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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으로 출렁이는 남녘바다 위에도 가을빛이

▲ 쫄깃쫄깃 씹히는 가을맛 보세요
ⓒ 이종찬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가을빛은 산과 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쪽빛으로 잔잔하게 출렁이는 남녘바다 위에도, 짙푸른 물감을 마구 풀어놓은 듯한 하늘과 바다를 일직선으로 가르는 끝없는 수평선 속에도,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의 쉼도 없이 마구 출렁이는 남녘바다 속에도, 어김없이 고운 가을빛이 물들고 있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면서 서녘으로 뉘엿뉘엿 지는 가을해가 빚어놓는 바알간 빛깔의 노을이 너무나 곱고 예쁘다. 이 세상의 모든 산과 들, 강과 바다를 붉게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지고 난 자리. 그 자리에 천천히 내리는 검푸른 어둠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눈을 들어 사랑하는 그 사람의 눈썹처럼 걸린 초승달을 바라보는 것도 멋지다.

남녘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가을저녁은 숨 막히도록 찬란하게 빛난다. 저만치 검푸른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저도 연륙교가 내뿜는 파아란 불빛과 어둠이 깊어질수록 검푸른 허공에서 더욱 눈부신 빛을 뿜기 시작하는 별무리. 별빛처럼 남녘바다 위에 점점이 켜지는 불빛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실루엣처럼 박혀 있는 연인 한 쌍.

남녘바다의 가을밤은 어둠이 깊어갈수록 점점 더 술렁이기 시작한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쫄깃하고 고소한 가을 생선회를 먹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특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들도 그 어느 계절보다 살이 더욱 단단해지고 통통해지면서 제 맛이 든다.

이른 새벽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생선들

▲ 지는 노을 바라보며 집어먹는 가을 생선회의 맛은 더욱 기막히다
ⓒ 이종찬
▲ 파아란 어둠살이 밀려오는 저도 앞바다
ⓒ 이종찬
경남 마산에서 경남대 쪽을 빠져나와 고성, 통영 쪽으로 달리다보면 진동에 닿기 전에 검문소가 하나 나온다. 그 검문소에서 왼쪽으로 꼬부라진 길을 따라 쭈욱 들어가면 수정이 나오고, 수정을 지나쳐 바닷가 쪽으로 조금 더 달려가면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구복 앞바다가 넘실댄다.

그 맑고 푸른 바다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섬, 다리 두 개가 걸려 있는 그 작은 섬이 마산에서 활어회가 맛있기로 이름 난 횟집이 따개비처럼 박혀 있는 저도다. 그 중 앞에 걸쳐져 있는 주황빛 다리가 '콰이강의 다리'이며, 그 뒤에 걸쳐져 있는 하얀 빛깔의 다리가 몇 해 앞에 새롭게 놓은 저도연륙교다.

이 다리를 건너 저도로 조금 더 들어가면 쪽빛으로 빛나는 잔잔한 바닷가 쪽으로 생선회을 파는 횟집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이 횟집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들은 그날그날 이른 새벽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생선들이다. 이는 이곳에서 생선 횟집을 열고 있는 주인들 모두가 이 바다를 텃밭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활어전문점이 하나 있다. 그 집은 출렁이는 쪽빛 바다 위에 널찍한 횟집이 마치 커다란 배처럼 차려져 있고, 출렁이는 쪽빛 바다 속에 그물 수족관이 있다. 그야말로 그 선상횟집에 앉아 출렁거리며 고소하고도 담백한 생선회를 즐기고 있으면 마치 배를 타고 수평선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까지 만끽할 수 있다.

"아지메! 소주 서너 병하고 모듬회 한 접시 주이소"

▲ 어둠 속에 파아란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저도 연륙교
ⓒ 이종찬
▲ 생선회는 찬 바람이 부는 지금이 가장 살이 단단하고 쫄깃하다
ⓒ 이종찬
지난 22일(금) 저녁 6시. 붉게 지는 가을노을이 쪽빛 바다를 발갛게 출렁이고 있을 무렵, 서예가 석강 윤환수 선생과 함께 찾았던 저도 앞바다는 수많은 사람들로 술렁대고 있었다. 평일 저녁인데도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새파란 어스름이 살짝 지고 있는 저도 앞바다를 끼고 있는 횟집마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대체 이곳 생선회가 얼마나 맛이 있기에 아이, 어른, 연인 할 것 없이 저리도 기분 좋게 웃으며 상추쌈에 싱싱한 생선회를 싸서 볼 터지게 먹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진해만의 생선회가 전국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하지만, 또한 가을전어도 진해만에서 잡히는 떡전어가 가장 고소한 감칠맛이 난다고 하지만 저렇게 쉼 없이 먹어대면 입에 물릴 만도 한데.

"아지메! 여기에도 소주 서너 병하고 모듬회 한 접시 주이소."
"오늘은 물때가 좋아가꼬 다른 날보다 고기가 훨씬 더 좋아예. 전어도 괜찮지만, 감성돔, 우럭, 꼬시락도 제 맛이 한껏 들었지예."
"그라모 아지메가 알아서 골고루 섞어가꼬 퍼뜩 한 접시 주이소. 그라고 우리는 나중에 매운탕 대신 회덮밥을 해 묵구로(먹게) 해 주이소."


그때 나그네가 "날씨도 쌀쌀한데 매운탕이 더 낫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석강 윤환수 선생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생선회를 적당히 먹고 난 뒤에는 매콤한 매운탕보다는 쫄깃한 감칠맛이 맴도는 회덮밥을 먹어야 된다고. 그리고 생선회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느끼려면 흰살 생선, 붉은살 생선 순서로 먹어야 한다고.

붉은 살 생선은 된장에 찍어먹어야 제 맛

▲ 전어는 진해 떡전어가 가장 맛이 좋다
ⓒ 이종찬
▲ 가을 밤바다 위에서 먹는 모듬회 한 접시
ⓒ 이종찬
"생선회는 요즈음처럼 찬 바람이 살짝 부는 가을에 먹어야 살이 단단하고 통통한 게 제 맛이 난다카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 도다리를 빼고는 이때 먹는 생선회가 제일 고소하고 깊은 감칠맛이 느껴진다니까."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천천히 출렁이는 선상횟집에 앉아 어둠이 깔리는 저도 앞바다를 그윽하게 굽어본다. 선상에 앉아 바라보는 남녘의 가을 밤바다는 조금 쓸쓸하다. 이윽고 육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낙네 한 명이 생선회 한 접시와 삶은 고구마, 삶은 땅콩, 상추, 깻잎, 초고추장, 고추냉이, 집된장 등을 탁자 위에 주섬주섬 올린다.

가지런하게 썰어놓은 싱싱한 생선이 정말 맛깔스럽게 보인다. 군침이 절로 꿀꺽 삼켜진다. 소주 한 잔 입에 홀짝 털어 넣고 흰살 생선 서너 점 된장에 찍어 상추 위에 올린다. 그때 석강 윤한수 선생이 또다시 한마디 툭 던진다. "흰살 생선은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 좋고, 붉은 살 생선은 된장에 찍어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그랬다. 흰살 생선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보니 된장에 찍어먹는 맛보다 훨씬 좋다. 특히 그물을 쳐서 만든 바다수족관에서 금방 건져 올려 썰어 놓은 생선이어서 그런지 살이 물컹거리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쫄깃쫄깃 혀끝에 착착 감긴다. 된장에 콕 찍어먹는 진해 떡전어의 맛도 고소한 게 젓가락이 자꾸만 간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손이 가는 회덮밥 한 그릇

▲ 바다에 있는 그물 수족관에서 건져낸 생선회 한 접시
ⓒ 이종찬
▲ 고소한 땅콩가루가 들어있는 회덮밥 재료
ⓒ 이종찬
마지막으로 나오는 회덮밥의 맛도 기막히다. 이 집 회덮밥은 잘게 썬 깻잎과 살짝 구운 김, 채 썬 오이, 땅콩가루, 참기름 등을 널찍한 그릇에 담아 밥과 함께 내놓는다. 그러면 손님들이 알아서 비벼먹어야 한다. 즉, 회덮밥 재료가 담긴 그릇에 남은 회와 초고추장, 된장 등을 넣고 젓가락으로 회덮밥을 헤집듯이 슬쩍슬쩍 비벼먹으라는 것.

특히 회덮밥 재료 속에 땅콩가루가 들어 있어서 그런지 뒷맛이 참 고소하다. 회덮밥 한 수저 입에 넣으면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담백한 회 맛과 함께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듯한 고소한 맛이 정말 끝내준다. 말 그대로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그 기막힌 맛이 바로 이 집 회덮밥의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날, 나그네는 저도 앞바다 선상횟집에 앉아 가을 생선회의 맛과 가을 밤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느꼈다. 사실, 어둠살이 잔뜩 낀 가을 밤바다는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면 오래 바라볼수록 불빛 한 점 없는 남녘바다가 나그네를 자꾸만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깊어가는 남녘의 가을 밤바다에 앉아 소주 한 잔 홀짝거리며 집어먹는 생선회. 어스름이 지는 가을 밤바다 위로 가끔 툭툭 튀어 오르다가 스치는 불빛에 금빛 물방울을 촤르르 흩뿌리는 물고기. 캄캄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길게 떨어지는 별똥별. 그리고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손이 가는 회덮밥 한 그릇. 그래. 이만하면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 아니겠는가.

▲ 회덮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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