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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드세요
ⓒ 이종찬

타는 목마름 싹 가시면서 배까지 든든해지는 막걸리

올해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무덥고 길다. 지난 주말 제10호 태풍 '우쿵'(원숭이의 왕, 손오공)이 한반도의 동남해로 다가오면서 그 지독한 무더위가 한 풀 꺾이는가 싶었다. 하지만 우쿵이 울산 앞바다에서 꼬리를 감추었다는 소식과 함께 또다시 산과 들을 뜨겁게 달구는 불볕더위가 살을 데일 정도로 뜨겁게 쏟아진다.

너무 덥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말을 걸거나 몸이 살짝 부딪쳐도 괜시리 짜증부터 먼저 난다. 진종일 타는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시원한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돌아서면 이내 또다시 목이 탄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데도, 무더위에 축 늘어진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럴 때 타는 목마름과 무더위를 한꺼번에 씻어주고, 땀으로 몽땅 다 빠져나간 몸의 기운을 시원한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게 하는 그런 음료는 없을까. 한 잔 쭈욱 들이키고 나면 귀청 따갑게 울어대는 저 매미소리가 반주처럼 들리고, 늘어진 몸이 추스려지면서 식욕까지 당기게 하는 그런 건강음료.

그래, 바로 그거다. 요즈음처럼 뜨거운 여름날, 아버지께서 벼논의 김을 매면서 피를 뽑다가 중참으로 꿀꺽꿀꺽 마시던 뜨물 같은 그것. 벼논을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땡볕 아래서도 한 잔 마시고 나면 타는 듯한 목마름이 한꺼번에 싹 가시면서 배까지 든든해지는 우유 같은 그것.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술 막걸리가 그것이다.

▲ 경기,수원 지역 시민단체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막걸리 주막
ⓒ 이종찬

▲ 막걸리의 밑반찬은 소박하다
ⓒ 이종찬

막걸리는 순수한 미생물을 자연 발효시켜 만든 건강식품

고두밥(찐 쌀)과 누룩을 섞어 물을 적당히 붓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 뒤 다시 물을 붓고 그대로 막 걸러냈다 하여 붙여진 이름 막걸리. 걸러낸 술이 소주나 청주처럼 맑지 않고 뜨물처럼 탁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탁주. 밥풀이 그대로 동동 떠있는 상태로 하여 채로 걸러내면 동동주, 채로 거르기 전에 곧바로 떠내면 맑은 청주가 되는 막걸리.

이처럼 막걸리는 물의 농도에 따라 채에 거르는 방법에 따라 제각각 다른 알콜도수와 다른 이름을 가지는 술이 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에게 가장 정겹게 들리는 그 이름은 막걸리일 것이다. 막걸리는 누구나 값싸게 먹을 수 있고, 갈증과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술이면서도 건강까지 챙겨주는 웰빙식품이다.

적당한 감칠맛과 청량미를 안겨주는 막걸리는 순수한 미생물을 자연 발효시켜 만든 자연식품이다. 알코올 성분 또한 6~7도 정도로 낮은 막걸리는 영양성분이 많아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술 아닌 술이다. 뿐만 아니라 막걸리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10여 종이나 들어있으며, 다른 술과는 달리 1.9%(우유 3%)의 단백질까지 들어 있다.

게다가 막걸리에는 유기산이 0.8%나 들어있다. 바로 이 유기산이 막걸리의 새큼한 맛을 내는 성분이다. 특히 막걸리 속에 들어 있는 유기산은 갈증을 멎게 하는 것은 물론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과 기미, 주근깨(피로물질) 등을 제거해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

▲ '주막'이란 글씨가 씌여진 등이 고풍스럽다
ⓒ 이종찬

▲ 여기저기 찌그러진 주전자의 주둥이에서는 믹걸리가 철철 넘친다
ⓒ 이종찬

고풍스럽게 매달린 전등, 시골장터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막걸리에 들어있는 소량의 알콜 성분은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서 체내에 축적된 피로물질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그리고 막걸리는 상쾌한 신맛이 입맛을 돋구어주고 소화까지 도와줍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 중에 막걸리를 즐겨 마시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지난 달 22일(토) 오후 4시. 시인 윤재걸, 홍일선, 인터넷신문 '시골아이'를 운영하고 있는 김규환 선생과 함께 경기도 수원 화성 북문 주변에 있는 아담한 어느 주막집을 찾았다. 근데, 막걸리를 전문으로 팔고 있는 이 주막집 들머리 벽에는 '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란 간판이 또하나 붙어 있다.

홍일선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 막걸리집은 '경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수원지부 사람들과 이 지역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자주 찾는, 시민운동가들의 모임 장소 겸 주점이다. 그런 까닭에 이 주점을 자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서로 아는 사람들이란다. 즉, 이 주점에 모여 회의도 하고 산행계획 등도 세우며, 이야기 안주거리로 막걸리까지 덤으로 마신다는 것.

어둑한 주막 안으로 들어서자 사각형으로 예쁘게 감싼 등이 눈에 띈다. 문종이로 감싼 사각형의 등에는 '주막' 혹은 '산'이란 글씨가 고풍스럽게 새겨져 있다. 그 등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희부연 막걸리를 주고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여느 시골장터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 이 집 막걸리는 광릉 수목원에서 가져온다
ⓒ 이종찬

▲ 막걸리는 정겨운 사람들과 나눠먹는 재미가 그만이다
ⓒ 이종찬

아버지께서 논두렁에 앉아 중참으로 마시던 그 고향의 맛

"저희 주막에서는 저희들이 직접 지은 유기농 농산물로 모든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각종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저희 집 음식이 입맛에 잘 안 맞을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음식은 우리의 웰빙음식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된장도 그해 그해 딴 콩으로 직접 담근답니다."

이 집 주인에게 막걸리 1주전자(5천원)와 두부두루치기(1만원)를 시키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막걸리 한 주전자와 김치, 풋고추, 된장, 양파 썬 것, 콩나물무침 등이 나무탁자 위에 올려진다. 소박하다. 하긴, 막걸리 한 주전자 먹는데 여러 가지 밑반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약간 맵싸한 풋고추에 집에서 잘 담근 된장만 하나 있으면 그만인 것을.

여기저기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의 주둥이에서 허연 막걸리가 철철 넘치는 모습 또한 이 집 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엿보는 듯하다. 광릉 수목원에서 가져온다는 막걸리를 잔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자 아까부터 무더위에 지쳐 단내가 폴폴 올라오던 입속이 얼음을 씹는 듯 얼얼해지면서 속이 찌르르해지기 시작한다.

이 맛을 무슨 맛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 아버지께서 논두렁에 앉아 중참으로 마시던 그 막걸리의 맛, 고향의 맛이 이랬을까. 언뜻 눈으로 보기에는 걸쭉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던 막걸리가 하나도 텁텁하지 않고 술술 잘도 넘어간다. 약간 쌉쓰럼하면서도 은근한 감칠맛과 흙내처럼 살짝 감겨드는 누룩 내음 또한 향긋하기 그지없다.

▲ '산'이란 글씨가 새겨진 예쁜 등
ⓒ 이종찬

이 세상의 시름 같은 무더위와 갈증 싸악 씻어주는 막걸리 한 잔

이어 서해안 천일염으로 절여 담궜다는 김치 한 조각 입에 물자 아삭아삭 씹히는 게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뒷맛이 깊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거의 다 비워갈 때쯤 나온 두부두루치기의 맛도 그만이다. 잘 볶은 김장김치에 두부 한 점 말아 입에 넣으면 그대로 살살 녹아내린다. 막걸리 몇 잔과 두부두루치기 몇 점만 먹어도 배가 너무 부르다.

그렇게 그 주막에서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고 있으면 어느새 갈증과 무더위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도무지 찾을 길 없다. 게다가 여러 명이 앉아 서너 시간 동안 막걸리를 대여섯 주전자 비워내도 술값이 턱없이 싸서 주인에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 바로 그 때문에 막걸리를 서민의 술이라 그랬던가.

예로부터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 백독지원(百毒之源)이라 했다. 이는 술을 마시면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풀 수는 있지만 알콜도수가 높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면 위나 간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민속주 막걸리는 알콜도수도 낮고 우리 몸에 좋은 효모가 듬뿍 살아 있는 것은 물론 곡주이기 때문에 많이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술이자 세계적인 명주 막걸리. 행여 올 여름 수원 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수원 화성도 구경하고, 그 고즈녁한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잔 마셔보자.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한 잔 속에 이 세상의 시름 같은 무더위와 갈증이 싸악 사라지리라.

▲ 주점 안은 시골장터처럼 왁자지껄 살갑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수원-화성 북문-북문농협 옆길-2번째 골목 좌회전-화성주막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서 내리면 화성으로 가는 버스가 줄줄이 있다.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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