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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입양을 하셨죠?"

우리 가족의 구성은 이렇다. 나와 아내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아들(11세)과 19개월 딸. 아들은 배 아파 낳은 친자식이고 딸은 생후 27일 되던 날 가슴으로 낳은 딸이다. 뭐... 우리 부부가 더 이상 자식을 낳는데 생물학적인 하자가 있어 택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이뻐'하는 딸이 입양아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반드시 의아한 표정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

"딸을 키우고 싶어서요."

이 때 마음은 마치 산고를 마치고 병원 분만실에서 마주쳤던 첫 아들에 대한 기억과 같다.
▲ 내 딸 소린이 가족이 된 후 며칠 지나 이 때 마음은 마치 산고를 마치고 병원 분만실에서 마주쳤던 첫 아들에 대한 기억과 같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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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다. 아들만 오형제인 집안에서 자라온 나는 꼭 딸을 키우고 싶었다. 물론, 딸 여섯에 밑으로 아들 둘 집안인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성차별의 역차별적인 표현이겠지만 남자인 내가 보아도 딸은 집안에 꼭 있어야 할 존재다.

남자형제에 둘러싸인 나는 남자만 있는 집안의 무미건조함을 실체적으로 경험한 장본인이고, 여자형제들이 주류인 아내는 장성한 딸들이 커가면서 얼마나 살가운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지를 지금도 증명해주고 있는 장본인이다.

"정 그러시면 직접 낳지 그랬어요?"

당근,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시도까지 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곧 돈이었고 맞벌이까지 했던 우리에게는 그럴 돈이 없었다. 아이 하나 키우면서 집 늘리는 일만 하기에도 우리 가족은 낮엔 이별의 부산정거장에 머물다가 대전발 영시오십분이 되어야 겨우 얼굴 한 번 마주치는 서로에게 아주 격조한 나날을 보내야 했으니.

그래서 2006년 시골로 보따리 싸들고 무작정 내려왔다. 고향이 아닌 타향이었고 처음에는 다 그렇듯이 모진 고생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아파트와 대형마트가 없는 시골에서는 굳이 평수로 남과 비교할 필요도, 무작정 소비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버리고 내려와 살다 보니 새로 채워지는 것은 가족들과의 따뜻한 교감들이고 회사에서 필요한 시간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그런 틈바구니 안에 다시 그토록 키우고 싶었던 딸의 존재가 어느새 슬며시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확률이었다. 낳으면 아들일까? 딸일까? 50:50의 게임이었다. 형제들을 살펴봤다. 큰형 딸 둘, 둘째 형 딸 둘, 셋째형 아들 둘, 동생 딸 둘. 그럼 나는 아들 둘? 음...이건 하면 지는 게임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 패를 쓰지 않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100%의 확률이 필요했어요."

그러니까 이 대답을 유도했던 질문의 당사자가 '우리부부는 해외로 입양되어 정체성을 잃고 마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슬픈 현실을 알고 우리라도 국내입양의 전도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사명감과...' 등으로 시작되어 감동적으로 마무리 되는 아주 교과서적인 입양 이유를 바랐다면 그건 오답.

즉, 질문한 사람들의 다음 반응은 이런 식이다.

"에이...정말?"
"응."

오빠인 선웅이는 동생인 소린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 소린이 백일 때 오빠인 선웅이는 동생인 소린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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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필요해서 딸을 가졌다. 이게 우리부부가 입양을 선택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그리고 공개입양을 했다. 물론, 입양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도 안다. 그리고 경험했다. 원인과 결과는 간단했지만 참 많이 복잡하게 고민했다. 누구나 하는 그런 고민.

친자와 입양아에 대한 애정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 나중에 아이가 커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겪어야 하는 아픔은? 아이가 커가면서 우리와 다른 유전적인 차이의 극복은?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깊이 생겨줄까? 혹 공개입양 사실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차별은 없을까? 등등등.

정말 고민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는 했다. 왜? 딸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그런 고민과 두려움들을 이겼다.

"지금은 어떠세요?"

사람들이 가끔 질문한다. 아마도 후회하지 않느냐는 속질문도 있을 것이다. 한번쯤 입양을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우리 부부가 입양 전에 가졌던 고민과 두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 입양뿐인가? 무슨 일이든 실행에 옮기기 전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그런 마음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특히나 일반적이지 않은 그런 경우라면 더 그렇다. 남들이 쉽게 가려 하지 않은 길에 올라서야 하는 두려움과 공포.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기로에 반드시 몇 번은 서야 한다. 그리고 고민하고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선택의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어떤 마음이 이기느냐 하는 것. 왜 선택의 순간을 스스로 자초해야 했느냐는 것. 여기서 가능한 스스로 자초한 본질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쩌면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좋은 결과를 놓치고 만다는 것.

"행복합니다."

그렇다. 지금 행복하다. 가족이 있어 행복하고 딸이 있어 더 행복하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시라. 이제 19개월 된 어린 딸이 "사랑하자" 말하면 달려와 '폭' 안기어서는 등을 '토닥토닥' 해주고 입술을 내밀어 '뽀'도 해준다. 우리 가족이 입양 전에 가졌던 고민과 두려움들, 대부분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경험해 보지 않아 알 수 없었던 막연한 추측과 억측들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배와 가슴을 차별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차이가 나는 유전적인 형질은 지금 애써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고 드물게 그런 느낌을 알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한 번은 겪게 마련인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우리 가족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운명이고 현실이지만 이를 서로가 극복하기 위해 공개입양가족들의 모임을 함께 만들었다.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잘 커주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짙다.
▲ 19개월 소린이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잘 커주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짙다.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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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27일 만에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온 내 딸이 지금 우리 부부에게 보여주는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이란 내 아들이 그만한 때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에 비해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딸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 아무리 그래도 내리사랑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존재인 내 딸이 곧 여동생을 맞이할 예정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하고 다투며 살다가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좋은 위로가 될 게 틀림없을 거라는 우리 부부의 의견이 일치했다. 

당근, 이번에도 우리부부는 확률게임에 패를 던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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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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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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