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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있다가 올해 중학교로 옮겼다. 중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서는 말로 하는 일을 중학교에서는 매와 욕설로 먼저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어리니까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우진용 시민기자의 기사(☞ 권영길 의원님, 학교현장 살피긴 했습니까)를 읽으면서 매우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학생'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체벌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지난 11월 3일, 79돌을 맞는 학생의 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학생인권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지난 2006년 3월, 당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한 바 있는 같은 법률안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학교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학생 인권에 관한 조항들이 담겨있다(박스기사 참조).

 

우진용 기자는 이를 두고 "학교 현장에 대한 엄정한 인식도 없이 내놓은 법안"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학생·교사 등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학생들의 일탈행위가 갈수록 저학년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러한 일탈행위에 교사로서 생활지도 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런 것은 살피지도 않고 학생인권법안을 만들어 힘들게 하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이 자유로워지고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지면 "교사들은 무기력에 빠질 것이고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니 "학생 체벌도 오히려 강화"할 것마저 요구했다.

 

학교 현장에는 우진용 기자와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의외로(?) 많다.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아름다운 추억과 향수를 가진 교사들도 많다. 현실이다. 학생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 학생이 인간 같으면) 나중에 다 고마워한다고. 이것이 학교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체벌(폭력)시스템의 근본 작동 원리다. 그래서 교사의 체벌(폭력)은 '사랑의 매'로 둔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진용 기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주장대로 두발 규제, 복장 단속, 가혹한 체벌로 다스리면 학생들의 일탈행위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는가? 간혹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음성화된 것이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사들이 더 잘 안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다.

 

하나 더 좀 솔직히 말하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학교 안에서 하는 흡연은 '학생부'라는 기관에서 충분히 엄하게 무시무시한 관리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학교 바깥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해당 학교의 교복을 입고 버젓이 담배를 물고 다니면 '학교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 때문에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거다. 학생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나 피해는 그 다음이다. 정말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은 학교 이미지 운운하며 체벌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상시적인 금연지도 프로그램 운영과 지속적인 상담이 아닐까.

 

이러한 책임은 생각 않고 일탈행위라 규정한 학생들의 두발·복장에 화살을 돌리는 건 비겁하다. "학생들의 일탈행위가 갈수록, 저학년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그것이 두발규제, 복장검사, 체벌의 정당화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인과관계를 잘못 짝지었다.

 

청소년의 일탈행위는 성장과정이나 환경 등의 문제이지 두발이나 복장규제, 체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행동이 흐트러지는 것은 그 제복을 정복으로 입던 시절의 악몽이 남긴 무서운 트라우마의 재발현이다. 우진용 기자가 주장하는 두발규제, 복장검사, 체벌 강화 등이 바로 그러한 원인에 해당한다. 학생들이 졸업식날 잔인할 정도로 갈기갈기 교복을 찢어버리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인권법안은 학교에 드리워진 그물을 조금 걷어내는 일

 

두발·복장을 검사하고 체벌하는 일은 '생활지도'가 아니다. 인권침해일 뿐이다.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알리고 더불어 함께 나누는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생활지도다. 거기에 머리가 좀 길면 어떻고, 교복 단추 하나가 풀어져 있으면 어떤가. 상투 틀고 쪽지고 다닌 조상님들이 얻은 명예가 '동방예의지국'이다. 그런 걸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잔인한 '생활지도'부터 먼저 인권감수성 교육을 좀 받아야 하지 않을까.

 

권영길 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안은 학교에 드리워진 그물을 조금 걷어내는 일이다. 너무 촘촘하고 견고해서 성어는 물론 치어들마저 모조리 잡아들이는 그물코를 조금 넓히려는 것일 뿐이다. 성어와 치어들이 마음껏 바다를 유영하는 그날까지 그물코를 넓히고 궁극적으로 걷어내는 일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

 

교사들은 "교권이 무너지면 학생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며 학생인권법의 발의를 거부할 일이 아니다. 교사의 인권이나 학생의 인권은 똑같이 소중하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교사(학교)보다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이 지금보다 좀 더 존중받는 가치를 지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여전히 학생은 약자일 테지만.

 

그러기에 학생들의 권리는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존중받아야 한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인권의 주체'가 아닌 '통제와 보호의 대상'으로 취급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어리기 때문에 더 존중해주고 귀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존중 받는 교권의 출발은 바로 거기에 있다. 스스로 규제와 폭력으로 세운 교권은 언제나 땅바닥을 굴러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재 학생들은 어른들이 겪었던 학창 시절과는 매우 다른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갖고 있"음을 알면서 지난 시절의 폭력적 그물망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이들과 일생을 함께 해야 할 교사들이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성세대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지금의 교육 현장은 꿈을 꾸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해맑은 웃음으로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드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말없는 웃음으로 아이들의 꿈을 지켜보는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훈련과 체벌이 공공연하던 지난 시절에 비한다면 훨씬 낭만적이고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조금만 더 인권친화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거기에 모든 교사가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학생인권법안 주요 내용 및 비교

 

▲ 2006년 3월,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 발의 학생인권법안 주요 내용

 

① 학칙의 인권침해규정을 막고 학칙 중 학생생활 등에 관련된 사항을 개정할 때에는 총학생회와 협의해야 할 것(8조 2항 신설) ② 학생회를 법적 기구화 하고 학생회칙 등의 제·개정권과, 학교생활과 급식비 등 학교의 납부금 징수 등에 의견 표명권을 부여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 참여(17조 및 31조 2항 개정) ③ 징계 시 학생과 학부모에게 소명 및 재심청구의 기회를 부여(18조 2항 개정) ④ 학교의 장과 교사가 학생에게 신체적 가해, 즉 체벌을 금지 할 것(18조 3항 신설) ⑤ 학교장 및 학교 설립·경영자의 학생인권 보장 조치 강구를 의무화 하며 학생의 동의 없는 0교시·야간 자율학습, 두발·복장 검사, 소지품 및 일기장 검사 등의 행위를 금지(18조 2 및 3 신설)

 

● 이 안은 지루하게 시간만 끌다가 “(학생의 인권보장)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2007.12.14)는 조항이 초중등교육법 제18조 4항에 추가되는 것으로 끝났다.

 

▲ 2008년 11월, 민주노동당 권영길의원 발의 학생인권법안 주요 내용

 

① 학생 징계시 해당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견 진술 및 재심청구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적정한 절차를 거치도록 함(안 제18조 제2항) ② 육체적 체벌을 금비하도록 함(안 제18조 제3항 신설) ③ 정규수업 이외의 교과수업 또는 자율학습 등의 명목으로 정규 수업시간 시작 이전에 등교시키는 행위, 추가학습이나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행위, 학생 두발,복장,개인소지품,일기를 검사하는 행위, 가정환경,성적,외모,성별,국적,종교,장애,신념,성정체성에 따른 차별 행위 등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함(안 제18조의 5 신설) ④ 교육공무원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5년마다 학생인권실태조사를 하도록 함(안 제18조의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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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생인권법, #인권, #권영길,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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