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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교수(경제학)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영국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진단, 한국경제의 처방 등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교수(경제학)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영국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진단, 한국경제의 처방 등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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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경제팀은) 기술 개발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무조건 '하면된다'는식의 나쁜 관치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문제죠. 정말로 개발연대의 박정희식 정책을 하려고 한다고 하면, 이렇게 하면 안 되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의 입담은 여전했다. 지난 11월 25일(현지 시간) 영국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가 쏟아낸 말이다.

이 자리는 한국언론재단과 KDI국제정책대학원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언론인 연수프로그램 한 과정으로 이뤄졌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선, 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진단, 해법 등을 두고 장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와 규제완화 등에 대해선 "개념을 잘못잡고 있다", "다른 나라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우선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고, 장 교수는 "신자유의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라고 진단했다. 최근 파산 위기로 내몰린 미국의 최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해 "그런 회사가 망할 위험에 빠졌다는 것 자체가 기막힌 일"이라며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 올 수도"

장 교수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그의 말이다.

"금융과 실물경제 사이에 괴리가 너무 커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중국 같이 10%씩 성장하는 나라는 빼놓는다 하더라도, 그동안 세계 경제성장률이 보통 0~5% 정도였고, 제조업 분야의 이익률도 3~6% 수준이었거든요. 반면 금융쪽에선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잘 알기도 힘든 각종 금융상품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금융 자본은) 팽창을 거듭했죠. 단순히 한국 코스피지수만 보더라도 1000을 돌파한 지 2년도 안돼 2000이 됐는데..."

장 교수는 "그동안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여러가지 버블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이번엔 다르다'고 했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현재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될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점"이라며 "이같은 불안감은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지면서, 기업도산과 실업증가, 경기침체와 다시 금융부실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이어질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에서 일주일새 50만 명의 실업자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팀 인선을 발표하고, 경기부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이러다가 자칫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도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위기를 극복할수 있는 세가지 해법

그러면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는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경제시스템 세가지를 제안했다.

장 교수가 밝힌 세가지 해법은 ▲ 실물 부문와 금융 사이의 시차를 줄일 것 ▲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제도를 개선할 것 ▲ 금융부문의 공공성 확보와 국제 신용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덧붙인 설명을 좀더 들어보자.

"실물은 금융에 비해 늦게 돌아가는 측면이 있고, 금융은 단 몇 초, 몇 분 만에 움직입니다. 물론 이같은 시차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시차를 줄여 나가야죠. 이를 위해선 금융의 각종 파생상품 등을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사모펀드 등의 투명성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투명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장 교수는 또 "BIS 비율 자체가 개별적인 은행의 건전성만 따지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국민경제 전체를 봤을 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성이 강한 금융의 성격상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면서 "이와 함께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공공기구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경제팀,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

장 교수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와 규제완화 등에 대해, "개념을 잘못잡고 있다", "다른나라와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와 규제완화 등에 대해, "개념을 잘못잡고 있다", "다른나라와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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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자연스레, 한국경제의 위기 원인과 처방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경제팀이 추진해 온 감세와 규제완화, 재정지출 확대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특히 과거 개발연대 시기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해 온 장 교수의 입장과 현 정부가 일치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장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개발연대 시기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개발연대의 나쁜 것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현재 한국경제가 침체에 빠진 것은 전봇대(규제)가 많아서 아니라, 지난 1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체제로 가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술개발과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현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추진 중인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의 말이다.

"전 개인적으로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반대하는데… 하지만 그와 같은 입장을 떠나서 단기적인 경기부양 효과만 생각하면 논란의 여지도 없이, 저소득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맞죠. 이들 계층(저소득층)의 소비 성향이 높기 때문이죠.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도 경제 모델을 만들 때 노동자는 저축을 제로(0), 자본가는 저축을 100%한다고 가정하고 있을 정도고…."

이어 '강 장관이 부유층에 대한 감세혜택이 결국 서민층으로 내려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장 교수는 "개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적으로 그런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그렇게 해서 잘된 나라도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시설 확충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서도 "토건사업(SOC)에 집어 넣는다고 전부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면서 "문제는 경제학적으로 따져 봤을때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때 내세운 뉴딜 정책을 들면서, "당시에 테네시강 개발에 집중됐는데, 이곳은 빈곤에 시달려온 계층이 많은 낙후지역이었다"면서 "그만큼 효과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단지 일시적인 소비성 지출보다는 연구개발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성 지출에 정부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세론 따르자고 말하면서, 자본시장 규제는 왜 따로가나"

또 정부가 추진중인 국내 금융시장의 규제 완화 등 자본시장 자유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재차 나타냈다. 장 교수의 말이다.

"사실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서 좋은 일 해놓은 것이 별로 없어요. 옛날처럼 돈이 없어서 (외자를) 끌어와야 할 입장도 아니고…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서 주식시장 분위기를 바꿔 놓았죠. 단기 실적주의속에 비정규직만 엄청 늘고, 그 과정에서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만 커지고…."

장 교수는 "2001년 이후 최근까지도 외국자본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기업에 자금을 대는 것보다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형식으로 돈을 빼내갔다"면서 "외국인들이 국내에 공장을 세우는 등 직접투자를 제대로 한 것이 얼마나 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미국 GM의 예를 들면서 "미국 전세계 GM 계열사 중에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곳이 한국GM대우 딱 하나"라며 "이곳 영국 등 유럽에 '시보레' 마크 달고 다니는 차 모두가 GM대우자동차인데, 기술은 GM 것이 아닌 과거 대우자동차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시장의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왜 한국만 규제를 풀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의 말이다.

"자본시장을 개방해서 얻은 것이 없다고 하면, 다시 닫자고 말하는 것도 맞다고 봐요. 지금 전 세계가 그런 분위기가 가고 있어요. 아니 예전에 한미FTA(자유무역협정)할 때 정부에서 뭐라고 그랬어요. 'FTA가 대세니까 우리도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그렇게 '대세론'이야기 하면서, 왜 지금은 우리가 금융의 대세론을 따르지 않고, 독야청청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규제를 푼다고 해서 빠져 나가는 돈이 다시 들어오겠나"라며 "법 자체도 반대했지만, 타이밍도 최악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나이트클럽을 신장개업하는 것이 마찬가지"라며 비판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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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융위기,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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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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