키가 큰 상대를 만나 포기하려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맞서는 용기,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맞서야 하는 용기.

다시 경기가 속행되었고 나는 기합소리를 내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왜 그렇게 몸에 기운이 펄펄 나는지, 상대방의 발차기를 몇 번 막아내자 자신감이 붙었고 나는 자신있게 발차기를 날렸다. 퍽, 드디어 나의 발차기가 상대방에 맞았다. 그와 함께 경기가 중단됐다.

이번에는 상대방 아이가 발차기에 맞아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세상에, 나보다 훨씬 컸던 그 아이가 울어버렸다. 그 상황에 나는 더욱더 용기를 얻게 됐다. 경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결국 나의 승리.

나는 너무 기뻐 사부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사부님은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부님이 나에게 가르쳐준 절대 무공, 그것은 바로 '용기'라는 것을. 자신감 백배 충전한 나, 그 다음날 바로 내 친구들을 괴롭히던 그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외쳤다.

"야, 너 오늘부터 내 친구들 괴롭히지마."

덧붙이는 글 | [공모] 특별한 5월, 난 이렇게 했다

 사부님과 함께 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해피엔드였다. 약한 나를 넘어, 당당한 나를 만들 수 있기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내게 초등학교 시절 3년이란 시간의 추억의 태반은 태권도 도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의 끝은 내가 대전으로 다시금 전학을 가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사부님과의 그 추억은, 그리고 전해준 '용기'는 언제까지나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비룡 태권도'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그리고 여전할까? 사부님의 그 늠름했던 모습은, 2007년 5월15일, 오늘은 나의 사부님이 너무 보고 싶은 하루다. 


태그:#스승의날, #사부님, #태권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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