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레다는 젊은 니나(다코타 존슨)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다.
㈜영화특별시 SMC
작별 인사조차 없이 집을 나왔던 레다는 3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엄청 좋았다면서 딸들한테 왜 돌아갔어요?'라는 니나의 질문에 레다는 답한다.
엄마니까. 애들이 보고 싶어서. 난 아주 이기적이거든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집을 떠났고, 니나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니나 딸의 인형을 훔치고, 아이들이 없는 게 너무 좋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어 다시 돌아갔고. 레다는 이상하고 모순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을 "뒤틀린 엄마"라고 부르는 레다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욕망을 변명하지 않는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영화를 보면서 <분노와 애정>이라는 책에 수록된 에세이 <나쁜 엄마 모임>이 떠올랐다. 제인 라자르가 쓴 <나쁜 엄마 모임>에서 작가의 친구 애나는 말한다. "애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애들이 진짜 미워." 그러자 작가가 말한다. "영화에서 엄마들이 애를 살리려고 트럭과 총알을 막아서는 거, 그거 다 진짜야. 애를 잃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마 이게 사랑이 아닐까." 이어서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애는 내 삶을 망가뜨려. 오로지 망가진 삶을 되찾기 위해 산다니까."
다음 구절은 내가 두고두고 찾아 읽는 구절이다.
나는 천천히 말을 마쳤다. 두 번째 문장이 없다면 첫 번째 문장은 기만적인 거짓말일 뿐이다…중략…우리는 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가성을 받아들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모성애가 아닐까.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아이가 미운 마음, 아이와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아이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 혼자 있는 게 행복하면서도 아이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는 마음.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 모성에도 두 가지 마음이 늘 함께 한다. 엄마의 마음은 늘 모순적인 것 같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모성 이데올로기는 욕망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좋은 엄마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나쁜 엄마라고 낙인을 찍는다.
<로스트 도터>는 겉으로 보기에 그저 귀엽고 예뻐 보이는 인형 안에 있는 구정물과 벌레를 굳이 끄집어 내서 관객들 눈앞에 보여 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기적인 뒤틀린 모성(motherhood)도 모성이라고. 정말로 나쁜 것은 엄마에게 오직 한 가지 마음만 갖기를 강요하는 사회라고. 이런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얼마 전, 4살 아이를 둔 엄마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4살 아이는 당연히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고, 아이 엄마는 KTX를 탔을 때 나처럼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이 됐다. 4살 아이 엄마는 혼자 의젓하게 밥을 먹는 우리 집 7살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언제 이렇게 키우냐고. "3년만 기다리면 돼요"라고 말하며 나의 3년 전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레다와 니나처럼 이 상황이 언젠가 지나가리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이는 영영 자라지 않을 것 같았고 이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무한 반복될 것 같았다.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사이 내가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또 다시 지나치게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으며 사람은 직접 겪은 것만을 믿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결코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않는다. 안 그래도 숨이 넘어가고 있을 엄마에게 시선 하나를 더 보태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다. 비행기와 KTX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다짐했다.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소리 내서 다른 엄마를 도와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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