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킹 와퍼 판매 종료 공지

▲ 버거킹 와퍼 판매 종료 공지 ⓒ 버거킹

 
끝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20년을, 세상 모든 버거 가운데 제일이라 여겼던 나다. 저기 어디서 세상 유명하다는 버거가게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떠들썩할 때에도 나는 버거의 제왕은 역시 와퍼라고 우겨대었던 것이다. 못해도 보름에 하나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은, 해외에 나가서까지도 찾아먹었던 와퍼를, 그러나 나는 접기로 결심했다.
 
8일 오전 9시, 버거킹이 '40년 만에 와퍼 판매를 종료합니다'라고 공지를 띄웠다. 이게 무슨 소린가 눈을 비비고 보았으나 '40년 사랑에 감사한다'는 이야기 뿐. 나는 또 하나 벗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어째서 보름에 두 개를 먹지 못하였는가를 질책하며, 왜 친구들에게 더 많은 와퍼를 먹여주지 못하였을까 후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쉬운 대로 친구들과 와퍼데이를 잡고서 그날부터 며칠 연속으로 와퍼를 먹기로 하였는데, 이 모든 게 마케팅이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기사를 통해 쏟아졌던 일이다.
 
새단장을 앞둔 가짜뉴스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했는지, 또 이런 마케팅을 기획하고 승인한 이들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이는, 또 학창시절부터 와퍼와 함께 희노애락을 누려왔을 적지 않은 나의 동지들은 이 브랜드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가까운 이 가운데 몇이 삼 개월이며 육 개월이며 일 년까지도 와퍼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였고 온라인 상에서도 이와 같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 경우엔 정도가 좀 더 심해서 아예 와퍼를 영영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사람의 애정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마케팅을 하는 회사의 버거라면 사나이의 최애버거가 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와퍼와의 동행에 종지부를 찍으며
 
파운더 스틸컷

▲ 파운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20년 동행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와퍼를 씹던 날, 나는 집에 들어와 영화 한 편을 틀었다. 내게 와퍼단종 마케팅을 접했을 때와 비슷한 감상을 안긴 영화 <파운더>였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이자 버거업계의 신화이며 한국에서도 업계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는 '맥도날드'의 성공신화를 다룬 바로 그 영화다. 선을 넘는 자와 넘지 않는 자의 이야기, 개척하는 자와 지켜내는 자의 이야기, 그로부터 본질과 야망, 성공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파운더>라는 영화가 가진 특별함이다.
 
'Based on true story', 즉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을 명시하며 시작하는 이야기는 맥도날드라는 브랜드를 비롯하여 이 브랜드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흥미롭게 그려낸다. 배경은 1954년 미국이다. 쉰 두 살의 세일즈맨 레이(마이클 키튼 분)는 쉐이크 기계를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식당들에 기계를 선보이고 팔아치우는 게 그의 일이라지만 기계는 좀처럼 팔리지를 않는다. 사업이 되겠다 싶으면 온갖 물건을 들고 은행을 찾아 대출을 받고서는 일을 벌려왔던 레이다. 어느덧 쉰을 넘겨 그다지 비전이 없어 봬는 쉐이크 기계 세일즈맨을 하고 지내는 게 마뜩찮을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그의 눈에 맥도날드란 식당이 들어온다. 쉐이크 기계 한 대 팔기가 버거운 상황에 무려 여덟 대나 주문을 해온 특별한 식당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맥도날드에 방문하자마자 레이는 완전히 반해버린다. 주문한 뒤 한참 기다려야 하는 평범한 가게들과 달리 곧바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시스템, 쟁반도 그릇도 없이 포장지에 햄버거를 싸주어서 어디서나 먹고 버릴 수 있는 편의성까지 차별화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레이는 맥(존 캐럴린치 분)과 딕(닉 오퍼맨 분), 즉 맥도날드 형제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한다. 이미 몇몇 점포를 내보았지만 품질관리가 어려워 포기했다는 이들 형제를 레이는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설득한다. 어느덧 한국에서도 어마어마한 시장을 확보한 성공학개론이며 자기계발에 레이는 완전히 빠져 있는 인물, 태생적인 야심가이기도 한 레이의 열정에 마침내 맥도날드 형제는 프랜차이즈화를 결정한다.
 
세계적 기업이 된 맥도날드 성공신화
 
파운더 스틸컷

▲ 파운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성공과 번영을 향한 레이의 왕성한 도전은 큰 변화를 이뤄낸다. 삽시간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주변에 여러 점포를 내고, 꽤나 큰 계약까지도 따냈던 것이다. 점포수도 마치 몇 년 전 대왕카스테라라거나 지난해 탕후루 가게가 생겨나듯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한때는 발로 뛰며 찾아야 했던 가맹점주가 어느덧 줄을 서서 나도 계약하게 해달라고 달라붙을 정도, 전 미국에서 맥도날드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식당이 없었을 만큼 대단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맥과 딕은 레이의 아이디어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다. 직접 수많은 고난을 겪은 끝에 제 이름을 걸고 일으켜 세운 기업이니 맥도날드를 함부로 운영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방침이었다. 빠르게 점포를 늘리는 것보다 하나를 내도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품질이 보장되는 게 우선이라는 이들의 방침이 수시로 레이와 갈등을 빚는다.
 
자금 사정도 문제다. 가맹점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본사가 얼마 이익을 보지 못하는 계약조건부터, 쉐이크를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냉동창고를 유지해야 하는 일들이 하나하나 문제가 된다. 심지어는 코카콜라 같은 브랜드와 협업하여 음료를 준비하는 대가로 광고를 싣는 일까지도 맥도날드 형제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다. 공짜 돈이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레이의 주장에도 맥도날드 형제는 너무 상업적인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원가절감을 위해 아이스크림과 우유 대신 맛이 비슷한 쉐이크 파우더를 쓰자는 제안도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마침내 맥도날드 형제와 레이의 반목이 가시화되고, 레이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대출을 위해 찾은 은행에서 우연히 만난 재정 전문가 해리 손느본(비제이 노박 분)은 레이에겐 귀인과 같은 이다. 그는 스스로 맥도날드의 팬이라고 밝히며, 직접 경영상황을 살펴 레이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다. 맥도날드처럼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자금부족으로 은행을 전전하는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 그가 돈을 벌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돈을 벌 수 있겠느냔 말에 레이는 그에게 내부 자료를 모두 내보인다.
 
햄버거 아닌 부동산, 맥도날드의 전성시대
 
파운더 스틸컷

▲ 파운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해리가 찾아낸 문제는 여럿이다. 계약에 따라 모든 변경사항을 맥도날드 형제의 승인을 얻은 뒤에야 조치할 수 있다는 것, 매출에 비해 수입이 너무 낮다는 것, 그리고 사업의 본질을 레이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마지막 것은 맥도날드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파는 게 아니라 햄버거를 만드는 땅을 파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게 해리의 주장이다. 부동산 회사를 설립하고 가맹점들로부터 오로지 저희 회사와만 점포임대 계약을 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 식당이 성업할수록 부동산 가격이 뛰는 것도 당연지사, 오늘날 맥도날드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업체가 되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맥도날드 형제와의 관계다.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부동산 회사를 차리고, 이 회사를 통해 가맹점주들과 독점적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는 건 맥도날드 형제의 영향력을 완전히 우회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점포 하나를 운영하며 계약상 정해진 지분만 받고 있는 맥도날드 형제와 프랜차이즈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레이 사이의 재정적 격차는 이미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맥도날드 형제는 승산이 얼마 되지 않는 법률싸움을 피해 레이와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고 새로운 계약에 합의한다.
 
<파운더>는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한 맥도날드 설립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파운더를 직역하면 설립자가 된다. 설립자는 일견 중의적 표현으로 읽힌다.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다루는 레이는 맥도날드의 오늘이 있게 한 프랜차이즈와 부동산 업체로의 변신을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설립자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상호명인 맥도날드를 만들어낸 이들, 그 상징은 두 개의 골든아치를 만든 이들, 패스트푸드로써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기틀을 잡은 이들은 어디까지나 맥과 딕이다. 그럼에 이들을 설립자로 보고, 레이가 이들로부터 기업을, 또 자긍심을 빼앗는 이야기로 영화를 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다는 믿음
 
파운더 스틸컷

▲ 파운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여러모로 프랜차이즈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기업 형태라 볼 수 있겠다. 자기 자본이 아닌 가맹점주들의 자본을 끌어와 브랜드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렇다. 서비스의 질이며 가맹점의 수익보다도 점포수의 확장이 더욱 중요한 성공의 요소로 여겨진다는 점도 자본주의의 특성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자연히 프랜차이즈 본사 입장에선 더 많은 가맹점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레이와 같이 야망으로 가득한 이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내실을 기하는 대신 외연의 확장과 성장을 위하여 전력투구하도록 등을 떠밀어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레이는 멈추지 않고 회사를 키워 마침내 맥도날드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패퇴하는 맥도날드 형제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관객도 적지는 않았으리라. 품질을 생각하고, 창업정신을 기억하는 사업가의 태도는 레이 앞에선 그저 구시대의 유물이라거나 고집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맥과 딕에게는 넘어설 안 되는 선이 레이에겐 아무 의미 없이 저를 옭아매는 기준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세상에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다고 믿는다. 넘는 게 이익인 줄 알면서도 넘지 않고 지키는 것을 나는 낭만이라고 말해왔다. 맥과 딕에게 있었던 것, 그러나 레이에게는 없는 것이 바로 그 낭만이다. 수많은 와퍼족을 실망케 하고 내가 와퍼를 등지게 했던 마케팅 또한 그 선을 넘어선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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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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