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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평양 사이에서... 정몽헌 현대아산회장과 김윤규사장이 지난 2월 21일 오전 경의선 임시도로를 이용, 개성공단 답사를 위해 북측으로 넘어가기 앞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까.

현재까지 공개된 정 회장의 유서에는 직접적인 자살 이유에 대한 언급은 없어 구체적인 자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대그룹과 재계에서는 남북 경협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정 회장이 대북사업의 표류, 계열사의 자금난 등 기업 내부사정 악화를 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이 대북 송금사건으로 특검에 이어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 마찰, 사회적 비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대북사업과 관련된 부분.

정 회장에게 '대북 사업'은 현대가(家)의 법통을 이어주는 명분으로 작용했으며, 가장 집착했던 사업이었다.

4일 정 회장의 집무실에서 발견된,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앞으로 남긴 유서에서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달라"고 밝힌 그가 대북사업에 대해 각별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 당시, 정주영 회장과 정몽구, 몽헌 회장 등 3부자 동반퇴진 요구가 있었을 때도 정 회장은 "대북사업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이 현대자동차 그룹(정몽구 회장 계열), 현대중공업 그룹(정몽준 회장 계열)과 현대그룹(정몽헌 회장 계열) 등으로 쪼개지면서도 정 회장은 대북사업을 통해 꾸준히 재기를 모색해 왔다.

하지만 국민의정부 막바지부터 금강산 관광의 육로와 해로 관광이 차질을 빚고, 한나라당으로부터 금강산 관광이 '대북 현금송금'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주변사람에게 '힘들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정 회장이 주도해 온 금강산 관광이 정치권에 의해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고심이 많으셨다"면서 "이와 함께 대북송금 공판 과정에서의 정치권과의 마찰도 정 회장에게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 회장, 정치권과의 마찰에 큰 상심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최근 들어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사업 추진 등 남북 경협사업이 진행된 점을 감안할 때 대북사업 부진이 직접적인 자살 동기로 보기에는 약하는 반응이다.

현대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대북사업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최근 금강산 관광이 다시 시작되고, 개성공단 사업 추진과 고 정주영 회장의 체육관 완공을 앞두고 실무회담이 진행되는 등 진전이 있기도 했다"면서 대북사업 이외의 문제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그는 "대북송금 관련 특검수사와 법원 공판과정에서 대북 사업에 대한 사명감과 기업인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특히 정치권과의 마찰에 대해 고심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송금 과정에서의 정신적 고통과 함께 최근 '현대 비자금 150억원 조성'에 대해 대검 중수부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게 되자 정 회장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됐다는 시각이다.

다음은 대북송금 관련 특검 및 검찰의 수사와 관련한 부분.

정 회장은 대북송금사건 및 현대비자금 '150억원+α'건과 관련, 송두환 특검팀의 조사에 이어, 관련 재판과 특검조사 말미에 불거진 현대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최근까지 조사를 받아왔다.

지난달 26일과 31일 대검 중수부의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이 달 1일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재판에 이어 자살 이틀전인 8월 2일 다시 대검의 조사를 받았다.

이에 앞서 정 회장은 특검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5월 30일 특검에 첫 소환조사를 받았다. 6월 14일 방북했다 돌아온 뒤 15일 밤 11시에 재소환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대질 조사를 벌였으며 곧 이어 17일 다시 특검에 소환돼 박지원 전 장관과도 대질조사를 받았다.

정 회장의 주변인물들은 "정 회장이 그 동안 특검 조사와 북한 핵위기 등과 관련해 몹시 괴로워했다"고 전하고 있다. 부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력을 기울였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금강산관광사업 등 대북 경제협력 사업이 난관에 봉착하자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계서열 1위(자산기준)였던 현대그룹이 자동차부문이 분리되기는 했지만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데다, 계열사들의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이와 맞물렸던 것으로 해석된다.

▲ 4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분향소로 고 정몽헌 회장의 영정사진이 들어가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대검 중수부 조사내용에 관심

현대비자금 '150억원+α'사건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추측도 나온다.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대검이 한창 수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일주일간 3차례 진행됐던 검찰조사 내용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 회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검에 같이 나왔던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 회장의 변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조사내용이다. 검찰주변에서는 이미 드러난 150억원 이외의 현대비자금이 새롭게 나왔다거나 하는 등의 '감당'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조사를 받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문화일보의 도올 김용옥 기자는 4일자 5면 <천상여(天喪予)! 하늘이 버리셨도다>는 기사에서 정 회장의 최측근인 김윤규 현대아산 회장이 자신에게 "오죽하면, 오죽하면 저 모습이 되셨겠냐구! 검찰의 짖궂은 취조에 너무도 견디기 어려우셨던 거야. 해도해도 너무했던 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 김 사장의 진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대검 고위간부는 "지난 토요일(2일)에는 150억원에 대해서만 조사했다"면서 "고인은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조사를 받았고, 특이한 점이 없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정 회장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대북송금 관련 수사를 당분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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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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