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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고정미
현대 정씨 일가의 역사는 우여곡절 많은 '비운의 역사'다. 외부적으로 조국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가족들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인천제철 회장이었던 장남 정몽필씨가 지난 82년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데 이어, 4남 정몽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5남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여덟 아들 가운데 2명은 자살로, 1명은 사고로 생을 마감한 셈이 됐다.

현대 정씨 일가의 분열은 2000년 3월 '왕자의 난'을 통해 표면화 됐다. 정몽헌 회장 사람으로 알려진 이익치 사장의 인사발령으로 비롯된 왕자의 난은 현대그룹 이미지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왕자의 난 당시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상선, 현대엘레베이터 등 현대그룹의 중요 계열사를 이끌었던 정몽헌 회장은 사실상 현대그룹 후계자의 지위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반발과 계열사 내에 취약한 지분 구조로 인해 현대·기아차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면서 몽헌-몽구 회장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가 잇따라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그룹은 현대건설·현대상선·현대아산으로 축소됐고, 이어 현대건설 마저 채권단으로 넘어가 정몽헌 회장의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대북 사업이 정권 교체기에 특검과 북핵 문제라는 암초에 걸리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된 점도 정몽헌 회장에게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차의 경영권 확보 이후 현대기아차를 재계 서열 4위로 끌어올리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돌적인 돌쇠형'인 정몽구 회장은 사업 수완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아들 의선씨를 현대차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후계구도도 착실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 정씨 일가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김영삼 정부 시절 큰 어려움을 겪은 데 이어 2002년 대선에서는 6남인 정몽준씨가 출사표를 던졌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로 국회의원이기도 한 정몽준씨는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렛대 삼아 대권 도전 의욕을 보였다. 막판 노무현 후보와의 극적인 후보 단일화 성공으로 주가를 높였지만, 대선 8시간 전 후보 단일화를 철회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까지 근접했다가 97년 해체된 한라그룹도 정씨 일가의 명암을 보여주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차남인 몽원씨가 지난 94년 후계자로 지명돼 그룹을 이끌어 왔으나, 97년 12월 한라중공업 부도와 함께 다른 계열사들도 청산, 화의를 거쳐 현재는 한라건설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한라그룹 역시 장남인 정몽국씨와 차남인 정몽원씨의 다툼으로 수모를 겪었다. 정몽원씨는 2002년 계열사를 통한 한라중공업 편법 지원문제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가가 보석으로 풀려나 항소중이다. 한편 형인 장남 몽국씨는 자신 소유의 한라시멘트 주식을 임의로 처분했다며 몽원씨를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두드러지지 않지만 나머지 형제들도 현대계열사를 맡아 경영에 참가하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의 3남인 정몽근씨는 현대백화점 회장으로 있으며, 장남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7남인 정몽윤씨는 현대해상화재 고문으로, 8남인 정몽일씨는 현대기업금융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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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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