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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를 마신 날은 하루 종일 입을 벌리고 다녀야 했다. 자칫 입을 다문 채로 트림을 하게 된다면 그 날카로운 떨림이 콧줄기를 타고 눈과 귀까지 시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라병을 쥔 채 눈물까지 한 방울 똑 떨구면서 덜덜 떨고 있는 나를, 어머니는 깔깔 웃으며 꼭 안아주곤 했다. 그리고 요담엔 콜라를 마시거든 꼭 입을 벌리고 있으라고 등을 토닥였다.

그 이름만으로도 도시 냄새를 풍기는 콜라는 그렇게 의외로 멀고 촌내 나는 내 기억 속에 끼워져 있다. 따져보기도 새삼스러운 것이, 내 나이보다 오랜 흑백필름에서도 소풍날 김밥 한 줄과 콜라 한 병을 두 손에 움켜쥔 코흘리개 꼬마들이 곧잘 나오는 걸 보면 콜라는 의외로 꽤 오래된 물건이다.

그런데도 콜라가 도시의 서늘한 불빛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순수한 인공성, 자연과의 명백한 단절성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콜라'란 내가 모르는 어떤 이국 과일의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든 청량음료란 오렌지, 포도, 딸기 같은 과일의 즙을 섞어서 만들거나, 최소한 그 향을 흉내라도 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콜라라는 과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콜라는 아무 것도 갈거나 흉내내지 않은 순수한 화학물질과 색소의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콜라는 자연을 흉내내지 않고 인간의 순수한 상상력과 꼼지락거림만으로 창조해낸 거의 유일한 청량음료일 것이다.

게다가 콜라는 경박하다. 병마개를 딸 때부터 억제하지 못한 제 뱃속의 아우성을 고스란히 토해내는데다, 김이 모두 빠져나가 검은 설탕물로 변하는 그 순간까지 수만 개의 기포들은 서로 몸을 부딪히며 솟구쳐 날아오른다. 그래서 입구멍과 콧구멍도 온전히 통제 못하는 꼬마의 트림소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콜라를 마시면 경박한 트림을 연발하기 마련이다.

콜라가 진득한 추억이나 곰삭은 사색에 발 붙이지 못하고, '경쾌함과 발랄함'만을 친구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콜라는 오래 삭으며 추억과 사연과 상처가 옹이백인 술의 대척점에 있는 음료이다.

이제는 마시고 나면 입을 벌리고 있어야만 하는 번거로움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콜라를 잘 마시지 못한다. 물론 덥고 피곤할 때 시원한 얼음콜라 한 잔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부담스런 탄산기포의 독기에 목구멍이 따끔거려 병아리처럼 한 모금씩 물고 홀짝이기가 고작이다(같은 이유로 나는 생맥주도 조금 부담스럽다).

그래서 항상 오백 원짜리 콜라 한 캔은 내 양을 넘는다. 자살을 하기 위해 콜라를 들이켰다는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가 아직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데는 사정이 있다.

아마 고등학생때 하교길에서 패거리 중에 콜라를 한 병씩 들고 걷는 길이었기 쉬웠겠다만, 한 친구가 과장 조금 섞어 우스개삼아 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 아는 애 중에 콜라나 이런 탄산음료수를 못마시는 애가 있거든. 여잔데 한 잔만 먹어도 병원에 입원해야 될 정도니까. 그런데 걔가 한번은 시험을 망쳐서 엄마한테 엄청 구박을 받고 자살을 할려고 콜라 두 병을 원샷을 한 거야. 근데 죽지는 않고, 병원에 입원해서 되게 오랫동안 치료받고 그랬어. 정말이야."

대략 이런 얘기였고,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걷던 친구들은 아마 "뻥치네"하며 픽픽거리기도 하고, 또 사실이든 아니든 그 황당한 내용에 키득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릿했다. 난데없이.

순간 극약을 사듯이 슈퍼마켓에 들어가 콜라 두 병, 혹은 서너 병을 사들고 골방으로 스며들어 아마도 눈물 한 줄기 주욱 흘리며 한 순간도 거저는 수그러들지 않는 삶의 본능을 꾸역꾸역 짓누르던, 그렇게 콜라를 들이키던 한심한 소녀의 비장함이 전해왔다. 남들이야 해갈삼아 들이키는, 심지어 내 어떤 친구는 장난삼아 2리터 대병도 단숨에 들이켜버리는데 청량음료 달랑 두 병을 붙들고 죽음을 마주했던 못난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야! 거짓말 마라. 죽을려면 한강에서 뛰어내리든가, 칼로 푹 찔러서 단숨에 끝내지 그렇게 어렵게 하겠냐? 너는 그럼 배 터져 죽을 때까지 밥 퍼먹을 수 있어?"
이런 똑떨어진 이의제기도 누군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콜라 먹고 죽는 것만큼 세상과 조용히, 그리고 경쾌하게 작별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그 죽음을 누군들 가벼이 웃으며 스쳐 지나갈 망정 왜 그랬냐고, 그럴 수밖에 없었냐고 무겁고도 상투적인 질문들을 해댈 수 있을 것인가?

애초에 엄마의 구박이 그렇게 애통한 것이 아니라 이래저래 문득 삶이 무겁고, 심지어 버리기조차 간단치 않은 복잡한 것임을 깨닫는 사춘기의 공포가 문제였을 것이니, 왜 가벼운 죽음이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죽음이라는 지구만한 중량을 한 번의 손가락 튕김만한 해프닝으로 날려버리는 콜라자살계획의 기지도 만만치가 않다.

어쨌건 나는 내 친구가 이미 빈 깡통을 구겨 던져버린 지 오래도록 반 쯤 남은 콜라캔을 홀짝거리다가 문득 천연덕스런 죽음의 질문을 대한다. 콜라 거품처럼 싸아 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은 어떨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내 마음 속에도 있는가?

감기건, 배탈이건 어이없는 자살 미수의 잔해물 속에서 서럽게 깨어나 울었을 그 소녀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그 어처구니 없는 기억마저 싸아 날려버리고 유쾌하게 콜라를 들이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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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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