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쿠는 아내를, 미사키는 엄마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트리플픽쳐스
가후쿠는 아내가 죽던 날에 대해 미사키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말한다. "좀 일찍 (집에) 돌아갔으면 좋았을걸, 그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어"라고. 그러자 미사키는 말한다. "저도 엄마를 죽였어요"라고.
스물세 살 미사키가 운전을 잘 하게 된 데는 아픈 사연이 있다. 홋카이도 출신인 미사키는 중학교 때부터 엄마에게 운전을 배웠다. 삿포로에서 술 장사를 했던 엄마를 전철역까지 차로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
차에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던 엄마는 미사키가 운전을 험하게 하면 뒤에서 발로 찼다. 덕분에 미사키는 어떤 길에서도 엄마가 깨지 않게 운전하는 법을 익혔다. 엄마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
미사키의 엄마에게는 '사치'라고 하는 다른 인격이 있었다. 나이는 여덟 살. 사치는 주로 엄마가 미사키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한 후 나타났다. 잘 움직이지 못했던 사치는 늘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자주 울었다. 그러면 미사키는 사치를 안아줬다.
그 시간이 저는 좋았어요. 엄마에게 있는 마지막 아름다움이 사치에게 응축되어 있었거든요(미사키).
이중성을 가진 사람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산사태가 일어나 집을 덮치던 날, 엄마는 무너진 집에서 죽었다. 미사키도 그 집에 있다 빠져나왔지만 구조를 요청하지도, 엄마를 구하러 가지도 않았다.
미사키는 여전히 그날 자신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엄마를 미워했지만 밉기만 했던 건 아니었는데 왜 엄마를 구하지 않았는지. 엄마가 죽는 것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사치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왜 몸이 움직이지 않았는지.
아내를 죽인 남자와 엄마를 죽인 여자가 나오는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내 인생이 단단히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나도 가후쿠와 미사키처럼 아무 일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억울함, 원망, 후회, 미련 같은 감정이 덕지덕지 엉켜 붙어 있었다.
심리 상담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내가 '부정적 감정'이라 분류한 감정이 나를 덮쳤을 때, 나는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어서 빨리 흘려보내려 하는 것 같다고. 심리 상담사 말처럼 상처를 받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외면이었다. 욕하고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도 헛웃음을 지으며 몸을 더 꼿꼿하게 세웠다. 그 일이 내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않았던 것처럼, 전혀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상처를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였을까. 이 정도 일은 누구나 겪는 거라고, 별일 아니라고 세뇌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라는 원망이 가시지 않았다.
원망의 칼날은 좀 더 현명하지도 어른스럽지도 못했던 나 자신에게 향했다. 상처를 똑바로 마주하려면 나의 치부도 함께 들춰내야 했기에, '그 일'을 꽁꽁 싸매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뒀다. 애초에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다.
가후쿠와 미사키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대방을 미워했다 이해했다 나를 미워했다 이해했다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어떤 날은 내가 안쓰러웠다 그 안쓰러움조차 기만이라 느끼지 않았을까.
제대로 상처받는 법에 대해

▲영화 속 미사키는 가후쿠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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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쿠보다 번뇌의 시간을 좀 더 오래 겪어낸 미사키는 가후쿠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후쿠씨는 오토씨를, 오토씨의 그 모든 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가요? 오토씨에겐 수수께끼가 없었잖아요. 그냥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는 게 어려운가요? 가후쿠를 진정 사랑한 것도 다른 남자를 끝없이 갈망한 것도 어떤 거짓과 모순도 없는 것 같은데요. 이상한가요?
미사키의 말을 들은 가후쿠는 처음으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며 말한다. 정말로 상처받은 얼굴로.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 진실을 지나치고 말았어. 실은 깊은 상처를 받았지. 곧 미쳐 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 못 본 척했어.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없었어. 그래서 난 오토를 잃은 거야. 영원히. 그걸 지금 알았어. 오토가 보고 싶어. 만나면 화를 내고 싶어. 책망하고 싶어. 나에게 계속 거짓말한 걸. 사과하고 싶어.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은 걸. 내가 강하지 못했던 걸.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살아줬으면 좋겠어.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어.
김연수 작가의 단편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라는 구절이 나온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기억했을 때 현재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집니다."
영화 속 미사키는 가후쿠의 미래다. 언젠가 가후쿠도 미사키처럼 오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미사키가 자신을 때리던 엄마와 아름다웠던 사치를 둘 다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던 자신과 엄마를 구하지 못했던(않았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그때가 되면 가후쿠 역시 자신을 속인 오토도, 오토를 속인 자신도 용서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상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가후쿠는 미사키처럼 상처와 죄책감을 끌어안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 가후쿠는 먼저 제대로 상처받아야 한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상처를 헤집어야 한다. 상처는 겪어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지나가기 위해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 마음속에 원망과 자책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면 오토의 행동에 "어떠한 거짓과 모순도 없는 것 같은데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던 미사키를 떠올렸다.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나도 미사키처럼 체념이나 냉소가 아니라, 나와 타인의 이중성과 모순을 용기 있게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타인도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날이 올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로움은 희미해졌다. 그제야 다시 깨달았다. 겪어내야만 끝이 난다는 걸. 엄지와 중지를 딱하고 튕긴다고 사라지는 고통 같은 건 없다는 걸.
과거를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가후쿠와 미사키는 서로를 끌어안는다.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말한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어떤 형태로든 그게 계속되지. 나와 너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가야 해.
무너지고 흔들리며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말보다 훨씬 위로가 되는 진실이다.
*지금까지 <나를 키운 여자들>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 주신 덕분에 <나를 키운 여자들> 이 책으로 출간됐어요. <오마이뉴스>에 그동안 연재했던 글을 포함해 32편의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에세이를 새롭게 엮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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