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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투자의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때가 있는데, 이 모습들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려는 진화론적인 모습이 엿보인다. 인간이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유인원 시절의 진화 단계에 머물러 있는 본능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극복하고 한 단계 발전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내 안의 투자 유인원도 어서 빨리 진화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나만의 생각인데, 나는 네 발로 기고 나무에서 생활하던 최초 인류에서 도구와 손을 쓰는 호모 하빌리스를 거쳐 조금이나마 생각이란 걸 하게 된 호모 사피엔스로 겨우겨우 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너무 후한 평가라면 흔쾌히 다시 주워 담을 수 있긴 한데, 낙관적이고 싶은 나 혼자만은 내심 그렇게 믿고 있다. 2020년 3월 말. '잘 모르겠고 질러!'라던 마음을 '편하게 투자하자'던 마음이 이긴 날. 나는 확실히 생존에 유리한 위치로 한 발을 내디뎠다. 

처절했던 진화의 과정

진화의 과정이 포켓몬처럼 화려하진 않았다. 오히려 처절했다. 일전에 10원 하락에 손절했던 2008년의 경험을 얘기한 적이 있다. 최초의 주식 투자. 떨렸던 손과 요동치던 심장이 아직도 생생하다. 총 평가 손실 160원. 내 얘기를 들은 이들의 안쓰러운 눈빛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만큼 미숙했고 겁이 많았다.

당시 발을 들였던 주식 시장은 뭔가 미지의 숲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포식자가 널려있고 독버섯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위험천만한 미지의 숲. 하지만 난 그런 위험한 것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실수로 떨어뜨린 돈이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반만 남아 돌아왔을 때, 옛 성현들의 말씀을 되새기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식하는 거 아이다, 내 망하는 사람 여럿 봤다 아이가..." 보란 듯이 수익으로 반박하고 싶었는데,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주식 시장을 다시 찾았을 땐, 약간은 흥분되고 조금은 비장했더랬다. 어쩌다 보니, 아이가 넷. 돈을 불러야 한다는 절박함이 극에 달했고, 잘 할 수 있을 거란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무모한 용기는 초심자의 행운과 만나 이전에 느꼈던 두려움이 짜릿함이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10원에 손절했던 개미의 간땡이는 그렇게 날이 갈수록 커졌다.

빙하기를 거치며 나무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해 지상 생활을 했던 초기 인류처럼, 월급만으론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급등주를 따라 잡다 수없이 넘어졌고 테마주를 잡기 위해 팠던 함정에 내가 빠져 곤욕을 겪었다. 그러다 결국, 반복되는 뼈아픈 경험에 마지못해 지표와 리포트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으로의 진화였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공들여 조사한 정보와 전망은 맨 몸으로 헤쳐 나가던 숲에서 사냥 도감과 지도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자연히 위험한 곳은 피하게 되었고 감당할 수 없는 사냥감은 건드리지 않게 됐다.

하지만 다년간 숙련(?)된 사냥 습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종목을 사도 어느샌가 팔리고 없었고 그와 동시에 어느 틈에 사 들여진 종목은 어떤 연유로 내 계좌에 들어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매번 놀라지만, 그저 전망이 좋다는 이야기에 계좌에 진열해둔 종목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그리고 빵! 코로나가 터졌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히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달래도, 단기간에 큰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은 자고 일어나면 자라나는 잡초와 같아서 잠시만 방치하면 온 생각을 뒤덮어 버린다. 그래서 판을 키웠다. 기회라는 생각에 신용대출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모두 끌어모으고는 주식 담보 대출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세상은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고도 했던 걸 까먹었다. 무리하게 키웠던 1억 2000만 원의 레버리지는 수익의 짜릿함을 주기도 전에 손실의 아픔을 한 보따리 가져다주었다. 막연한 기대에 한껏 기댄, 안일했던 행동은 집안의 기둥을 장작으로 쓰겠다고 도끼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느 정도껏 빠져야지... 주가 지수는 모든 전문가들의 예측을 깡그리 무시하고 바닥을 지나 지하 1, 2층을 시원하게 뚫고 내려가 버렸다. 하기야, 언제 주식 시장이란 녀석이 전문가들 눈치를 본 적이 있었나. 멋모르고 식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우리 애가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라는 부모처럼 난처해 하는 전문가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나 역시, 그제서야 알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접고 심각하게 반성을 시작했다. 4000만 원의 손실을 안은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또 다른 진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진화의 결과

진화를 거쳤다고 해서 그리 큰 발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제야 동물처럼 반응하던 모습에서 조금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됐다고 봐야겠다. '이러다 골로 가겠는 걸...' 하는 진정한 위기감. 한마디로 '시~게' 데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한 가지 확실한 변화는 있었다. 바로 주식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분명 주식 시장은 제멋대로인 그 모습 그대로인데, 내 눈에 비치는 주식 시장은 이전과 많이 다르게 보였다.

'잘' 예측할 수 없는 반항기의 청소년 같았던 주식 시장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갓난아기로 보인다고 해야 하나. 사력을 다해 이해해 보려던 노력 대신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대함 비슷한 것이 생겼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부모가 된 것처럼, 기대를 섞지 않으니 욕심이 줄었고 허황된 믿음을 애써 누르니 실망할 일도 줄어들었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 월등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편안함 속에서 복구한 손실은 수익보다 몇 배는 값졌다.
  
기대는 재빨리 꺼트려야...
 기대는 재빨리 꺼트려야...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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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진화할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모든 실패는 시행착오로 분류한다. 진정 실패했다면 이미 멸종했어야 했기에 이를 학습이나 발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모든 경험은 진화를 위한 학습이다. 그리고 실패의 순간은 미래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가장 값진 경험이다. 아직 주식 시장에서 생존하고 있는 우리는 발전하고 있는 거다. 간땡이가 붓는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진화는 계속됐다.

다시 생각해보니 포켓몬의 화려한 진화도 그 계기는 시련이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바람과 소중한 이를 지켜주고 싶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성장. 나 역시도 계좌를 견실하게 만들고 가족을 지켜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많은 투자자들이 감당 안 되는 주식 시장에서 적응 중이다. 혹시 지금 부대끼거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진화의 단계에 들어 선 것일지도 모른다. 고민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매일의 성장이 진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제는 진화에 순응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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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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