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5 20:30최종 업데이트 23.05.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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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현장에서 하루 종일 써야하는 안전모. ⓒ 나재필


낙화(落花)되는 모든 꽃의 정령이 내가 하는 노동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가족(종족)을 위해 일(잎 광합성)을 해서 돈(열매)을 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원활하게 이뤄졌을 때 비로소 행복(꽃)을 피운다.

꽃보다 열매를 먼저 맺을 수 없고, 열매보다 잎이 앞서지 못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종족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몸의 생장은 영원하지 않다.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면 끝내 낙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증설 공사현장은 여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여러 위험환경에 노출돼 있다. 작업상 안전사고는 물론 소음, 분진, 가스, 미세먼지 등에도 취약하다. 나름 귀마개를 하고 보호안경, 방진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완벽하진 않다. 코로나 방역 규제가 완화됐지만 이곳에선 마스크 착용이 의무다.

더욱이 반도체현장은 내부 작업이 90% 이상을 차지해 '보이지 않는 재해요소'가 더 많은 상황이다. 눈이나 비가 와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도 실외작업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관작업 시 용접과 그라인딩 분진은 방진 마스크를 써도 콧속이 시커멓게 될 정도로 침투한다. 공장 가동구간 소음 또한 상당하다. 귀마개를 해도 소리의 진폭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어떤 근로자들은 안전 관리자와 작업지휘자가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주시하는데도 귀마개와 보호안경을 하지 않아 지적받는 사례도 흔하다.

근골격계질환, 족저근막염... 노동자의 몸

노동자들 대부분은 근골격계질환 고통을 호소한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근육, 신경, 건, 인대, 뼈와 주변조직 등 근골격계에 발생하는 통증 또는 손상을 말한다. 주로 목과 허리, 어깨, 팔, 다리 등에서 나타난다.

내가 하는 양중(자재를 작업위치까지 옮기는 것)은 들고 나르고 옮기는 일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근골격을 써야 한다. 물론 큰 자재들은 호이스트나 엘리베이터로 옮긴다. 1층에서 2층, 4층에서 3층, 4층에서 5층(옥상, 일반건물의 10층 높이) 등으로 이동이 많은데 이땐 계단 타는 일이 잦다. 당연히 무릎 관절이 좋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지만 돌아 걸어가는 게 번거로워 부득불 발품을 팔곤 한다.

비계팀 양중의 경우 발판과 파이프, 클램프 등을 나른다. 장당 무게가 제법 되고 4m, 3m 파이프는 어깨와 팔뚝의 힘이 요구된다. 이런 자재들을 한 번에 1000~2000개 정도를 까대기(근로자들이 줄지어 서서 나르는 일) 할 때는 온몸의 진이 빠진다.

파이프 연결 클램프도 자루의 무게가 20kg 전후여서 100여개 정도를 나르면 아귀힘이 쭉 빠진다. 또 클램프를 종류별로 분리하는 경우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씩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파이프나 발판 등은 4명이 한 조가 되어 대차(수레)를 말(馬)처럼 밀고 끈다.

이처럼 무게감이 있는 중량 자재들을 반복적으로 들고 내리는 작업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 손목, 팔꿈치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성한 곳이 없다. 마치 컨베이어벨트 앞의 기계 같다. 또한 하루 8시간 기준 평균 1만 5000보에서 2만 5000보, 연장·야근까지 하면 3만 보는 기본이다. 당연히 발바닥이 저리고 쑤신다. 그래서 상당수가 족저근막염을 앓는다.

온종일 머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440g의 안전모는 헤드랜턴과 보호안경 등을 장착하면 무시할 만한 무게가 아니다. 현장 밖을 나가지 않는 이상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벗으면 안 된다. 현장 내에서 쉴 때도 써야 한다.

만약 탈모(脫帽)할 경우엔 레드카드다. 이 무게감을 하루 내내 짊어지고 있으니 목 통증이 어깨를 타고 내려온다. 더 난감한 상황은 땀에 젖다 보니 머리가 가렵다는 것이다. 슬쩍슬쩍 땀을 닦고 벅벅 긁기도 하지만 퇴근까지 머리 위는 찜통이다.

일상이 된 음주... 노동가이자 자장가
 

대기업 반도체 공사 증설현장 게이트 밖 모습. ⓒ 나재필

 
어느 날부터 뼈에서 바람 소리가 난다. 스쳐 지나가는 건들바람 같기도 하고 골짜기를 울리는 강골바람 같기도 하다. 그 소리는 육신을 툭툭 건드리며 압점을 누른다. 특히 미동의 상태에서 더 심하다.

의사의 소견이 아니더라도 골병처럼 느껴진다.(골병은 '뼈골骨'자를 쓰지 않고 한글과 한자의 조합 '골病'이라고 쓴다). 막일 초보자인데도 목과 어깨, 팔, 팔꿈치, 허리, 무릎, 발목, 발바닥에 이르기까지 아프다. 움직이는 종합병동이다.

이 때문에 토요일엔 병원을 찾는다. 특히 테니스 엘보우(외상과염)가 좋지 못하다.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할 정도로 팔꿈치 통증이 심하다. 하지만 팀원들에게 짐이 될까 봐 아직까진 내색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들이 나의 일을 n분의 1로 감당해야하니까.

노동현장은 계절 영향도 많이 받는다. 한마디로 계절을 탄다. 일반 공사 현장처럼 야외공사가 많지 않아서 한랭 질환, 온열질환은 극소수지만 일하는데는 곤욕을 치른다.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한랭에 시달린다. 사실상 겨울철 막일의 승부처 5할은 추위다. 이불 안 온도와 현관 밖 온도가 빙점의 숫자를 찍을 때 열에 한번은 망설인다.

'출근하기 싫다, 출근해야 하나.'

만약 이불 안 온기를 버리지 못하면 출근을 포기한다. 이런 갈등과 망설임은 늘 반복된다. 누군들 포근한 이불의 촉감을 쉬이 뿌리칠 수 있을까. 하지만 잠깐의 고뇌는 먹고사는 문제로 이어져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관까지 끌려간 듯한 느낌이 들지만 문밖을 나서는 순간 근육은 다시 노동현장을 향한다.

여름나기도 문제다. 굳이 폭염이 아니더라도 반도체현장 내부는 열기로 가득하다. 조금만 몸을 써도 땀이 줄줄 흐른다. 속옷은 물론 겉옷까지 축축해질 정도다. 정제염과 정수기가 설치돼 있어 수시로 목을 축여야 한다. 그런 수고가 없으면 거의 탈진 상태로까지 간다.

안전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T/L(테이블 리프트) 손 끼임 사고(협착)이나 비계상부 추락사고도 있고, 지게차에 깔리는 사례도 있다. 이런 경우 사망으로 이어질 만큼 아찔하다. 대부분 작업자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다. 안전 고리를 체결하지 않는다거나 주의 태만, 사방 주시를 게을리해서 일어난다.

양중의 경우엔 대차나 자키(유압식 잭을 이용해서 팔레트를 들어올리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팔레트 잭이다)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파이프 까대기 시 앞사람과 뒷사람을 확인하지 않으면 얼굴을 강타할 수 있다. 지난해 전국 일터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611건으로 이 중 64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개인적으로는 술이 문제다. 원체 술을 좋아하는 데다 노동 후 피로를 풀기 위해 마시다 보니 반주를 뛰어넘었다. 녹초가 되어 퇴근하면 몸에서 습관처럼 술이 당긴다. 한 병을 마시면 뭔가 부족하고 세 병을 마시면 살짝 걱정돼 딱 두 병이 마지노선이다. 일주일에 대략 10병의 소주를 마시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심각한 중독인데 현재까지 몸의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처럼 강술(깡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술 마신 다음 날에도 거뜬히 일어나고 숙취 또한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즐겁게 마시기 때문인 듯싶다. 일상이 돼버린 음주는 노독(勞毒)을 녹이는 노동가요, 자장가다.

노동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안전이다. 돈과 목숨을 바꾸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차피 돈을 벌려면 건강을 지켜야 한다. 나의 생사가 가족의 행복과 연결되니 내 노동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사고는 훅 일어난다. 무신론자인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 (죄송스럽긴 하지만) 하느님을 찾는다.

"하느님,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온전한 몸으로 돌아가게 해주소서. 돈도 좋고 일도 좋지만, 살고자 하오니 온전한 상태로 가족의 품에 안기게 해주시옵소서."  
  

야적장에 쌓여있는 비계 파이프 모습. 4m, 3m, 2m 등으로 분류해 비계 임대업체로 반출해야한다. ⓒ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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