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운은 일터에서 감정 노동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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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 할수록 일 자체보다 어려운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업무 채팅창에서 '네'와 '넵'과 '넹'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부터 일하면서 겪는 모든 것이 감정 노동이었다. 일터에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일하는 티를 적절히 내면서도 적당히 겸손해야 했고, 팀원들에게 '수고했어요', '감사해요' 코멘트도 놓쳐선 안 됐다.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주 웃어야 했고, 내 의견을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동료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끊임없이 눈치를 보며 살펴야 '일 머리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감정 노동은 여성들에게 더 많이 요구된다. 웃지 않는 여자 아이돌에게 따라다니는 인성 논란을 떠올려 보라. 감정 노동을 안(못) 하는 남자는 과묵하고 숫기 없다는 소리를 듣지만, 감정 노동을 안(못) 하는 여자는 무뚝뚝하고 싸가지 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여성 리더십에는 꼭 '부드러운 리더십', '포용의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성들이 더 감정 노동을 잘하도록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더 많은 감정 노동을 담당하는 것은 늘 여성이다.
일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관계에 신경을 써야겠지만 때때로 이 모든 노동이 지긋지긋했다. 그럴 때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척하거나 눈 딱 감고 하고 싶은 말을 내지르기도 했다. 그래놓고는 또 '너무 나대는 것 아닐까', '너무 싸가지 없어 보이는 것 아닐까' 눈치를 봤다. 이건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애매한 나쁜 년'이 된 것 같았다.
'차스테인 언니의 충고 : 니가 애매한 나쁜 년이라 마음이 무거운 것이야. 더 나쁜 년이 되도록 하여라.'
<미스 슬로운>을 보게 된 건 OTT 서비스 '왓챠' 사용자 한 줄 평 때문이었다. 슬로운은 일터에서 불필요한 감정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웃지 않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감정 노동에 드는 에너지를 아껴 진짜 일을 하는 데 쏟는다.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진짜 일이고, 어디까지가 감정 노동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감정의 총량을 생각한다. 일터에서 나이스한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어 무리해서 감정을 쓴 날에는 집에 돌아와 남편과 아이에게 쓸 에너지, 나를 돌볼 에너지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곤하고 지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감정과 에너지는 정해져 있는데 너무 많이 당겨써버린 것이다. 나중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이스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또다시 애매한 나쁜 년이 됐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더 나쁜 년' 슬로운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