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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에 <한겨레 21>의 '논단'에서 읽은 어느 여성 작가의 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러 번의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었다. 친구가 놀러와서 영화 구경을 하느라고, 개 목욕을 시키느라고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었다.

기가 막히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그것도 글이라고 썼는지 너무도 한심했다. 그리고 그 따위 글을 아무 여과 없이 '논단'이라는 자리에 실은 <한겨레 21>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한겨레 21>의 구독을 중지하려고 했다가 겨우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내가 그 어처구니없는 글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두 가지의 '무책임'이었다. 하나는 주권을 포기한 국민으로서의 무책임, 또 하나는 작가로서의 글에 대한 무책임. 다음으로 크게 느낀 것은 나이 어린 사람도 아닌 어른이요 지성인이라는 사람의 '철없음'이었다.

요즈음도 이 무책임이라는 단어만큼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무책임이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만연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렵고도 쉽다. 우리는 오늘 유형무형의 온갖 크고 작은 무책임의 쳇바퀴 속에서 살고 있다.

친구 중에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 배달 직원을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간신히 배달 소년을 구해도 쉽게 그만 두거나, 배달을 빼먹는 일이 많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약속을 어기고 쉽게 그만두면서도 배달 사고에 대해서도 별로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성 세대들의 무책임이 만연되어 있는 우리 사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책임감을 잘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거의 분명하다. 기성 세대들의 무책임 탓에 젊은 세대들의 무책임은 더욱 깊고 넓게 만연되어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무책임은 선거 때마다 노정 되는 주권 포기다. 주권을 포기하면서도 그들은 아무런 갈등을 겪지 않는다.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누군 지도 모르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을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기고 자랑까지 한다.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주권 포기의 이유는 기껏해야 '정치 불신' 정도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계속 그런 식으로 불신을 해야 하는지, 그 불신의 타개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뇌는 전혀 없다.

이번의 6·13 지방선거 투표율이 겨우 48%에 이르고 만 사실에 대해서도, 다수가 주권을 포기한 젊은 세대들은 별로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열 명중에서 다섯 명도 채 투표를 하지 않은 이 허황한 무책임의 미로에서 그들은 아직 자성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 축구 열기 때문에 이번 지방 선거의 투표율이 더욱 저조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그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일이 바빠서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붉은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에서 아무리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친다 해도 그것은 기형적인 애국심일 뿐이다. 그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난 자리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치운다 해도 그것으로 주권 포기의 무책임이 상쇄되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세대들의 무책임한 주권 포기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계속 이런 식이어서는 정치 불신은 더욱 심화되고, 민의 왜곡 현상은 우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할 것이다. 이제는 특단의 방안을 강구할 때다. 저 호주처럼 주권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고 합당한 사유가 아닐 때는 벌금을 물리는 방안도 우리 모두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연3회 정도 선거에 불참한 사람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내 나라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국민의 주권 행사는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독재 국가가 아닌 이상, 강제로라도 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책임감을 제고시키는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안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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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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