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두 아이들의 2006년 활약상.
ⓒ 한나영

산전수전(山戰水戰) : 산에서의 싸움, 물에서의 싸움이란 뜻으로 세상일의 온갖 어려운 고비를 다 겪은 경험을 비유해서 하는 말.

인생을 살면서 별별 일을 다 겪게 될 때 사람들은 흔히 '산전수전'을 겪었노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전에 나오는 '산전수전'이라는 말에 현대적인 냄새를 풍기는 '공중전'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BRI@"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어요."

바로 내 말이다. 2006년 여름이.

2006년, 우리 집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작은딸의 'DNR(Daily News Record)' 일간지 1면 등극(?) 소식도 있었고,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뚫고 'SRO(Senior Regional Orchestra)'에서 당당히 제1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했던 큰딸의 유쾌한 소식도 있었다.

하지만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언급할 만큼 큰 일이 있었던 2006년은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먼저 동생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나만의 특종>을 열어가려고 한다.

외국 여행의 진수는 경찰과 병원 체험이라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미혼인 여동생이 몇 해 전 미국 횡단 여행을 할 때 겪었던 일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한 흑인 여성이 동생을 때리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야, 내 지갑 내놔. 너, 내 지갑 가져갔잖아."

동생이 얼떨결에 소매치기로 몰린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앰뷸런스가 왔다. (그런데 경찰차가 아니고 왜 앰뷸런스가 왔지? 동생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지금은 인도에 가 있어서 확인할 수가 없다)

동생은 '삐뽀 삐뽀' 소리를 내는 앰뷸런스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어머머, 세상에.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다니?"

미국 여행을 마치고 온 동생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흥분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뜻처럼 공평하지 않은 법!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고 하니…. 경찰에 가서 조사한 결과 그 여자는 정신 이상자로 밝혀졌고, 동생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경찰서를 나오게 되었다.

"언니, 갈 때는 앰뷸런스를 타고 갔는데 올 때는 흰색 경찰차를 탔어. 경찰이 나를 원래 있던 곳까지 데려다 줬어. 그나저나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외국에 와서 경찰차와 앰뷸런스를 타 본 건 처음이었어. 세상에 별 일이 다 있더군."

비록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한국에서도 안 해본 경험을 미국에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동생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이가 이렇게 말했다.

"외국 여행의 진수는 병원과 경찰 체험이라던데 돈 하나 안 들이고 제대로 경험을 했구먼."

돈은 안 들었다지만 시간 뺏기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던 황당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도 올 여름, 이곳 미국에서 원치 않았던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뉴욕으로 떠난 가족 여행

▲ 뉴욕 시내에 있는 카네기홀. 장영주 바이올린 콘서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 한나영

긴 여름방학을 맞아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동부의 해리슨버그를 출발하여 뉴욕과 보스턴,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돌고 오게 될 엿새 정도의 일정인 여행이었다.

자동차로 떠나게 될 여행은 왕복 스무 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행인지라 렌트카를 쓰기로 했다. 출고된 지 1년밖에 안 된 반짝거리는 신형 미니밴이 우리 수중에 들어왔다. 우리는 여행할 곳의 지도를 출력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면서 흥분되어 있었다. 모든 계획이 순조로웠다.

마침내 떠나게 된 여행, 여섯 시간 이상을 달려 뉴욕에 도착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그곳에서 우리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카네기홀 맞은 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빅애플'이라는 별명을 가진 뉴욕은 그 첫 인상이 서울과 비슷했다. 요란한 택시 경적 소리가 그랬고, 차선을 잘 양보하지 않는 것이나, 빠르고 활기찬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우리 가족은 진짜 뉴요커라도 된 양 익숙한 몸짓으로 뉴욕의 여기저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돌아다녔다.

말로만 들었던 뉴욕의 명소들(카네기홀과 센트럴 파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9.11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타임스퀘어, 자유의 여신상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둘러보면서 가족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 NBC 야외 스튜디오. 유명 앵커들의 얼굴이 보인다.
ⓒ 한나영

월드컵이 열렸던 그 기간에 나는 '뉴욕에도 월드컵 바람은 불고 있었다'를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리는 등 나름대로 뉴욕에서의 바쁜 2박 3일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날 NYU(뉴욕대학교)를 둘러보고 보스턴으로 향하게 되었다.

뉴욕을 채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였다. 늦은 점심을 차안에서 먹고 있는데 갑자기 많아진 교통량에 우리 차가 잠시 정차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앗, 교통 사고다

▲ 끔찍한 사고. 뒷창문이 휑하니 뚫리고 깨진 파편이 앞 좌석까지 튀었다. 트럭의 '미쯔비시' 로고가 우리 차에 박힐 정도였다.
ⓒ 한나영

'어, 이게 무슨 일이야? 웬 폭파? 여기가 아직 뉴욕인데 또 다른 9. 11 테러?'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뿔싸, 우리가 타고 있던 차의 뒤 창문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바깥 세상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뚫린 창문 뒤로는 집채만한 큰 트럭이 서 있었다.

차 안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7인승 미니밴의 운전석과 조수석까지도 파편이 튀었다. 맨 뒤에 앉았던 한국에서 온 대학생 조카는 등과 목에 파편이 가득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나는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되어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 식구들 모두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괜찮아?"

한참 만에야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차 안에 있던 사람 모두 숨을 쉬고 있었다. 피도 흘리지 않았다. 다섯 명 모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던 덕인지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일단 안도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큰딸이 휴대폰을 들더니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911에 전화 걸다

"헬로우, 교통사고가 났어요. 여기가 어디인지 잘 몰라요. 보스턴으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피를 흘리거나 의식을 잃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여기가 어디냐 하면… 저기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요."

앞 창문으로 보이는 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큰딸이 침착하게 사고 지점을 설명했다. 경찰이 금방 달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20분, 30분, 1시간이 지나도 경찰은 감감무소식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경찰이 쏜살같이 잘도 오던데 웬 일인지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911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또 다시 위치를 물었고 곧 온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우리 앞으로 구급차 한 대가 다가왔다.

▲ 맨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급차.
ⓒ 한나영

"사고를 당하셨나요?"

우리나라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견인차나 앰뷸런스가 먼저 출동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고가 나서도 한참 동안 큰길에 우리 차와 뒤 트럭만 외롭게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급차가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구급차도 냄새를 맡고(?) 달려온 게 아니라 우연히 길을 가다 사고를 목격하고 온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친 데가 없느냐고 물은 뒤 병원 응급실로 가자고 했다.

"눈에 보이게 크게 다친 건 없기 때문에 당장 응급실에 갈 필요는 없어요. 우선은 경찰을 만나보는 게 우리로서 먼저 할 일이에요."

▲ 열 번 이상 911에 전화하고 나서야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게으른(?) 뉴욕 경찰관.
ⓒ 한나영

미국에서의 교통사고 처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는 경찰의 판정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잘못은 전적으로 뒤 트럭에게 있다지만 괜히 병원에서 비싼 바가지 비용을 물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 2시간이 넘어서 늑장 출동한 뉴욕 경찰. 사고 경위서를 작성하고 있다.
ⓒ 한나영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2시간 이상을 기다려 출동한 경찰을 만나본 뒤(미국 경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는데 뉴욕은 원래 교통 관련 사건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늦게 출동하는 게 다반사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모든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허망했다.

▲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다. 덜렁거리는 브레이크등을 반창고로 붙이는 큰딸.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먼저 911에 전화를 걸고 사고 수습을 했던 일등공신.
ⓒ 한나영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리 파편이 차체에 묻고, 뒤가 훤히 보이고, 브레이크 등에 흰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은 '불구' 차 때문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 한나영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차가 저 모양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괜찮았을까.'

실제로 우리에게 다가와 걱정스럽게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Are you OK?"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그 여름밤은 처량했다. 굵은 비는 아니었지만 가늘게 비까지 내려 뻥 뚫린 뒷 창문으로 비바람을 맞아야 했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귀향(?)이었다.

집에 온 이후 복잡한 교통사고 처리를 해야 했다. 우리가 사는 버지니아주와 사고가 난 뉴욕주는 교통사고 처리가 조금 달라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리고 지루한 병원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과 미국 병원 두 곳을 거치면서 우리말로도 어려운 애매한 증상들을 영어로 설명하느라 고생을 했다. 특히 유리파편이 가장 많이 튀었던 조카는 샤워를 하고 병원을 다녔어도 "내 몸에 유리 박혔어"라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모처럼의 미국 여행이 빛을 바래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얘, 외국 여행의 진수는 경찰과 병원 체험이라잖아. 돈주고도 못할 그런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됐잖아"라고 위로했지만 그 말이 먹혀 들어갈 리가…. 우선 당장 찜찜하고 기분이 나쁘다는데 말이다.

▲ 사람 몸 뿐 아니라 짐에도 유리 파편이 박혀서 고생했다.
ⓒ 한나영

2006 여름. 그 해 여름은 참으로 끔찍했다.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하는가. 외국 여행의 진수는 경찰과 병원 체험이라고. 우리 앞에선 절대로 그런 말하지 마시길.

덧붙이는 글 | <나만의 특종> 공모 기사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