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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지난 2월말 뇌졸중 증세로 안양에 있는 한방병원에 입원하신 후 한때 상태가 호전되어 당신 발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졌으나 과식에 의한 급체로 그만 병세가 악화되고 말았다.

한림대병원으로 옮겨 계속 가료를 했지만, 당뇨와 고혈압이 치료를 방해하여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모양이다. 결국 병원에서 나와 안양에 있는 작은아들 집에서 5월 5일 새벽 3시 78년의 삶을 마치셨다.

임종하시기 전날 밤 나는 작은처남의 집에서 잠시 장모님을 뵐 수 있었다. 3일과 4일 이틀 동안 충북 청원의 초정약수터에서 가진 한국소설가협회의 '세종대왕과 한글' 세미나 행사에 참석하고 안양으로 가서 잠시 누님 댁에 들렀다가 내 아이들과 함께 작은처남 집에 갈 수 있었다.

작은처남 집에는 피붙이 일가붙이 인연붙이들이 많이 모였는데, 병상의 장모님을 뵈니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처가 사람들이 장인어른과 작은처남, 두 손아래 동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신교 신자들이어서 서로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인 우리 가족은 장모님 곁에서 '임종기도'를 해드리고 조용한 곡으로 성가도 하나 불렀다.

장모님의 오른손에는 내 아내가 사용하던 묵주가 쥐어져 있었다. 평생 동안 같은 하느(나)님을 믿고 살면서도 묵주가 뭔지도 모르신 분께 성모 마리아님의 도움이 있으실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님께서 내 장모님께 도움 베푸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우리는 임종기도를 하면서 내 장모님에 대하여 '요셉피나'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지난달 또 하루 한림대병원으로 문병을 왔을 때 나는 여러 처가붙이들에게 선언을 하고 장모님께 대세 예식을 행한 적이 있었다. 이미 옛날에 개신교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아 다시 물로 씻는 예절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장모님께 요셉피나라는 영세명을 붙여 드리기 위하여 본인께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굳이 대세 예식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개신교 신자로 충실히 살아오다가 나와 결혼하면서 천주교 신자가 된 내 아내의 간절한 뜻이기도 했다. 요셉피나라는 영세명은 현재 우리 성당에 계시는 큰 수녀님의 영세명이기도 한데,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이신 요셉 성인의 이름을 여성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부터 요셉 성인은 내 장모님의 '수호성인'이 되신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죽은 이를 위한 '위령기도'가 필요치를 않으니 처가붙이들 모두 장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살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돌아가신 장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지내 드리고 하는 참으로 중요한 일은 천주교 신자인 우리 몫이라는 것을 다시 명심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장모님이 다니셨던 공주의 감리교회, 큰처남 내외가 다니는 대전의 장로교회, 작은처남의댁이 다니는 안양의 장로교회, 처형이 다니는 서울의 순복음교회와 가운데 처제가 다니는 서울의 장로교회, 막내 처제가 다니는 천안의 감리교회 등에서 많은 신도들이 와서 기도를 했다.

나는 그것을 진작부터 훤히 예상을 한 나머지 내가 다니는 태안 천주교회 신자들에게 내 장모님의 별세를 알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태안에서 공주까지의 길이 꽤 멀고 그들에게 부조 부담을 안겨 주는 일이 저어되기도 했지만, 많은 신자들이 와서 연도를 하게 되면 (천주교의 연도는 좀 긴 편이고) 자칫 개신교 신자들과의 이상한 '경쟁적인 풍경'이 빚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게 괜한 우려를 안겨 주었다.

그런 일종의 소심증 탓에 나는 끝내 성당 식구들을 부르지 않고 말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미련한 짓이었다. 내 장모님의 별세 소식을 뒤늦게 안 신자들로부터 섭섭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맏사위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나를 보고 오는 문상객이 너무 적으니 처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특히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내가 신자들에게 알렸는데도 그처럼 신자들이 아무도 오지 않은 줄 알고 몹시 섭섭한 마음을 가졌으니…. 나는 후에 내 실책을 후회하며 아내에게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장모님의 별세 소식을 듣지 못하여 태안 성당 식구들은 오지 못했지만, 그리고 절대 다수가 개신교 신자인 처가 사람들과 수많은 개신교 신자 문상객들 속에서 다소 외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틈틈이 열심히 연도를 바쳤다. 다행히도 아내의 막내외숙모 부부가 충실한 천주교 신자여서 함께 연도를 할 때는 크게 위안을 얻는 기분이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로서의 기도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부부는 개신교의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에도 열심히 참례했다. 매번 맨 앞자리에 서서 예배의 시작과 끝 무렵에는 성호를 긋곤 했다. 우리가 개신교 예배에 참석해서 성호를 그어 천주교 신자 표시를 내는 것은, 천주교 신자도 개신교 집회에 참례할 수 있다는 (더불어 개신교 신자들도 천주교의 미사와 여러 가지 예절들에 참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게 하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에 종파를 초월해서 서로 기꺼이 참여하는 것은 우선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일 터였다. 우리가 개신교 예배에서 성호를 긋는 것은 천주교 신자로서 목사님과 개신교 형제 자매들의 기도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뜻의 표현이기도 하니, 우리 부부의 성호를 보시는 목사님이나 개신교 형제 자매들의 마음이 언짢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우리는 했다.

개신교는 교파가 많아서 모든 교회를 획일적으로 규정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개신교에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없다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기도는 대체로 세상 떠난 이에 대한 추모와 그를 천국에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유족들의 굳은 믿음과 세속의 평안을 구하는 말이 반복적으로 곁들여지는 것이었다.

망자의 영혼을 하느님께서 받아주시기를 간청하는 말씀이나 애절한 기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망자의 영혼이 이미 천국에 갔음을 믿는 확신만이 가득했다. '추모'와 '감사'는 엄밀히 말해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개신교에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하나님을 믿은 성도들은 모두 천국에 가기 때문에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필요 없다"는 그들의 말을 들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 오로지 믿음만으로 그렇게도 쉽게 천국에 갈 수가 있다는 말에 나는 차라리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천국에 가기가 그렇게 쉽다면, 믿음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 필요가 뭐 있으며, 순교까지 할 필요가 뭐 있을까 싶고….

개신교 예배에 참례하고 또 아내와 함께 장모님의 영혼을 위해 연도를 바치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곤 했다.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천주교 신자로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느님을 믿고 나름대로 많은 선행을 쌓으며 산다고 하더라도, 내가 죽자마자 곧바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결코 확신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곧바로 지옥으로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구원'을 목표로 지금까지 열심히 하느님을 믿고 살았고 살고 있으니, 그 믿음의 보람으로 지옥행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솔직히 말해 '직천당'을 할 자신은 없고, 지옥에는 가지 않으려고 스스로 애를 쓰고 있으니, 지금 당장 죽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이런 의문 앞에서 나는 다시 '연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옥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희망과 위안의 대상이기도 하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천국이 내 신앙의 목표이지만, 지금 당장엔 연옥이 목표다.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기 위한 단련과 정화의 과정인 연옥에만이라도 가게 된다면 참으로 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은 그 연옥만이라도 갈 수 있기 위해서 나는 나름껏 열심히 하느님을 믿으며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옥을 생각하되,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마태오 복음 16장 27절의 말씀을 늘 기억한다.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오 12, 32)라는 말씀 안에 들어 있는 '내세에서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암시를 되새기며 연옥에 대한 희망을 확인한다.

또한 "분명히 말해 둔다.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오 5, 26)라는 말씀에서의 '거기(바로 앞 구절에 나와 있는 감옥)'는 바로 언젠가는 풀려나올 수 있는 연옥을 암시하는 것임을 되새기며, '거기'에서 풀려나올 수 있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즉 이 세상에서 갚지 못하고 풀지 못하는 것이 많지 않도록) 내 나름으로는 무던히 애를 쓴다.

나는 17년 전에 작고하신 선친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며 산다. 일년에 여러 번씩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거의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한다. 선친뿐만 아니라, 이승의 많은 인연지기들, 나의 모든 조상님들을 위해서도 종종 미사를 봉헌하고 매일 기도하며 산다. 내 조상님들은 거의 하느님을 모르고, 그리스도교와는 아무 관계없이 사셨던 분들이다. 그런 분들도 오늘날 하느님을 믿고 사는 천주교 신자 자손 덕에 '통공(通功)'의 은덕을 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생각하면 참 기분이 좋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교와 아무 관계없이 사셨던 분들을 위해서도 내가 기도할 수 있고,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즐거운 일이다.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할 적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 분명한 기록인 구약성서 마카베오 하서 12장 45절의 "그가 죽은 자를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말씀을 소중하게 떠올리곤 한다.

나는 내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하느님 공부'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내 자식들이 평생을 살면서 하느님을 제대로 잘 믿고, 그 믿음만큼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가능한 많은 선행들을 쌓으며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죽은 부모를 위해서도, 내가 내 아버지께 하는 것만큼은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며 살기를 바란다. 내 자식들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이 세상을 참으로 성공적으로 산 셈이 될 것이다.

정말이지 내 자식들이 죽은 아비를 위해 열심히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바쳐 준다면, 연옥의 존재와 관련하여 바오로 사도가 설파하신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를 가려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고린토 전서 1, 13∼14)라는 말씀 그대로 나는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 곧 연옥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부정하는 '연옥교리'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교리다. 그 연옥교리의 여부는 신자들의 신앙 태도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을 것으로 생각된다. 개신교에는 연옥교리가 없기에 '믿음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난폭한 구호도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 밖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는 관점으로 이어져서 어느 목사님으로 하여금 "성철 스님이 아무리 불교 안에서는 추앙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는 지금 지옥의 맨 밑바닥에 있을 것"이라는 극언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천주교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믿음은 연옥교리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은 도올 김용옥의 강좌 방송에 출연하여 김용옥과 대담을 하면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씀을 분명히 했다.

그 방송이 나간 후 그 방송사에는 개신교 신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전국의 수많은 교회들에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고, 종교 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에서도 원색적인 비난과 비방이 홍수 사태를 빚었다.

당뇨 관리를 위해 매일 등산을 할 때마다 사찰의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를 올린다는 내용의 내 글을 읽은 어느 목회자님은 "천주교 신자인 당신이 그런 식으로 신앙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필요도 없었다"는 말로 나를 비난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관점의 근거로 그 분은 다음의 성경 말씀들을 제시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복음 14장 6절, 공동번역)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공동번역)

이 성경 말씀들을 그야말로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관점이 성립될 수 있다. 그리고 문자적으로만 해석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구세주가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 강생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구세주인 것이 아니다. 예수 강생 이전의 사람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는 구세주이고, 이미 죽은 이들에게도 구원자가 되신다.

그러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이미 죽은 이들, 하느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지상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의해 통공의 은덕을 입어 연옥의 영혼들이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위에 소개한 성경 말씀과 그대로 온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의 구세주, 불완전한 반쪽 구세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 밖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는 태도를 버리고, 타종교를 인정할 줄 아는 포용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나의 이런 말을 들은 개신교의 어느 목회자 한 분은 위에 소개한 성경 말씀들에 온전히 부합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로 만들어야 하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런 사명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보다도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설령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강생 이전 사람들의 구원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장모님의 장례를 지내는 동안, 그리고 삼우(三虞)날도 천주교 신자인 우리 부부와 개신교 신자인 대부분의 처가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장례 때는 장모님의 영정 앞에 음식 놓는 것을 포기하신 장인께서 삼우제만큼은 유교식으로(우리 고유의 풍습대로) 격식을 차리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자식들이 그것을 외면하니 노인이 스스로 제수를 장만하셨다. 그런 일을 하실 때 노인의 심정이 얼마나 섭섭하고 쓰리셨을까?

상주인 큰처남 역시 묘에 절을 하지 않았다. 제상에 무릎 꿇고 앉아 술잔을 올리기만 하고 절은 하지 않았다. 절하지 않으면서 술은 왜 올릴까? 아버지께 죄송하지도 않을까? 아버지의 심정을 자식들이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그것도 따지자면 일종의 불효인데, 그런 불효를 하느님께서 과연 용납해 주실까? 그런 마음으로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들, 그 기도가 과연 온전한 것일까? 괜한 의문들이 없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모님은 죽어서 자식들의 절도 받지 못하는 나쁜 귀신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 장모님의 육신을 모신 묘는 절을 해서는 안 되는 '우상'이 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그들과는 달리 우리 부부는 제대로 제상에 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했다. 그리고 '가톨릭상제례' 규식에 따라 기도를 할 때는 죽어서 자식들의 절도 받지 못하는 장모님이 가엾고, 그 꼴을 말없이 지켜보아야 하는 장인 어른의 괴로운 심정이 안쓰럽기도 해서 괜히 목울대가 아리는 것 같았다.

별도의 '위령기도'도 없고 장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필요도 없는 큰처남을 비롯한 처가 사람들은 개신교 신앙에 따라 앞으로 제사도 지내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기일에 모여 '추모예배'는 하겠지만, 그 추모예배는 말 그대로 추모하는 것이지 어머니의 영혼을 위한, 어머니의 영혼에 도움이 되는 기도는 물론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부부가 장모님의 영혼을 위한 미사와 기도를 지속적으로 드리면서 49제와 기일 제사도 우리가 제수를 장만해 가서 지내 드리기로 했다. 장인 어른께 약속을 드렸다. 장인 어른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한은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굳게 생각한다.

장모님께서는 생전에 나를 '물사위'라고 불렀다. 내가 공주에 갈 적마다, 그리고 볼일이 있어 대전에 갈 적마다 꼭꼭 '해미성지'의 물을 길어다가 부어 드렸기 때문이다. 1999년 공주영상정보대학에 출강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물을 길어다 드렸었다.

서산시에서 일년에 네 번씩 수질검사를 하는 해미성지의 물을 나는 '사수(四水)'라고 부른다. 네 가지 성격의 물이라는 뜻이다. 생수(生手), 성수(聖水), 약수(藥水), 육수(肉水). 이 네 가지 성격은 서로 결부된다. 살아 있는 물이니 생수요, 성지에서 나오는 물이니 성수인 것은 불문가지인데, 수질 검사 결과 심산 유곡도 아닌 곳에서 나오는 물이 약약수(弱藥水)라는 것은 웬 까닭인가. 그리고 육수는 또 뭔가.

옛날 대원군 시절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갖가지 형태로 순교를 당한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생매장을 당했으니(세계의 수많은 가톨릭 성지 중에서도 생매장 순교지로는 해미성지가 유일함), 그분들의 몸에서 육수가 흘러 약수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이런 농담 반 진담 반인 설명을 들으며 장모님은 경건한 표정이면서도 즐겁게 웃으셨다. 물사위가 길어다 드리는 해미성지 물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고마운 마음으로 잡수셨다.

엊그제 주일 저녁미사에도 장모님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생전에 정성으로 좋은 물을 길어다 드린 것처럼, 모시고 살지 않는 아들을 대신하여 제법 자주 용돈을 드렸던 것처럼 장모님의 영혼을 위해 정성껏 매일 기도하고 자주 연미사를 봉헌하려고 한다. 그것은 천주교 신자인 나의 분명한 몫이기에….

74세에 홀로 되시어 올해 96세 되신 노친네를 혼자 수발하며 사셔야 하는 장인어른의 딱하신 처지를 깊이 헤아려서 자주 전화를 드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찾아뵐 것을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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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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