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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군대 안에서 불리는 노래 중에 '독사가'라는 것이 있다. '나는야 언제나 독사같은 사나이, 막걸리 생각날 때 흙탕물을 마시고, 사랑이 그리울 때 일만 이만 헤아린다. 사나이 한목숨 창공에 벗을 삼고, 빡세게 살다가 깡다구로 죽으리라... ' 이렇게 부르는 노래다. ('일만이만 헤아린다'는 것은, 낙하산병이 공중에서 낙하산을 펼칠 시점을 잡기 위해 '일만피트 이만피트'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군가라기보다는 '군대민요'라고 부를 만한데, 보통 군가들이 전의를 고양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제작되어 보급되는 것과는 달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만들어지고 살이 붙은 노래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뚜렷한 작사 작곡가가 전해지지 않고, 또 지역마다 부대마다 조금씩 다른 가사와 곡조로 불려진다. 그리고 제목부터 '독사'니 '깡다구'니 하는 식으로 듣는 이를 움찔하게 하는 둔탁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곡조는 아마도 온갖 동요와 만화주제가, 유행가들을 꽁치머리에 고등어몸통, 멸치꼬리식으로 짜깁기한 듯 언뜻 언뜻 귀에 익고, 기승전결도 요동친다.

이런 군대민요들이 군가처럼 불리다보니 군가가 너무 많아서 이등병들이 입대하자마자 가사를 못 외운다는 이유로 고생하는 폐해도 있고, 또 비속어와 거친 곡조가 정서를 해친다는 지적도 있고 해서 군대 내에서는 금지곡이 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이 독사가는 살아남았고, 군 당국에서도 없애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수용하기로 했던지, 조금 순화된 '통일안'을 녹음해 보급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군대간 청년들의 스스로도 대견한 거칠음과, 또 어느만큼의 외로움에 대한 유쾌한 위로를 이만큼이나 담고 있는 노래가 없기 때문이리라.

어쨌건 나의 입대 초년 기억도 온통 이 낯설고 독한 노래의 가락으로 젖어 있다. 그저 맞지도 않는 전투복을 걸치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삶이 한없이 무겁던 그때, 입대 한 달만에 맞이한 일주일간의 유격훈련은 나름대로는 내 체력과 인내력의 한계를 확인해본 순간이었다.

경사가 삼십 도는 넘어 보이는, 그래서 등산을 해도 쉬어갈 산길에서의 2킬로미터 산악구보로 시작해 공수, 암벽, 장애물 등등의 과목을 소화하느라 기거나 날아다녀야 했고, 새벽까지 계속되는 야간 수색, 매복훈련과 침투, 폭파 훈련까지 긴장을 풀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지켜지는 '삼보 이상 구보' 원칙에 따라 '걸음'은 내 활동량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통에 담아 허리에 달아놓은 물은 조교들의 허락이 떨어지는 한시간마다 아껴마셔도 금세 비어버리고, 마신 것보다도 훨씬 많은 물이 어느새 전투복으로 배어나왔다.

물론 거의 항상 머릿속은 진공상태였지만, 또 때로 그마저 견디기 어려워질 때면 죽은 척하기조차 포기해야하는 한계상황의 여린 짐승처럼 내 머리는 더 거칠고 독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바위도 주먹으로 깨고 뱀이라도 찢어죽일 것 같던 나의 환각이 쥐의 머릿 속에도 떠오른다면, 분명히 고양이를 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독사가를 부르면, 이 독한 노래를 부르면, 나는 이상하게도 독하게 치닫던 환각에 이슬이 맺히고 온몸에 서늘한 바람이 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해지는 고향 집 마루에서 들녘의 흙먼지 씻어낸 세수대야 물리고 받아든 막걸리, 그 목구멍 뿌듯한 쾌감이 몸서리쳐지게 그리웠다.

그쯤 되는 순간이 흔히 오후 다섯시 경, 해발 800미터 고원 위의 유격장에 햇빛이 엷어지고 바람에는 향수가 많이 실려오는 시간. 그 시간 무수한 발길에 되풀이 뒤집히다 보면 곱게 섞인 흙탕물들은 잘 저은 막걸리처럼 뭉게뭉게 피어났다.

그 어느날, 불침번 근무시간까지 남아있는 자투리시간에 달빛에 의지해 적어두었다가 유격훈련이 끝나고서야 집으로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엄마. 군가중에 막걸리가 생각나면 흙탕물을 마신다는 대목이 있는데, 전투화에 밟혀 황토색 흙탕물을 보면 정말 그대로 엎드려 마셔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유격훈련을 마치고 나왔던 첫 외박. 어머니는 감방 갔다 온 자식 두부 먹이듯이 허겁지겁 막걸리를 들이밀었다. 부대 문 나서자마자 콜라 두어 캔을 비우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내내 쵸콜렛과 청량음료를 물고 온 터라 속은 이미 달달하고 냉기까지 돌았다. 그래서 살얼음이 얼 지경으로 차가운 막걸리만으로도 모자라 얼음까지 덩어리로 띄워놓은 이 막걸리 대접이 무작정 반가울 수는 없었다.

평소에는 콜라 한 캔도 다 못 마셔 몇 시간씩 손에 들고 다니는 주제에 그 막걸리 대접을 한 모금에 털어 넣은 것은, 그나마 유격훈련을 받는다고 바위니 뱀이니 머릿속으로나마 다져진 어설픈 다져진 강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턱으로 흘러내린 막걸리 한 줄기까지 소매춤으로 멋지게 훑어내고는, 금새 붉어진 얼굴로 그 아까운 일박이일의 외박시간을 꿈속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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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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