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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녘, 한없는 평화로 다가온 작은 우동가게
ⓒ 김수자
그때, 눈을 머금은 잿빛 하늘이 거리의 모든 그림자를 지우고 저 혼자 한껏 무겁던 그때, 왜 그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는지, 왜 그 뒷모습에서 당신을 떠올렸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백 년 전의 풍경이 아직도 흘금흘금 남아 있는 소공동 어름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품을 팔고 오후 네 시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저무는 시간이었지요. 터벅터벅 인적 드문 거리를 걷다가 문득 길 건너편으로 눈길 돌렸을 때, 그 남자의 뒷모습이 있었습니다.

@BRI@우동이라고 적힌 검은 천 조각들 아래 불 밝힌 아주 작은 우동 가게. 동그란 나무 의자가 여섯 개쯤 일렬횡대로 놓인 거기,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의자 위에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앉아 아마도 우동을 먹고 있었습니다.

긴 탁자 뒤에선 하얀 조리용 모자를 쓴 남자가 한 명뿐인 손님을 놓고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눈이 올 듯한 날이었습니다. 오후 네 시쯤이었고요. 점심도 저녁도 아닌, 너무 늦은 점심이거나 아주 이른 저녁을 먹는 그의 뒷모습이 당신을 불러내었습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나요? 혼자서도 맛있게 밥을 먹고 이쑤시개 하나 이 사이에 끼고 나올 만한 배짱도 이젠 생겼나요? 눈이 올 듯한 날에도 끄덕하지 않고 우동 한 그릇 혼자 비울 만큼 단단한 심장을 마침내 장만했는지요?

눈이 올 듯한 날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는 오후 네 시고요. 혼자 밥 먹는 당신 뒷모습 보아도 쓸쓸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나도, 혼자 밥 잘 먹으니까요. 누가 그런 내 뒷모습 보고 쓸쓸해하는 건 싫으니까요. 세상 어딘가에는 늘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림자 지워진 날에도 모두의 뒷모습에는 저마다의 그림자가 얹혀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우리가 함께 먹었던 밥을, 그 밥들을 지어 우리를 먹였던 이들을 생각합니다.

살 만한 세상이지요. 그러니, 부디 안녕하세요.

덧붙이는 글 | 20회 동안 보잘것없는 글을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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