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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대구시 동구 신천동 소재)에는 대구, 경북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온 국회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일본 국회의원들은 지난 20일부터 한국을 방문한 '재외피폭자 원호법 적용 실현을 위한 의원 간담회' 소속 의원들로 지난 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희생된 한국인들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재외피폭자 원호법 적용 실현을 위한 의원 간담회'(이하 간담회)는 현재 일본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게 적용하는 원호법을 재외 피해자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에 항의해 지난 88년부터 소송 투쟁을 벌이고 있는 곽귀훈 씨 재판을 기점으로 일본 국회의원 54명이 초당적으로 결성한 모임.(지난 6월 1일 곽 씨의 재판은 곽 씨의 승소로 끝났지만 일본 정부의 항소로 오는 24일 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열릴 예정임)

이번 한국 방문길에 오른 의원은 간담회 소속 의원 중 각 정당을 대표하는 의원들로, 간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가네코 테츠오(金子哲夫. 사회민주당 소속), 사이토 테츠오(齊藤 夫. 공명당), 나가까오 토모고(中川智子. 사회민주당), 나가바야시 요시고(中林よし子. 공산당) 등 4명이다.

이들은 하루 전인 20일 한국을 방문해 서울에 있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협회장 이호경 대구경북지부장) 및 원폭피해자복지회관(경남 합천)을 찾아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일본 국회의원을 만나기 위해 협회 대구경북지부를 찾은 원폭 피해자들은 대략 50여 명으로, 이들은 원폭 피해 1세대들로 대부분 6, 70세의 고령이다. 이들은 의원들을 만나자마자 직접 증언에 다투어 나섰다.

히로시마에서 원폭으로 아버지와 두 형제를 잃고 어머니(85)와 함께 살아남았다는 김일용(58) 씨는 "오늘, 내일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면서 "몸은 아프지만 병명이 무언지도 모른 채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머니와 나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말로 증언을 맺었다.

또 11살 나던 해 원폭을 맞았다는 임옥선(67) 할머니는 "원폭을 후 자꾸 병이 생겨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지만 몸이 불구자가 돼 버려 시집에서도 병신이라고 온갖 수모를 겪고 쫓겨 나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말하고 "3년 전 불편한 팔과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큰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아직도 몸이 불편해 거동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을 유심히 듣고 있던 일본 국회의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종이에 받아 적고, 원폭으로 생긴 상처들도 자세히 살폈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날 의원들과 함께 대구를 찾은 곽귀훈(78) 씨는 원폭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와 벌이고 있는 소송 경과를 설명하면서 "일본 정부가 연말까지 일본 외 거주자들에 대한 원호법 적용 문제를 결론짓겠다고 했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일본이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각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은 후 일본 의원들은 원폭 피해자들이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한편 간담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대구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해 22일 민주당 이미경 의원과 면담, 대한적십자사와 보건복지부를 방문한 후 같은 날 오후 일본으로 귀국했다.

다음은 간담회 사무국장 가네코 테츠오 (金子哲夫. 사회민주당 소속)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 이번 간담회 의원들의 방문 목적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일본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들어보기 위해 왔다."

- '재외 피폭자 원호법 적용 실현을 위한 의원 간담회'라는 모임을 설명한다면...
"재외 피폭자에게 원호법을 적용하라는 곽귀훈 씨의 재판이 있은 후 곽씨의 주장이 타당하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 후원하자고 마음먹었다. 간담회는 작년에 첫 준비 모임을 갖고 올해 초당파적으로 54명 의원을 규합해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일본 외 거주하는 피폭자들에게도 원호법을 적용시키기 위해 후생노동성에 압력을 넣고, 각종 시민단체들과 함께 캠페인을 벌이며 활동을 하고 있다."

-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 외 피폭자에 대한 원호법 적용 문제를 올해 내에 결정한다고 하는데...
"관료들은 이미 정해놓은 정책을 바꾸기 어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간 후) 좋은 방향으로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물론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이번에 들었던 이야기를 후생노동상을 만나 빠른 시일 내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해결을 촉구할 것이다."

- 이번이 첫 방문인 것으로 아는데... 직접 증언을 들은 느낌은?
"국회의원으로는 처음 왔지만 히로시마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한국인들의 고통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직접 한국을 찾아 생생한 육성을 듣고 대화를 해보니 충격이 아주 컸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최근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쁘다. 적절한 해법을 찾는다면...
"고이즈미 총리의 잘못된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이렇게 관계가 악화돼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원폭 피해자들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된다. 그래야 전후 보상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도 원할하게 된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문제는 전후 보상문제라는 큰 틀에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적용되고 해결돼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무엇보다 원폭 피폭자들의 나이가 고령이어서 '무조건 기다려'라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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