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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가 해외거주 원폭피해자에 관한 원호시책을 발표한 것에 대해, 그 동안 일본 외 거주 피해자에게도 원호법 적용을 요구해왔던 단체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8일 사카구치 지카라(板口力) 일본 후생노동대신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5억엔(5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재외 피폭자에 관한 원호시책'(이하 원호시책)을 발표했다.

일 정부, "5억엔 기금 조성으로 해외 피폭자 문제 해결하겠다"

이번 원호시책은 히로시마 원폭 56주년을 맞은 지난 8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해외거주 피폭자 문제를 연내 매듭짓기 위해 재외 피폭자 검토회를 설치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관계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검토회'가 수 차례의 활동을 정리하고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일본에 올 수 없는 해외 피폭자들을 위해 일본 정부 차원에서 방일 비용과 생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원폭피해자협회'(회장 이호경)와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번 원호시책이 "재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처분이 아니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원호시책이 발표된 다음 날인 지난 19일,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사카구치 일본 후생노동대신에게 전달하는 항의문을 공개하며 반발했다.

이 공개 항의문에 따르면, "후생노동대신은 지난 8월말에는 한국에까지 와서 재한 피폭자들 구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한적십자총재와 보건복지부장관을 예방하면서 약속한 바 있다"고 밝히고 하지만 "들끓는 여론과는 상관없는 듯 5억엔 기금으로 재외 피폭자의 도일여비를 보조하겠다는 것이 고작이며 종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원호시책은 골칫거리 해결 위한 일본의 고육지책"

원폭피해자협회에 이어 지난 21일에는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대구KYC),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일본 정부의 원호시책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들 단체 역시 "이번 재외 피폭자에 관한 원호시책은 한마디로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해외에 살고 있는 재외피폭자의 요구가 반영됐기보다는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을 드러낸 것"이라며 혹평했다.

그렇다면 5억엔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원호시책이 반발을 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단체들은 이번 시책이 "그 동안 일본의 골칫거리로 돼 왔던 재외 원폭피해자 문제를 다급히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방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단, 이번 일본 정부가 발표한 원호시책의 대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5억엔 규모의 기금 조성 △조성된 기금으로 해외 원폭피해자의 일본 방문 시 여비 지급 △간편한 건강수첩 발부△의료비 무료, 건강수당(월 34000엔) 지급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물론 원폭피해자가 '일본에 체류 중일 때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원호시책 중 '해외거주피폭자 원호법 적용배제 법률화' 논란

무엇보다 이번 시책에는 "해외피폭자에게는 원호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법률에 확실히 기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들에게 적용됐던 원호법이 일본외 거주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공평성 문제를 사왔다. 이번 기회에 이것을 법률상 '해외거주자 적용 불가'로 못박겠다는 것이다.

대구KYC 김동렬 사무처장은 "이번 시책에 있어 가장 주요한 문제는 해외 피해자들에게 원호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법률에 명시하겠다는 부분이다"고 지적하고 "이는 지금까지 원호법 공평 적용을 주장하고 승소했던 재판결과를 모두 거스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현재 원호법의 공평한 적용을 주장하며 재판을 벌이고 있는 사례는 지난 6월 1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을 앞두고 있는 곽귀훈 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외에도 오는 26일 나가사키 지방법원에서 1차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강령 씨 재판, 그리고 이재석 씨 재판 등 총 3건이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재판은 70년대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의도가 지금의 원호시책을 낳게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원폭피해자협회를 비롯해 관련단체는 오는 26일 이번 시책에서 제외된 북한 거주 피해자를 대표하는 '재일조선인피폭자연락협의회'(조총련계. 회장 이실근)와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며 대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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