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고단함을 푸는데 소주와 삼겹살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나재필
막노동을 하기 전 기자 시절에도 술값이 많이 나갔다. 선배가 사야 한다는 불문율이 암묵적으로 작동했고, 내가 사야 맘이 편한 이유도 있어 지갑 여는 일이 잦았다. 나는 재테크에 젬병인 탓에 크게 벌지 못했고, 작게라도 모으지 못했다. 그런데 쓰는 건 도사다. 신세 지는 걸 싫어하고, 자존심이 센 편이어서 얻어먹는 걸 싫어한다. 한번 공짜로 먹었으면 반드시 사고야 만다.
그런데 얌체와 자린고비들이 생각 외로 바글거렸다. 열 번을 사도 한 번을 안 사는 종족이 있었고, '당연히' 내가 사는 걸로 아는 철면피도 있었다. 하지만 대인관계를 위해 늘 아낌없이 쐈다. '돈은 써야 들어온다'는 어느 개똥철학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30년간 속았다. 내 계산법이 틀렸다. 돈을 쓰면 그냥 나가는 것이지, 나간 만큼 복덩이가 굴러들어 오진 않았다. 부끄러운 사실은 퇴직 무렵에야 더치페이를 선언했다는 거다. 차라리 계속 샀으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듣는데 말이다.
물론 자린고비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선후배를 제외하고 동기나 동년배들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몰래 카드를 미리 긁거나 재빠르게 뛰어가서 계산하는 쪽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서로 내려고 가벼운 실랑이까지 벌이곤 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늘 얻어먹던 '그분'들 역시 돈을 모으진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주변에선 이런 우스개가 떠돌았다. '기자와 경찰, 거지가 함께 밥을 먹는데 서로 계산을 안 하려고 버티자, 거지가 냈다'던 이야기다. 얼마나 공짜 밥, 공술을 좋아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하긴 기자들이 단체장이나 공무원, 기업인과 술밥을 먹고 자신들이 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노동자들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44평 맨션에 산다. 방 4개, 화장실이 2개, 앞뒤 베란다가 있으니 제법 폼이 난다. 하지만 대출이 끼어 있어 안방과 부엌은 어느 은행 쪽에 저당 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남는 공간은 어디인가. 뭐 빼고 뭐 주고 나면 남는 건 빚뿐이다. 그래도 비와 바람을 피할 집이 있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돈에는 필시 '발'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벌면 나갈 일이 생기고, 모으려고 하면 목돈이 뭉텅 나간다. 마이너스로 시작한 사람이 통장의 잔고를 플러스로 만들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월급이 들어오는 순간 카드사가 먼저 빼가고, 은행권이 달려든다. 정작 통장을 확인할 땐 채권자들이 치고 빠진 얼룩만 남는다. 이제 공과금과 약간의 보험료, 통신료를 정산하고 나면 한숨만 남는다. 이게 노동자들과 소시민들의 비애다.
모든 노동자들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나에게 밥을 안 사줘도 좋고, 술을 안 받아줘도 괜찮다. 그냥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어떻게든 이 현장에서 살아남아 따뜻한 밥을 먹고, 뜨끈한 온돌방에서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
먹고 싶은 걸 참고, 입고 싶은 걸 참고, 가고 싶은 여행을 참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를 잘살아 가길 소망한다. 현재의 삶이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모든 노동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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