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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한 가을, 마포 설렁탕 한 그릇 어때요?
ⓒ 이종찬
설렁탕과 곰탕, 갈비탕의 차이는 무엇일까?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 속풀이용 해장국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음식이 탕 종류의 음식이다. 특히 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요즈음, 가을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단풍잎 투둑투둑 떨어지는 거리를 걷다보면 소주 한 병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탕 한 그릇이 놓인 식탁이 더욱 그립다.

탕 종류의 음식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 탕의 3총사라 불리는 설렁탕과 곰탕, 갈비탕이다. 설렁탕과 곰탕, 갈비탕은 예로부터 집안에 잔치가 벌어지거나 기관이나 단체에서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행사를 할 때 바늘과 실처럼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설렁탕과 곰탕, 갈비탕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갈비탕은 잘 아시다시피 소갈비를 넣고 포옥 끓여낸 탕을 말한다. 하지만 설렁탕과 곰탕의 선을 나누기는 그리 쉽지 않다. 언뜻 보면 둘 다 소뼈와 사골, 사태고기, 내장 등을 넣고 24시간 이상 푹 고아 진한 국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곰탕은 쇠고기와 내장을 넣고 끓이는 국으로 여기에 밥을 말면 곰탕이 되고, 사골과 쇠머리, 우족, 등뼈 등을 많이 넣어 끓이면 설렁탕이 된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설렁탕은 국물을 끓일 때 쇠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육탕(肉湯)인 곰탕에 비해 뼈 종류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 이 집에는 파김치와 배추겉절이, 신김치, 깍두기 등 4가지 밑반찬이 나온다
ⓒ 이종찬
▲ 노르스름한 국물에서 구수한 향기가 풍긴다
ⓒ 이종찬
선농탕, 선농제를 지낸 뒤 백성들에게 나눠준 음식

우스개 소리로 '국물이 설렁설렁해서 건져 먹을 게 별로 없다'고 말하는 설렁탕이란 이름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백과사전에 따르면 설렁탕의 처음 이름은 '선농단에서 끓인 국', 즉 '선농탕'이었다. 이 선농탕이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설농탕' 등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지금의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농단은 무엇인가. 선농단은 조선 태조 때부터 왕이 동대문 밖 전농동(지금의 제기동) 선농단 앞에 밭을 마련해 백성들에게 농사 짓기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낸 왕이 직접 쟁기를 잡고 이 선농단 앞에 있는 밭을 갈았다는 것이다.

그때 왕이 밭을 갈고 난 뒤 행사에 참석한 백성들에게 쇠뼈를 고아 국물에 밥을 말아 나눠주었다. 백성들은 그 음식을 선농단에서 나눠주는 음식이라는 뜻에서 '선농탕'이라 불렀다는 것. 따라서 선농탕의 뿌리는 신라시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라시대 때에도 해마다 봄에 선농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선농탕'이 지금의 설렁탕 맛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지금의 설렁탕은 대부분 쇠머리와 사골, 도가니, 뼈, 사태고기, 양지머리, 내장에 생강, 마늘, 파 등을 재료로 하여 24시간 이상 푹 고아 만든다. 그리고 이 국물을 뚝배기에 담아 밥을 말아내기 때문에 예전의 선농탕과는 조리법이나 들어가는 재료에 큰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 설렁탕에는 송송 썬 대파를 수북히 집어넣어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 이 집 설렁탕의 특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우족 등의 재료에 차돌백이를 한가지 더 넣는다는 데 있다
ⓒ 이종찬
"이 집 설렁탕 한 그릇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마포가 말이야, 예전에 포구가 있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음식문화가 참 잘 발달한 곳이야. 이곳 설렁탕 한 번 먹어봤어? 이곳에는 설렁탕을 잘하는 집이 두 곳 있는데, 내가 먹어본 바로는 지금 가는 집이 제일 맛있어. 한 그릇 먹고 나면 말이야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데, 어제 마신 술이 확 다 깨버려."

지난 22일 오후 2시. 얼마 전 정치평론집 <엽기공화국>을 펴낸 언론인이자 시인인 윤재걸(59) 선생과 함께 찾았던 서울 마포 용강동에 있는 한 음식점.

윤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집 근처에 다가가자 어디선가 구수한 내음이 금세 입맛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임에도 설렁탕을 후루룩후루룩 게눈 감추듯이 떠먹는 손님들로 왁자지껄하다. 빈 자리가 쉬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이리저리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윤 선생이 종업원에게 설렁탕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나그네가 '대낮부터 웬 소주?'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윤 선생이 "이 집 설렁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해지는 게 세상 부러울 게 없다"며, "평소에 나 혼자 오면 특을 시켜 먹어"라고 말한다.

▲ 국물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자 까끌까끌했던 입속이 이내 스르르 풀리는 듯하다
ⓒ 이종찬
▲ 설렁탕의 처음 이름은 '선농단에서 끓인 국', 즉 '선농탕'이었다
ⓒ 이종찬
차돌백이를 넣어 끓인 진국 설렁탕 드셔 보셨나요?

이윽고 송송 썬 대파가 수북히 담긴 양푼이 놓여진 식탁 위에 밑반찬과 함께 노르스름한 빛깔을 띤 설렁탕 한 그릇이 놓인다. 한 가지 색다른 점은 여느 설렁탕집처럼 밑반찬으로 생김치와 국물이 그득하게 담긴 깍두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파김치와 배추겉절이, 신김치, 깍두기 등 4가지 밑반찬이 나온다는 것이다.

구수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 국물에 송송 썬 대파를 수북히 넣고 국물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자 까끌까끌했던 입속이 이내 스르르 풀리는 듯하다. 고춧가루 조금 쳐서 다시 국물 한 수저 입에 떠넣자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도 구수한 맛이 있었다니'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설렁탕 속에 든 국수가락과 밥,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자 구수한 감칠맛이 입 속을 맴도는 게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쫄깃쫄깃 씹히는 국수가락과 밥알, 그리고 부드럽게 씹히는 살코기의 고소한 맛이 혀끝을 끝없이 희롱한다. 설렁탕을 떠먹으며 가끔 집어먹는 파김치와 배추겉절이의 맛도 참 잘 어울린다.

이 집 설렁탕의 특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우족 등의 재료에 차돌백이를 한가지 더 넣는다는 데 있다. 윤 선생은 "지금까지 설렁탕을 여러 곳에서 먹어봤지만 이 집 설렁탕 국물처럼 진하게 우려난 국물은 보지 못했다"며 "걸죽하면서도 구수한 국물 맛 때문인지 젊은이들보다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이 더 많이 온다"고 귀띔한다.

▲ 설렁탕은 대부분 쇠머리와 사골, 도가니, 뼈, 사태고기, 양지머리, 내장에 생강, 마늘, 파 등을 재료로 하여 24시간 이상 푹 고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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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렁탕, 그 기막힌 맛에 빠져 보세요
ⓒ 이종찬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도 구수한 맛이 있었다니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소리와 함께 이내 그 맛난 설렁탕이 거의 다 비워진다. 동시에 이마와 목덜미, 등줄기에서 땀이 비오듯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윤 선생의 뚝배기와 나그네의 뚝배기에 쬐끔 남아 있던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워진다. 두 사람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세상에, 설렁탕에서 이렇게 시원하고 구수한 감칠맛이 날 수가 있다니. 쌀쌀한 가을바람도 이 기막힌 설렁탕의 맛 앞에서 어찌 무릎 꿇지 않겠는가. 사실, 배가 부르지 않고 손님만 별로 없었다면 한 그릇 더 시켜 먹고 싶다. 아니, 앞으로 좋은 벗들을 만나면 그 벗들과 함께 이 집으로 와서 설렁탕에 소주 한 잔 나누고 싶다. 그때는 반드시 설렁탕 특대를 시켜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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