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에서 하루 종일 써야하는 안전모.
나재필
낙화(落花)되는 모든 꽃의 정령이 내가 하는 노동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가족(종족)을 위해 일(잎 광합성)을 해서 돈(열매)을 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원활하게 이뤄졌을 때 비로소 행복(꽃)을 피운다.
꽃보다 열매를 먼저 맺을 수 없고, 열매보다 잎이 앞서지 못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종족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몸의 생장은 영원하지 않다.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면 끝내 낙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증설 공사현장은 여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여러 위험환경에 노출돼 있다. 작업상 안전사고는 물론 소음, 분진, 가스, 미세먼지 등에도 취약하다. 나름 귀마개를 하고 보호안경, 방진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완벽하진 않다. 코로나 방역 규제가 완화됐지만 이곳에선 마스크 착용이 의무다.
더욱이 반도체현장은 내부 작업이 90% 이상을 차지해 '보이지 않는 재해요소'가 더 많은 상황이다. 눈이나 비가 와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도 실외작업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관작업 시 용접과 그라인딩 분진은 방진 마스크를 써도 콧속이 시커멓게 될 정도로 침투한다. 공장 가동구간 소음 또한 상당하다. 귀마개를 해도 소리의 진폭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어떤 근로자들은 안전 관리자와 작업지휘자가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주시하는데도 귀마개와 보호안경을 하지 않아 지적받는 사례도 흔하다.
근골격계질환, 족저근막염... 노동자의 몸
노동자들 대부분은 근골격계질환 고통을 호소한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근육, 신경, 건, 인대, 뼈와 주변조직 등 근골격계에 발생하는 통증 또는 손상을 말한다. 주로 목과 허리, 어깨, 팔, 다리 등에서 나타난다.
내가 하는 양중(자재를 작업위치까지 옮기는 것)은 들고 나르고 옮기는 일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근골격을 써야 한다. 물론 큰 자재들은 호이스트나 엘리베이터로 옮긴다. 1층에서 2층, 4층에서 3층, 4층에서 5층(옥상, 일반건물의 10층 높이) 등으로 이동이 많은데 이땐 계단 타는 일이 잦다. 당연히 무릎 관절이 좋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지만 돌아 걸어가는 게 번거로워 부득불 발품을 팔곤 한다.
비계팀 양중의 경우 발판과 파이프, 클램프 등을 나른다. 장당 무게가 제법 되고 4m, 3m 파이프는 어깨와 팔뚝의 힘이 요구된다. 이런 자재들을 한 번에 1000~2000개 정도를 까대기(근로자들이 줄지어 서서 나르는 일) 할 때는 온몸의 진이 빠진다.
파이프 연결 클램프도 자루의 무게가 20kg 전후여서 100여개 정도를 나르면 아귀힘이 쭉 빠진다. 또 클램프를 종류별로 분리하는 경우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씩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파이프나 발판 등은 4명이 한 조가 되어 대차(수레)를 말(馬)처럼 밀고 끈다.
이처럼 무게감이 있는 중량 자재들을 반복적으로 들고 내리는 작업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 손목, 팔꿈치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성한 곳이 없다. 마치 컨베이어벨트 앞의 기계 같다. 또한 하루 8시간 기준 평균 1만 5000보에서 2만 5000보, 연장·야근까지 하면 3만 보는 기본이다. 당연히 발바닥이 저리고 쑤신다. 그래서 상당수가 족저근막염을 앓는다.
온종일 머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440g의 안전모는 헤드랜턴과 보호안경 등을 장착하면 무시할 만한 무게가 아니다. 현장 밖을 나가지 않는 이상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벗으면 안 된다. 현장 내에서 쉴 때도 써야 한다.
만약 탈모(脫帽)할 경우엔 레드카드다. 이 무게감을 하루 내내 짊어지고 있으니 목 통증이 어깨를 타고 내려온다. 더 난감한 상황은 땀에 젖다 보니 머리가 가렵다는 것이다. 슬쩍슬쩍 땀을 닦고 벅벅 긁기도 하지만 퇴근까지 머리 위는 찜통이다.
일상이 된 음주... 노동가이자 자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