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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생활 11년째인 중학교 교사입니다. 모범 정답인양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강산이 한 번 변한 경험에 미루어보건대, 체벌은 진통제일 뿐입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거창한 목적을 들이민다 해도 결코 교육적이지 않는 대증요법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20여 년 전 학생의 입장에서 무시로 겪었던 황당한 체벌 경험과 교사가 되어 가해자의 입장에서 겪은 뜨끔했던 경험을 소개할까 합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반성은 안하고"

매질을 해도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고, 매질을 하지 않아도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매질은 필요 없습니다. (사진은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의 체벌 모습.)
 매질을 해도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고, 매질을 하지 않아도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매질은 필요 없습니다. (사진은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의 체벌 모습.)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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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했던 체벌의 기억이라고 하면, 20여 년 전 고등학생 시절 지각 한 번 했다가 몰매 맞았던 경험이 우선 떠오릅니다. 서슬퍼런 비평준화 시절이었기에 밤 10시가 이르다 할 정도로 하교 시간이 늦었지만 지각은 흔치 않았습니다.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오로지 서울 입성, 그것도 명문대 진학이라는 유일한 목적 아래 그 어떤 일탈도 용서되지 않았던 시절이니 지각은 분명 맞을 만한 짓이었습니다.

우선 학교 교문에서 '태도 불량'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학생부 선생님들로부터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이건 1차 관문일 뿐입니다. 건물로 들어서면 학년주임(현 학년부장) 선생님에게도 엉덩이에 시퍼런 멍 하나를 더 받아야만 했고, 교실에 들어서면 저승사자 같은 담임선생님의 눈빛과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번의 체벌이 있은 뒤에야 지각 한 번의 죄 사함을 받은 겁니다.

친구와 싸웠다거나 성적 떨어졌다며 맞은 건 차치하고라도, 교복 단추 뜯어졌다고, 명찰 달지 않았다고, 선생님께 인사하지 않았다고, 심지어는 좌측통행하지 않았다는 등의 시덥지 않은 이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맞는 생활 속에서, 체벌은 아예 교육과 동의어였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체벌에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게 아니라 말해봐야 매만 더 번다고 모두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무슨 객기에서였는지, 저는 학생주임 선생님께 지각 한 번에 대한 체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사회 시간에 배웠고 당시 시험에도 출제되었던 얼치기 지식과 용어를 동원해가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일사부재리'. 교문에서 한 번 죗값을 받았으면 됐지, 학년에서 교실에서 다시 매맞을 이유는 없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예상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많은 선생님들로부터의 낙인과 엉덩이에 불붙는 듯한 체벌은 졸업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그 고통은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하라는 반성은 안 하고 네가 감히 선생을 가르치려 들어?"

고함 소리에 잔뜩 주눅 든 채 창문 하나 없는 생활지도실까지 끌려가 한 달 동안 맞을 매를 한꺼번에 다 맞은 다음에야 풀려났습니다. 친구들은 가엾다는 표정으로 괜한 짓을 했다며 위로해주었습니다.

'낙인'이 서러웠고 엉덩이에는 한 달 넘도록 피멍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 순간 이후 뿌듯했습니다. 지금까지 모습과는 다른 당당함으로 스스로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고 했지만, 그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매질을 통한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옳지 못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어느 날 제자에게 온 편지

학창 시절 이후 그토록 매를 든 선생님을 조롱해왔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교사가 되어 손에 매를 들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섬뜩하게 여겼을 법도 하건만, 초임 시절 몇해 동안은 학창 시절 쓰라린 기억을 깨끗하게 지운 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당연시했습니다. 다들 그런다는 안도감과 교육자가 피교육자를 대상으로 한 훈육의 상징으로 매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교사 지시를 거부하는 것을 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고, 교사의 눈에 비친 학생들의 일탈 행위는 무조건 반사회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교사는 학생보다 도덕적으로 늘 우위에 서있는 존재였고, 미성숙한 학생들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교사는 나침반 같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교직 생활 5년째 되던 어느 날, 한 제자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워낙 눈에 띄지 않던 학생이라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가물가물해 졸업앨범을 뒤적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그가 편지를 통해 끄집어낸 저에 대한 기억은 바로 체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점심시간 교문 밖에 나가다 걸려 혼났다는 내용인데, 몹시 아팠지만 제게 맞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왜 나갔는지 먼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엎드려 뻗친 상태로 매를 맞아야 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이미 체벌 자체가 학생과 교사 간, 학교와 사회 간에 아주 오래 전부터 합의된, 의문의 여지조차 없는 규범이자 전통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잘못을 말로 지적하면 되지 왜 때릴까 고민했다고 하면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반성하라며 맞았지만, 조금도 반성이 되지 않더랍니다. 학교 내에서 맞는 게 워낙 흔한 일이다 보니 잘못이 뭔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교사에게 대들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냥 해방될 그날, 졸업 때까지만 참자'며 자위하곤 했답니다.

결국 초임 교사의 열정은 교육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 아이에게 씁쓸했던 기억과 상처만 남긴 꼴입니다.

"외람되이 말씀 올리는 거"라면서도 편지 끝에 따끔한 질책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질로 반성할 아이라면 말로 해도 충분히 알아듣고, 말로 해서 안 될 아이라면 아무리 매질을 해도 반성하지 않을 겁니다."

'스승을 가르치려 든 짓'이었지만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고, 외려 고마웠습니다. 그 편지 이후 제 손에서 매는 버려졌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도 대화하고, 설득하며 아이들과 직접 만나려는 마음가짐이 생겼습니다. 반드시 지금 내가 해결하고야 만다는 욕심을 버렸습니다. 욕심을 비운 자리에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쳐가는, 의미 있는 간이역이면 족하다는 소박한 바람이 담겼습니다.

제자의 가르침으로 '체벌'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 속에서 지워내자 학교에서 체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순간일 수밖에 없는 그 '효과'는 체벌의 또렷한 한계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체벌이 사라질 수 없는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체벌이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경우, 교사의 학생에 대한 책임은 담임의 경우 고작 1년, 아무리 길어야 3년을 넘지 않습니다. 학생의 졸업과 동시에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관심과 상담, 지도 등 일체의 교육 행위도 동시에 멈추게 됩니다. 체벌 또한 사라지고, 그 기간 동안의 기억은 좋든 싫든 추억으로 남겨집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결국 학생이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 사고가 없으면 비록 '명문'이라는 소리는 못 듣는다 해도, 좋은 학교이며 무난한 교육을 받았다고 대내외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이른바 문제아를 폭탄 돌리기 하듯 이웃 학교로, 또 상급 학교로 밀어내기 급급하고, 학교 내에서라도 숨죽이고 지내라며 강한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체벌입니다.

누군가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고 했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말들 합니다. 날로 아이들의 일탈 행위가 거칠어지고 도를 넘어선다고 해도, 그들 역시 감동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 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어쩌면 체벌은 그들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다가설 능력도, 함께 부대낄 마음가짐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교사의 부끄러운 고백은 아닐는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을 통해, 불가능한 일에서도 가능성을 보게 한다는 격려를 통해, 아이들이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하는 헌신 등을 통해, 다다를 수 있을지언정, 결코 체벌을 통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체벌에는 감동이 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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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여 년 전 매질을 해대던 그때 그 선생님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찾아뵐 자신은 솔직히 없지만) 가끔씩 소식이 궁금해지곤 합니다. 좋든 싫든 추억이 되었지만, 그 긴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 선생님들을 교사인 저 역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체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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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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