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효산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순천상고라는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1986년에 입학하거나 전학 온 학생들이 졸업한 1989년 봄까지, 단 삼년간의 일이었다. 그 사이 전국대회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맛보지 못한 채 6번의 1회전 탈락이라는 민망한 기록만을 야구사에 남긴 하나의 해프닝이었지만, 그 팀이 배출한 선수 하나가 한국야구사에 굵직한 획을 써내려가고 있음은 그저 우연이라기엔 너무 대단한 행운이다. 송진우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마운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며 더 널리 기억되고 응원 받았을, 조웅천이라는 선수에 관한 이야기다.
고교 졸업 후 그는 꼴찌 팀 태평양 돌핀스의 연습생으로 간신히 프로무대에 발을 들여놓았고, 한 해 만에 정식선수가 되긴 했지만 단 한 번의 승리나 세이브도 기록하지 못한 채 무려 다섯 해를 흘려 보내야 했다. 물론 해마다 프로무대 문턱 앞에서 좌절하며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배워보거나 꿈꿔 보지 못한 삶의 막다른 길을 마주하는 수백 명의 소년들보다 조금 나은 행운을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2군과 후보 사이를 전전하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며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에 더 아득한 절벽을 목격하는 또 다른 수백 명의 길을 그는 어김없이 따라 걷는 듯했다.
그는 듬직한 체구를 가진 것도, 위압적인 눈빛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빠른 공을 가지지도 못했다. 항상 마운드 위에 서면, 그의 운동선수 같지 않은 고운 선의 얼굴에는 경기에 나섰다는 기쁨과 막강한 적을 맞이한 두려움, 그리고 긴장과 설렘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팀 돌핀스의 전설적인 물방망이 타선을 등에 업고 오로지 자신의 공 하나만을 믿고 나서야 했던 전장에서 그는 간혹 꽤 여러 이닝동안 무실점이나 1실점 호투를 하고서도 기록에 뭔가를 남겨 적지 못하고 물러서곤 했었다.
독하지는 않지만 질긴 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