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3 11:48최종 업데이트 23.05.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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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27년 전 필자와 아내 모습. ⓒ 나재필


나란히 가려면 걸음도 속도를 맞춰야 한다. 웨딩마치 행진할 때도, 밥상을 앞뒤로 잡고 문턱을 넘을 때도, 데이트할 때 맞잡은 두 손과 두 발도, 밭고랑에 비닐을 씌울 때도 함께 같은 보폭으로 움직여야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보면 사달이 난다. 부부는 한 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풍경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부부는 한 몸이 된 타인이다. '남'에서 점(·)하나 떼면 '님'이 되듯 둘은 호흡을 맞춰가며 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손짓하지 않아도 알아서 온다. 부부란 한 걸음 한 걸음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공인된 뚜벅이'다.

아래 글은 막노동을 하는 나에 대한 소회를 아내가 읊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다. 그녀의 편지글을 지면에 옮겨본다.


"결혼 27년 차, 우리는 쇼윈도 부부가 아닙니다"
 
남편과는 대학교 동기다. 동갑내기로 처음 만난 지는 36년째이고 결혼은 27년 차다. 살면서 고마운 일은 큰 싸움 없이 무난히 서로에게 맞춰왔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식성뿐 아니라 취향과 문화도 달랐지만, 위기가 오면 둘 중 하나는 내려놓았다. 가만히 곱씹어 보면 성격이 맞았던 것 같다. 티격태격하더라도 침묵이 길지 않았고, 금세 화해했다. 우린 남을 의식해서 행복을 가장하는 '쇼윈도 부부'가 아니다. 텔레파시가 통하는 일이 많았다.

예컨대 시장에서 먹고 싶은 반찬 재료를 사 오는 경우가 있는데, 집에 와보면 남편이 이미 같은 먹거리를 장 봐 온 적이 많았다. 가짓수도 같고, 재료도 똑같아서 서로 놀라기도 했다. 어떨 땐 지금 품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면 자기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닮아가고 있다는 건 닳아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그 세월이 낡아지고 해지면서 마음이 같아지는 것이다.
 
남편은 썩 괜찮은 사람이다. 영화 시나리오에 재능이 있었는데도 처가에서 반대하니까 기자가 됐고, 이후 본분에 충실했다. 재직 당시에 기자상(賞)을 제법 많이 받았음이 이를 증명한다. 자식에게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자신은 조금 헐벗어도 한없이 베풀고 아낌없이 주려고 한다.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간혹 울기까지 하니 '아들바보'다. 요즘도 타지에 있는 자식이 집에 온다고 하면 일주일 전부터 법석을 떤다. 나보다도 더 먹거리를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 넣고 아이처럼 들떠 한다.
 
"어디 누구 잔칫상 차려? 어차피 이틀 있다가 애들 가고 나면 우리가 다 해치워야 할 텐데 뭘 그리 많이 준비하는 거야. 저번에도 그랬고, 저저번에도 그랬잖아."
 
가끔 타박이라도 하면 그냥 웃어넘기는 남편이다. 물론 나도 그러는 남편이 속으론 좋다. 보고 싶긴 마찬가지이고, 함께 나눌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행복이니까. 남편은 자식들과 헤어질 때도 극성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배웅한 곳에서 애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냥 손을 흔들고 있다. 그래서 항상 이별이 길고 곤혹스럽다. 남들이 보면 무슨 유학이라도 떠나는 줄 알 정도로 짠하다.
 
남편이 막노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지만 고집이 센 편이라 결국은 할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길게 갈 줄은 몰랐다. 평소에 키가 5㎝나 줄었다면서 엄살을 부리던 사람이었는데, 힘쓰는 일을 우습게 아는 건 아닌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공인중개사인 내가 더 벌면 되는데 하는 아쉬움도 컸다.
 
남편은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난다. 그렇게 일찍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1시간 정도 빠르게 채비한다. 나도 처음엔 같이 일어나 밥상을 차려주고 배웅까지 했더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깨어나 보면 출근하고 없었다. 몰래 밥숟가락을 뜨고 살금살금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갑자기 눈을 떠봤더니 거실에서 뒤꿈치를 들고 조용조용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깰까 봐 조심스러워한 것이다. 그런 그가 가끔은 고맙기도 하고 가끔은 슬퍼지기도 한다.
 
"바보야, 내가 차려줄게. 난 괜찮아. 당신 힘든데 뭘 그리 배려하는 거야. 힘들 땐 어깨에 기대고, 소리도 질러봐. 힘드니까 쳐다봐달라고 외쳐. 힘드니까 멈추게 해달라고 말이야."
 
남편은 짧게는 13시간, 길게는 16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옷은 먼지로 뒤덮였고, 얼굴과 머리는 땀에 젖어 흙빛 그 자체다. 파김치다. 그 모습을 보면 가슴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진다. 말은 안 하지만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는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얼른 있는 거 없는 거 다 꺼내 밥상을 차려준다.

그럴 때면 밥상이 아닌 술상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잦아졌다. 건강 때문에 뜯어말려도 또 지고야 만다.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묻고 일상을 얘기해준다. 하지만 미안해할까 봐 그런지 힘들다는 말은 안 한다. 그냥 무용담처럼 들려주며 재밌다고만 한다. 눈빛은 지쳤는데 힘들지 않다고.

주름은 피곤을 말하는데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쓰러져 잔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도 저녁 8시가 조금 넘으면 쓰러져 잔다. 30년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가 그냥 잠자코 쓰러져 자는 것이다. 자는 그의 얼굴에서 난 절망보다는 희망을 읽으려 노력한다. 그래야 될 것 같으니까. 그래야 살 것 같으니까.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남편... 여기저기 파스 냄새만" 
   
남편은 아프다는 말을 안 한다. 그런데 여기저기 파스 냄새가 나고, 잠잘 때 보면 앓는 소리를 낸다. 이가 부서질 듯 이갈이도 습관처럼 한다. 무슨 한이라도 품은 걸까 내 이가 시렵다.

가끔 안마를 해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몸을 움찔거린다. 내 마음이 더 아픈 건 그걸 참아내면서도 티를 안 낸다는 사실이다. 얼굴에 화장품을 잔뜩 발라줄 땐 잔주름이 밭고랑 같다. 눈에 띄게 많아진 새치는 저 혼자서 피식피식 웃고 있고, 거칠어진 손마디는 나무토막을 만지는 듯 비실비실 토라져 있다.
 
무엇보다도 막일하면서 남편의 식성이 변한 게 제일 신기하다. 30년간 육식을 싫어하던 사람이 이제 고기를 뜯는다. 삼겹살을 맛나게 먹던 날, 그냥 그때뿐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몇 개월째 고기를 뜯고 있다. 저리도 잘 먹는데 그동안 어찌 초식동물로 살아왔을까. 그것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삼겹살을 먹는다. 힘에 부쳐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일이 끝날 즈음엔 조절을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남편은 원체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주는 대로 먹고,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도 해 먹는다. 된장·김치찌개는 나보다 더 잘 끓인다. 하지만 결혼생활 내내 도와주던 설거지는 멈췄다. 집에 오면 잠자기 바쁘니 그럴 만도 하다.
 
씀씀이도 달라졌다. 힘들게 벌어서인지 헛돈을 쓰지 않는다. 소주, 담배, 오토바이 기름값, 약값, 밥값만 쓴다. 그 돈도 만만치는 않지만 예전에 비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시댁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맛난 음식을 대접할 때면 아예 천사처럼 웃는다.
 
나는 남편이 되도록 빠른 시일 내 막일을 멈추길 바란다. 막노동을 폄훼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함께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조금은 부족해도 천천히 가고 싶어서다. 늦게 간다는 건 오래도록 해로하고픈 소망이다.

마지막까지 돌봐줘야 하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부부다. 부부는 마주 보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라고 한다. 이는 피보다도 짙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이 힘들 수록 사랑은 깊어져 간다.

 

경기 평택 삼성반도체 증설현장 출근길 모습.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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