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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도 없고 종업원도 없는 가게.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은 외롭다.
 손님도 없고 종업원도 없는 가게.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은 외롭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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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더 이상 '고깃집 사장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게 되었다. 우리집은 약 4개월 전, 5년 넘게 장사해온 삼겹살집을 팔아넘겼다. 한참 동안 끊긴 손님에다 100만원 월세를 감당해내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서울에 직장을 구한 형을 제외하고 대학생인 나를 포함해 가족 4명 중 3명이 구직자 신세가 된 것. 조금 안타까운 일인데, 우리집에는 현재 '가장(家長)'은 없고, '가장 힘든 사람'만 셋 있다.

'개업→미니 자영업자→폐업'... 5년의 폐업 사이클

 음식점은 많지만 정작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많지 않다.
 음식점은 많지만 정작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많지 않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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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년, 아버지는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자의 길로 전향하셨다. 이후 호프집을 개업했는데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은 후, 큰 빚을 안고 다른 곳에 새로 가게를 차렸다. 그게 바로 얼마 전 간판을 내린 삼겹살집이다.

한때는 우리 고깃집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개업 후 첫 1년이 그랬다. 마구잡이로 들이닥치는 손님을 감당 못해 종업원도 여럿 두었다. 고깃집 사장 아들인 나도 주말마다 거의 강제 징집되다시피 가게로 끌려가 일손을 거들어야 했지만, 장사가 잘 되어 흐뭇한 표정으로 일하는 부모님 표정을 보면 즐거웠다.

그런데, 2∼3년 지나니 손님이 몰라보게 줄었다. 종업원 수도 하나둘 줄더니, 급기야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서 가게 일을 모두 도맡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 종업원 없이 가게를 일구는 미니 자영업자가 된 것이다.

2005년. 내가 군에서 막 제대하자마자 예비군 모자를 눌러쓰고 가게를 처음 찾았을 때 텅텅 빈 가게 안의 테이블과 2년 전과 달리 많이 어두워진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2년 전(입대 전)하고 사정이 많이 다르지? 이젠 주말 토요일 하루 보고 장사하는 거란다. 정말 잘 왔다. 주말엔 네가 가게 일을 좀 도와줬으면 좋겠구나."

두 분은 어느새 돋보기와 병원을 가까이하는 5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무거운 불판을 옮겨야 하는 고깃집 일을 하기엔 힘겨운 나이다. 그렇다고 비싼 종업원을 들일 순 없었다. 그래서 결코 붐빌 수준이 아닌데도, 주말에 손님이 들이닥치면 허둥대기 일쑤였다. 여기저기서 종업원을 부르는 젊은 손님들에게 연신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부모님보다 먼저 손님을 맞으러 뛰어나가곤 했다.

결국, 강도 높은 노동과 비싼 월세를 견뎌내기 힘드셨던 부모님은 가게를 내놓으셨다. 그 후로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으신다. 무직 구직자인 셈이다. 나는 어느덧 대학 4학년이 되어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한 형을 제외하고 가족 4명 중 3명이 구직자 신세인 셈이다.

현재 우리 집의 고정수입은 사실상 0원이다. 자영업 가구에서 일명 '노는 가구'가 된 우리 집. 그러나 우리 가족은 저마다 가장 힘든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하루 13시간 일하는 어머니] 너무 슬픈 천하무적

 새벽...그리고 어머니의 손. 오랜 육체 노동은 어머니의 손을 나보다 더 두껍고 거칠게 만들었다.
 새벽...그리고 어머니의 손. 오랜 육체 노동은 어머니의 손을 나보다 더 두껍고 거칠게 만들었다.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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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가장은 누구일까? 물론 진정한 의미의 가장은 단연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이라는 단어를 '경제권을 쥐고있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머니가 가장에 제일 가깝다. 어머니는 지금 아르바이트로 일당을 받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도 몇 번 어머니의 작업소로 가서 일손을 도운 적이 있어 그 노동의 강도를 아는데, 어머니는 고깃집을 그만둔 지금이 오히려 더 육체적으로 고되다.

어머니는 매일 오전 6시면 눈을 뜬다. 8시에 떠나는 시외버스를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 경남의 한 농산물 선별작업지. 어머니가 그곳에 도착하면 오전 9시다. 어머니의 노동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시작된다.

어머니가 하는 일은 주로 무나 양배추·고구마·감자 등의 농산물을 선별해 다듬고, 이를 포장하는 업무다. 모두 수작업이다. 근무 시간이란 건 딱히 정해진 게 없는데, 전날 발주 들어와 다음 날 대형 마트에 납품할 물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쉴 틈이 없다. 어머니가 쉬는 시간은 점심·저녁을 드실 때를 모두 합쳐 50분이 채 안 된다.

한번은 점심식사를 하러 한 식당에 갔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어머니 나이 또래의 아주머니 세 분이 식사를 하러 왔었다. 금붙이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은 복스러운 분들이셨다.

그 분들과 어머니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작업복 차림에 거칠고 두꺼운 손을 모으고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처량해 보였다. 어머니의 시선도 잠시 그 곳으로 머물렀다.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쩌면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그들과 비교해 보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주름진 그 눈이 계속 생각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밤 10시 30분을 훌쩍 넘긴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도 어머니는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가족이 먹을 국거리 끓이기를 잊지 않으신다. 어머니가 베개에 머리를 기대는 시간은 언제나 밤 12시를 넘겨서다.

어머니의 하루 근무 13시간…. 그야말로 종일 노동 외에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내일도 어머니는 6시간을 채 주무시지 못하고, 로봇처럼 딱딱해진 몸을 일으킬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들 그러시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나로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벼룩장터 매진하는 아버지] 환갑 바라보는 나이에 뭘 하실까

 '무가지' 생활정보지가 매일 배달되는 버스 정류장 앞 가판대.
 '무가지' 생활정보지가 매일 배달되는 버스 정류장 앞 가판대.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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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일명 '벼룩장터'나 '엇갈린 길'과 같은 생활정보지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르바이트나 소일거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매일 같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 버스정거장에 비치된 <벼룩장터>를 갖고 와서는 돋보기 안경을 끼고 깨알 같은 글씨를 한 자도 놓치지 않으려 뚫어져라 보신다.

아버지 연세는 올해로 58세. 아무리 없는 게 없다는 <벼룩장터>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것도 남성이 일할 자리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매번 씁쓸하게 신문을 접기 일쑤다. 간혹 전화를 걸어보는 일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길게 통화를 못하고 "예, 예"라는 힘없는 대답만 하다가 끊으신다. <벼룩장터> 탐색이 끝나면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TV를 보신다. 1시간·2시간….

가끔은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마음편히 TV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당신의 그 속내를 가늠하면서도 서운하다. 늙은 어머니를 일터에 보내고 혼자만 따신 방안에 앉아계신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괜히 엄마 편이 돼서 늙은 아버지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난 못난 아들이다.

한 번은 아버지가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본 적이 있었다. 택시기사 자격시험이었다. 평소 운전에 자신있는 아버지였기에 별다른 준비는 하지 않으시는 듯 했다. 하긴 그 연세에 다시 펜을 잡기도 힘드셨을 것이다. 결국 시험에 낙방하셨다. 아버지는 그 날 집에서 외롭게 술잔을 드셨다.

"아들아,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는 것 같구나."

당신의 빈 술잔을 두 손 모아 다시 채워드렸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한없이 작고 왜소한 모습으로 계셨다. 58년 인생을 사시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을까. 그런 아버지에게 세상은 아직도 잔인하고 거친 곳이었다. 그 마음 얼마나 무겁고 힘드실까….

[스펙 '제로'인 나] 나름 힘든 취업준비생

 모 기업의 서류 불합격 통지다. '그렇게 죄송하면 좀 뽑아주지...'
 모 기업의 서류 불합격 통지다. '그렇게 죄송하면 좀 뽑아주지...'
ⓒ 구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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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에 다니는 신방과 4학년생이다. 역시 구직자 반열에 올랐다. 이른바 '스펙'에 목숨거는 취업 준비생이다.

모든 게 나의 업보지만, 토익은 '마의 800'을 넘기지 못해 끙끙대고 있고,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 한 번 제대로 못 갔다. 자격증은 그 흔한 MOS조차 없다. 그야말로 스펙 '0'. 누가 지방대 다니고 스펙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을 써줄까? 이런 생각 때문에 나도 나름 힘들다.

4학년이고 다행히 학점은 부끄럽지 않게 받아 놓은 상태라 마지막 학기는 최소 학점 3학점만 신청하면 되었다. 취업 준비한답시고, 학교에 너무 시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다. 불행히도 등록금은 전액을 고스란히 학교에 바쳤지만 말이다. 수업 하나가 300만원짜리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영어 공부한답시고 집을 나가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잡는다. 내년 2월 졸업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초조해져 공부가 될 리 만무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때아닌 방황 중이다.

2008년 하반기 공채로 여러 좋은 기업들이 올라와서 내가 과연 인력시장에서 어느 위치일까 궁금해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봤다. 그 때마다 매번 '귀하와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해 죄송'이거나 '지원자가 많아 귀하와 만남은 다음 기회'라는 멘트가 돌아왔다. 내가 확인한 내 위치는 아마도 '88만원' 그대로인 것 같았다.

우리 가족, 언제쯤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한국음식업중앙회가 11월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한 달 동안만 전국적으로 3087개의 음식점이 폐업했다고 한다. 또한 2008년 상반기까지 총 2만6천개 음식점이 문을 닫았고, 올 한해(10월말 기준) 통틀어 4만6788개의 음식점이 간판을 내렸다고 한다. 하루에도 100개 이상의 음식점이 짐을 싸는 것이다.

우리집도 이 통계치의 한 표본으로 숫자를 더하고 있을 것이다. 큰 욕심 없이 살아온 우리 가족인데, 불행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수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7만2천명이 감소했으며, 영세 자영업자들은 도시 임금노동자들에 비해 소득이 100만원 이상 적다고 한다. 장기적 경기 불황에 영세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편, 전체 자영업자 중 종업원을 두지 않는 '미니 자영업자'의 수는  늘고 있는 추세인데, 같은 비율로 종업원을 고용하는 업소의 수도 줄고 있다. 우리 집 가게가 개업에서 폐업까지 꼭 5년이 걸렸는데, 전국적으로도 5년 만에 자영업자의 수는 614만 명에서 594만 명으로 줄었다. 이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최저치다. 숫자의 세계가 아니다. 자영업의 몰락은 우리 가족에겐 현실 그 자체다.

 자영업자들의 실질 소득도 도시의 임근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실질 소득도 도시의 임근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 경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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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입대하기 전이 떠오른다. 우리 고깃집은 장사가 잘됐다. 부모님 이마엔 연방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곤 했지만, 얼굴엔 희망이 넘쳤다. 부모님은 옆에서 불판을 닦고 있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도 장사할 맛 난다"며 기분 좋게 웃기도 했다.

부모님은 가게를 파신 돈으로 당분간 장사하실 생각은 없으신 듯하다. 장사하려면 또 어디선가 빚을 내야 할 것이다. 그럼 또 그 빚을 갚으시기 위해 더한 노동을 하실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경기가 안 좋다. 사상 최악의 고용률이다"는 등의 말들이 많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니다. 내가 하는 고민은 이 나이가 되면 으레 하는 그런 하찮은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이 겪고 계실 고통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 집에서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만큼 대화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우리 가족은 언제쯤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이제, 가장 힘든 부모님의 움츠러든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말을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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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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