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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곤줄박이 박새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이마와 뺨은 흰색, 목은 검은 색, 등 뒤엔 반달 모양의 붉은 점과 푸르스름한 회색, 다리와 부리는 검은 색, 배 가운덴 노랑색입니다. '고운 줄과 무늬가 박힌 새'라 하여 곤줄박이라 부르게 되었나 봅니다.

호우주의보 속 장대비가 퍼붓던 지난 칠월 중순, 오랜만에 책이나 한 편 읽으려고 책장 문을 여는 순간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곤줄박이가 책장 속 문학전집 위에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쉿! 애기 곤줄박이들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 윤희경

곤줄박이는 넓은 세상을 마다하고 늘 집 주변을 빙빙 돌며 신발장, 가스배관, 쳇바퀴 안, 화분 속에서 어린 것들을 키워내지만, 올해처럼 서재까지 들어와 집을 짓기는 처음입니다. 사는 것이 뭐 그리 바쁜지 소설 한 귄 읽은 지가 언제인 듯싶게 까마득합니다. 곤줄박이가 여기다 둥지를 튼 것은 책읽기보다 컴퓨터와 TV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어떤 암시를 보내는가 싶어 속으로 웃어봅니다.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빗속을 뚫고 먹이를 구하려니 어미들도 힘이 부치나 봅니다. 새끼들이 찍찍거리며 먹이를 달라 보채댑니다. 양배추 밭에서 방아깨비와 청 벌레들을 잡아 노란 주둥이 속으로 집어넣어 봅니다. 몇 번 받아먹는가 싶더니 눈을 감아버립니다. 아마도 사람냄새를 감지해 위험을 느낀 모양입니다.

▲ 방아깨비를 받아 먹다 모른 척합니다. 벌레들을 잡느라 손끝이 벗겨졌는 데..
ⓒ 윤희경

긴 장마에 방이 눅눅해오고 책들도 곰팡이가 슬 듯한데 창문을 닫을 수 없으니 걱정입니다. 이젠 어린 새끼들이 놀랠까봐 방문을 여닫기조차 조심스럽습니다. 행여나 누가 창문이라도 닫아놓으면 큰일입니다. 생각다 못해 창문 밑에다 '책장 속엔 곤줄박이 새끼 네 마리가 살고 있으니 창문을 닫으면 절대 안 됩니다'하고 붉은 색으로 커다랗게 써 붙여놓았습니다. 그래도 맘이 안 놓여 막대기를 창틀에 대고 붙박이로 고정시켰습니다.

어린 것들이 노란 주둥이를 벌이고 먹이를 받아먹으며 두 눈을 도록거리는 모습은 보기드믄 구경거리입니다. 시간만 나면 쉬쉬 목소리를 죽여 가며 새끼들을 훔쳐보곤 했는데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습니다.

장마도 끝나고 태양이 눈부신 팔월 초 어느 날 아침, 어미들은 새끼들을 둥우리 밖으로 유인해내느라 열심입니다. 먹이를 물고 줄 듯 말 듯 약을 올리며 앞으로 나온 새끼에만 물려줍니다. 조금씩 거리를 두고 나는 연습을 하더니 이내 포르르 나무 밑에 내려와 앉습니다.

별안간 어미들이 파득거리며 울부짖고 야단입니다. 갑자기 들고양이가 나타나 어린 새들을 공격합니다. 고양이 습격에 얼굴이 할퀴고 꽁지가 물어 뜯겨 할딱거립니다. 고양이를 쫓아버리고 살펴보니 한 마리 꽁지가 빠져 푸스스하고 한쪽 눈에선 피가 흘러내립니다.

▲ 들고양이에게 물려 꽁지가 빠저 푸스스한 모습
ⓒ 윤희경

소독을 시키고 연고를 발라 놀램을 가라앉히고 다시 책장 둥지 속으로 옮겨놓습니다. 그나저나 눈을 다친 애기 새는 며칠이 지나도 눈을 뜨지 못하고 눈물만 질금거립니다. 새의 눈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수소문을 해봐도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눈 먼 새끼는 한 쪽 눈은 감고 한 눈은 끔뻑거리며 찍찍 어미들의 속을 태우고 내 마음까지 아리게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면 소나무 밑에 막 피어난 애기동자에게 눈을 뜨게 해달라고 부탁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 눈이 먼 어린 것, 안쓰러워 볼 수가 없습니다.
ⓒ 윤희경

그러기를 며칠, 눈 먼 새끼가 파득파득 날개 짓을 시작합니다. 이젠 비상을 하려나 봅니다. 어미들은 부리를 비벼대고 힘을 부추겨 줍니다. 나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어서 힘을 내, 어서 날아봐'하고 마지막 힘을 불어넣습니다.

"어린 아기 새야, 두 눈이 안보여도 마라톤 전 코스를 달려 골인하는 사람도 있단다. 너도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어, 한 눈으로 집중하면 두 눈 가진 새보다 더 높이 날 수 있어, 어서 날아봐, 어서."

그때입니다. 파드득 날개 짓을 몇 번 하는가 싶더니 바깥세상을 향해 '포롱포롱'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애기동자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돌아 발그레 일렁입니다.

▲ 애기동자 눈가에도 미소가 돌아....
ⓒ 윤희경

덧붙이는 글 | 2006 '나의 특종' 응모

윗 기사는 지난 7월 29일 '쉿! 곤줄박이가 책을 읽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은 글입니다. 먼저 번엔 날아가기 전까지만 소개해 드렸습니다. 새로 기사화 한 후반부에다 '눈 먼 곤줄박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씁니다.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 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을 사랑하는 예쁜님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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