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일하는 근로자들이 고속절단기로 파이프를 자르고 있다.
나재필
일과 중노동은 다르다. 일은 인간의 기본권을 유지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고, '중'노동은 기본권을 무시한 일상이 사라진 삶이다. 노동에 '중(重)'이라는 명사 하나가 달랑 붙었을 뿐인데 삶의 질은 상상 이상으로 달라진다.
누구나 노동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그 재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 공식은 '죽도록 일해서, 일한 만큼 행복을 사라'는 구매행위와도 같다. 이는 근시안적인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비롯된다. 죽도록 일해보지 않은 (자칭) 싱크탱크들이 모여서 죽도록 일하라고 만든 정책들이 얼마나 조악하겠는가.
칠레, 호주 등이 주 4일제(40시간)를 추진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시간 유연화'(현재 주 52시간)를 꺼내 들었다가 공분을 사고 있다.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많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1791시간과 1490시간이다.
우리는 1970년 11월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을 기억한다. 김용균은 2018년 12월11일 새벽 서부발전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몸이 찢겨진 채 발견됐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이들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경기 평택에 있는 SPC 계열사 SPL 제빵 공장에서 숨진 20대 노동자 A씨는 사고 당일에 "치킨 500개를 까야 한다. 난 죽었다" 등의 메시지를 보내며 과도한 업무 강도를 토로한 바 있다. 2015년부터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후인 2019년 8월까지 전체 산재 노동자 271명 중 98%인 265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1863년 영국 메리 앤 워클리라는 노동자의 죽음을 떠올린다. 당시 20살 여성 메리는 귀족용 무도복을 만드느라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성수기를 맞아 연속 27시간째 일하다 사망했다. 세계 최초의 과로사로 기록된 죽음이다. 직장인들, 특히 MZ세대가 꼽은 최고의 복지는 '월화수목일일일'이다. 석유, 화학, 철강업계에서는 이미 4조2교대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이틀 일하고 이틀 쉰다는 개념이다.
노동시간은 찍어 누르는 식이 아니라 노사 자율에 따라 유연하게 변경하고 활용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부안은 해외 우수 사례를 본뜨고 학자들, 관료들이 계산기를 두드려 만든 누더기다. 우리나라는 노동을 부추기는 동시에 노동자를 경시하는 풍토에 젖어있다. 그러니 노동자들도 노동이란 단어만 나오면 피가 거꾸로 솟고 스스로 열등 콤플렉스에 젖는 것 아닌가.
노동자 업신여기는 순간, 사회 동력은 사그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