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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까지 고양이 이야기를 여러 번 했는데, 오늘은 개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우리 주변에는 고양이보다 개들이 훨씬 많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개들의 양태가 매우 다양해서 실은 개들에 대해 평소에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때마다 고양이들의 식사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개를 경계하고 쫓거나 돌연 나타난 큰 개에게 고양이들이 쫓기는 순간 발을 구르며 마구 호통을 쳐서 개를 쫓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 나는 개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동정심을 갖고 있다. 내 주변의 개들에 대해서도 고양이들에 못지 않게 내 나름대로 신경을 쓰며 산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연립주택의 뒷동 한 옆에는 창고가 하나 있고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다. 그리고 그 창고 옆에는 현재 네 마리의 개가 있다. 뒷동의 두 집에서 기르고 먹이는 개들이다. 한 마리는 다 큰 도사견류 잡종 암컷인데, 사슬에 목이 매인 채 창고 안을 들락거리며 산다. 비록 목이 매여 있긴 하지만 그 정도라도 행동 반경을 확보하고 사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옆에 있는 개들에 비하면….

아침에 방범등을 끄러 창고 쪽으로 접근할 때마다 그 개는 긴장한 모습으로 나를 주시한다.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아니다. 방범등 있는 곳을 지나 저에게로 오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다. 가끔 그 녀석에게 내가 먹을 것을 갖다주기 때문이다.

아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밥과 생선을 고양이들에게 주고도 남을 때는, 그리고 비닐 봉지 안에 육류도 섞여 있을 때는 그것은 개 몫이 된다. 그 먹을 것을 갖다 줄 때마다 개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보다 내 노친께서 더 그 개에게 신경을 쓰시는데, 그 개는 멀찍이 내 어머니 모습이 비치기만 해도 컹컹 짖으며 가로 뛰고 세로 뛰고 한다.

어머니는 개들의 배고픈 사정과 목마른 사정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혀를 차시는 때가 많다. 개를 그런 식으로 기르는 것은 동물 학대를 지나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씀도 하시곤 한다.

목줄에 목이 매인 채 평소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 개에게로 가서 먹을 것을 주다보면 바로 옆에 있는 개들 때문에 심적 부담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옆에는 두 개의 개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그 안에는 하얀 털을 가진 두 마리의 어른 개가 있다. 나는 그 개집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개집이 아니라 닭장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개를 가두고 사육하는 그 좁은 공간 안에서 개들은 나를 볼 때마다 발광을 한다. 저희들에게도 먹을 것을 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개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밥그릇이 개집 안에 있어서 문을 열고 그릇을 꺼내지 않고는 먹을 것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족보가 있지 싶은 그 두 마리 개들의 주인이 자기네가 때맞춰 주는 고정된 먹이 외로 남들이 다른 먹이를 주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은 돼지 족발 부스러기가 많이 남아서 그것을 갖다가 그 개들에게도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었더니 세상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개들과는 달리 주인 마나님이 인상을 찌푸렸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먹을 것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내 심정을 그 개들이 어찌 알까. 그 개들로서는 저희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다른 개들에게만 주는 내 처사가 심히 원망스럽고 야속할 것이었다.

좁은 울안에서 발광하는 개들을 외면하고 도사견류의 잡종 개에게만 먹을 것을 주다보면 저만치 뚝 떨어진 곳에 새로 만들어진 개집 앞에서 역시 사슬에 목이 매인 어린 개 한 마리가 이쪽을 보고 마구 아우성을 친다. 그 작은 녀석의 몸부림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도 나누어주려고 두 개의 개장 앞을 지나노라면 그 두 마리의 하얀 개는 더욱 미친 듯이 요동을 한다.

정말 한숨이 나온다. 그 개들의 주인은 한술을 떠 뜨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자기들 딴에는 족보 있는 개들을 아낀답시고 개들을 그렇게 노상 가두어놓고, 남들이 다른 음식을 주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일 테지만, 그거야말로 지독한 동물 학대가 아닐 수 없다. 내 어머니 말씀대로 하늘에 죄를 짓는 짓일 터였다.

얼마 전부터 나는 회식을 할 때마다 개밥도 챙기는 신세가 되었다. 전에는 남은 밥과 함께 생선 따위 고양이들에게 줄 음식만 챙겼는데, 얼마 전부터는 개에게 줄 음식도 챙기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상조회 모임을 하고 남은 돼지 갈비들을 챙겨 비닐 봉지에 담으니 한 친구가 내게 개도 기르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오후에 등산을 할 때마다 만나는 개가 있다. 백화산 등산로 초입머리, 동네의 맨 마지막 집 마당가에는 개집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개집 앞에는 노상 목줄에 매여 사는 진도견류의 흰 암캐 한 마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나는 그 집의 마당을 떠받치고 있는 돌담의 아랫길을 지날 때마다 슬며시 마당 위를 쳐다보곤 한다.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있을 때는 자신 있게 개집 쪽을 볼 수 있다. 그 개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자주 많이 듣는 중에서도 내 발짝 소리를 식별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딴 짓을 하고 있다가도 내가 지날 때는 내 쪽으로 향하고 신경을 집중한다.

내가 끝내 외면을 하고 지나면 저도 그냥 포기를 하고 말지만, 내가 외양간 앞에서 발을 멈추고 외양간 안의 소를 잠시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으레 컹컹 짓는다. 저에게도 신경을 써달라는 뜻일 터이다.

또 내가 돌담 아랫길 끄트머리쯤에서 마당의 가장자리로 발을 올려놓고 몸을 돌리는 순간에는 벌써 뭔가를 알아채고 가로 뛰고 세로 뛰며 좋아 죽을 몸짓을 한다.

나는 그 녀석에게 여러 번 돼지 갈비도 주고 돼지 삼겹살도 주고 족발 부스러기도 주었다. 케이크 조각도 갖다 준 적이 있다. 그런 것이 없을 때는 건빵이나 과자 따위를 호주머니에 넣고 가서 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녀석도 나를 볼 때마다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고,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날 때는 실망도 큰 것 같다. 그 녀석의 그런 기대와 실망이 내게 묘한 부담감을 안겨 주어서 산을 오르기 전에 슈퍼마켓을 들르는 때도 많다.

그러면 건강관리를 위해 등산을 하는 양반이 군것질 거리를 챙겨 가느냐는 소리를 듣는 때도 있다. 그 말이 섭섭해서 한번은 이유를 설명했더니, 남의 집 개에까지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은 동물 사랑이 지나친 것이라나….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칠 때의 미안한 감정, 개에게 갖는 미안한 마음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우스운 것 같다. 동물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니, 내가 세상을 제대로 이기지 못하며 사는 이유 중의 상당 부분이 거기에도 있을 것 같다.

나의 그런 마음은 그러나 그 개에 대한 동정심으로부터 연유하는 측면이 크다. 그 개가 노상 목줄에 매여 있지 않고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사는 처지라면 내가 굳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그 개에게 돼지 삼겹살과 전 부스러기를 줄 때 그것을 본 주인 할아버지가 내게 고마워하시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을 워낙 좋아허느먼."

내가 그 길을 오갈 때마다 으레 외양간 안을 들여다보며 소의 얼굴을 만져주는 것이며, 새끼 밴 소에게 옥수수를 갖다 준 것이며, 소에게 달라붙는 쇠파리떼를 퇴치하기 위하여 모기약을 사다가 뿌려준 일 등을 노인이 잘 기억하기에 하시는 말씀일 터였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가 동물을 좋아허구 사랑헤서 이러는 게 아니구요. 이 개가 불쌍헤서 그류."
"불쌍허다니?"
"노상 이렇게 목줄에 매인 채루 사니께유."
"그거야 뭐, 개 팔자가 그런 걸 워떡헌다나."
"그렇지 않은 개들두 많거든유."
"그거야 그렇겄지먼, 개를 놓아멕이다가 뭔 일을 당허는 것보다야 이렇게 매놓구 멕이는 게 심간 편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심간 편키 위해서 개를 매놓고 먹이는 것에는 여러 가지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뜻도 있을 터이니….

하지만 나로서는 그 개에 대한 동정심이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개들도 주인에 따라서 팔자와 처지가 천차만별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지만, 거의 매일 주인과 함께 산을 오르는 행복한 개들도 있다. 때로는 주인의 품에 안겨서 산에 오는 개들도 있다.

사람 팔자처럼 개들의 팔자도 그렇게 천차만별하다는 사실은, 좁은 개장 안에 갇혀 살거나 목줄에 매여 사는 개들에 대한 동정심을 나에게 하나의 의무감처럼 안겨 준다. 그것은 내게 선명하고도 무겁다. 아침에 연립주택 뒷동 옆의 방범등을 끌 때마다 개들 쪽을 살펴보게 하고, 오후에 등산을 할 때마다 동네 끄트머리 집 마당의 개집 앞을 그냥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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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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