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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쉬던 시립도서관 3층 자료열람실
ⓒ 김수자
"그 동안 나는 어디서나 안식을 찾아보았지만 책을 들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기싱의 고백 중)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래 전 일인데, 그날 아침의 쨍하게 밝던 하늘은 지금도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여느 날보다 좀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한 시간쯤 흐뭇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마음의 여유 때문이었을까요?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활 했더니 새언니가 '병원에 가셨어요'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이에요. 창 밖으로 눈을 돌리는데 높고 파란 가을하늘이 확 들어왔습니다. 아, 이렇게 맑은 날 엄마는 혼자 병원에 가셨구나. 을씨년스런 병원 대기실에서 막연한 불안감으로 차례를 기다릴 엄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읽을 책도 많고 읽고픈 책도 많았지만 그냥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평소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치던 걸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지폐 한 장을 턱하고 건넬 때가 있잖아요. 착한 엔돌핀이 퐁퐁 솟아나는 그런 날 말이에요. 그날이 제게 그런 날이었습니다. 만날 퉁박이나 주고 또박또박 말대답이나 해서 엄마 속을 뒤집던 제가, 그날은 갑자기 착한 딸이 되어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대기실에 오두마니 앉았던 엄마는 갑작스런 막내딸의 출현에 눈이 동그래지다가 입이 벙긋 벌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연세만큼 경험도 많은 의사 선생님이 무슨 무슨 검사를 하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 어투며 분위기에서 어쩌면 예상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지만, 지웠습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우리 엄마도 비싼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버텼지요. 하지만 고집에 관한 숱한 신화를 어릴 적부터 충실히 만들어온 막내딸을 꺾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암3기 판정 받은 엄마

그렇게 엄마는 검사를 받고 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검사하던 날, 전날 저녁부터 거른 엄마와 함께 인사동에서 꽤 비싼 솥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 점심이 배앓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맛있게 드신 엄마의 마지막 끼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는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고, 또 도중에 포기하긴 했지만 1년간 항암치료도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모자도 여럿 사고 가발도 하나 장만했지만, 영 적응을 못하셨습니다. 적응 못하기는 옆에서 지켜보는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잘 버텼으면 싶은데, 영화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예쁘게 아팠으면 좋겠는데, 우리 엄마는 영 아니었지요. 힘들게 차려온 밥상을 쳐다보긴커녕 빨리 갖고 나가라고 성화나 하고,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사람 속을 뒤집기나 했으니까요. 게다가 툭하면, 니들이 내 고통을 아느냐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너희들은 모른다는 고독감, 그 절절한 심정을 아프지 않은 사람과 어찌 나눌 수 있겠어요.

엄마는 암세포뿐 아니라 그 고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나는 약해진 엄마를 외면하고픈 이기심과 싸워야 했고요. 아픈 이도 간호하는 이도 기진맥진, 매일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처참한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집 앞 시립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무엇에서 아픔을 견딜 힘을 얻었을까

산 아래 자리한 작고 낡은 도서관에 들어가 서가에서 눈에 드는 책을 뽑아듭니다. 좀 어렵다 싶은 철학책을 고르지요. 한 시간 남짓 그렇게 책을 읽습니다. 모래밭의 어지러운 발자국들을 바다 물결이 무심히 쓸고 가듯, 책을 읽는 사이 소란한 마음의 흔적들은 사라져 갑니다.

어느 날은 이해할 수 없는 낱말 하나, 구절 하나에 매달려 한 시간 내내 마음을 다합니다. 그러노라면, 흩어졌던 세포들이 빈자리를 메우고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고요해지지요. 그렇게 책이 내 마음을 한 장 한 장 닦아주고 나면 나는 말갛게 갠 얼굴로 다시 엄마에게 돌아갔습니다.

지금 엄마는 전보다 좀 작아진 위로, 전보다 훨씬 적은 양의 식사를 훨씬 오랜 시간을 걸려 꼼꼼하게 드십니다. 그래서 기운이 좀 떨어져 예전처럼 대들보가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웃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들의 눈길을 한 번 더 머물게 하는 미모와 자식들의 뱃살을 키우는 징한 손맛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 시절을 돌이키다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내가 도서관 한구석에서 책에게 위로 받던 그 시간, 엄마는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았는지, 무엇에서 아픔을 견딜 힘을 얻었는지. 아, 다시 무색해집니다. 병이 들어보아야 아픔만큼 외로운 건 없음을 알 듯이, 이렇게 무색해지고서야 내가 얼마나 생에 무식한지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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