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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그냥 저냥 예쁘다. 빼어난 미모를 소유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두렷한 이목구비에 하얀 피부를 가졌다. 특히 커다란 눈을 살짝 닫고 입을 시원하게 옆으로 늘려서 웃는 모습은 다른 사람도 따라서 미소 짓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는 감기약 광고에 나왔던 아이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었다. 사진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사진하나 올리면 될 것이지만, 가족은 건드는 것이 아니기에 오로지 나의 미화된 판단에 근거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 누나와 내가 서울에서 함께 생활했을 때다. 새벽같이 나가는 누나와 다르게 나는 언제나 밤늦게까지 젊음을 불태우곤 재가 되어 늦게 일어났다. 어릴 때부터 잘 맞지 않았던 우리가 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잘 맞지 않는 이 생활패턴 덕분이었다.

잘 맞지 않는 남매 말곤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에게 서울은 박한 도시였다. 저렴한 월세를 찾아 자리 잡은 곳은 누나의 직장과 나의 학교 어디에도 가깝지 않았다. 나는 종종 수업 시작 1시간 전에 일어나 등교를 포기했고 누나는 매일같이 출근 2시간 전에 집을 나갔다.

그렇게 잠이 많던 누나는 사회인이 되고선 부지런해졌다. 매달 용돈을 받아쓰기에 가끔 입에 발린 아부를 하긴 했지만, 변한 누나의 부지런함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그 감탄이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내뱉은 탄성에 불과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라이터, 그을린 면봉... 누나, 뭐해?
   
누나? 왜 그러는 거야? 이 새벽에?
▲ 면봉을 그을리고 있는 누나 누나? 왜 그러는 거야? 이 새벽에?
ⓒ copilot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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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밤을 지새운 뒤 첫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날이었다. 이른 새벽인데 누나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TV 소리도 들리기에 다 켜놓고 잠들었나 싶어 슬쩍 누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목격했다.

누나는 무슨 의식을 행하는 사람처럼 라이터 불로 면봉을 그을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 위험해 보이는 물건을 눈으로 가져갔다. 아, 안 돼! 하고 외치기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빠른 동작이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인자 왔나?"
"누나 뭐하는데?"
"출근 준비."
"....라이터랑 면봉으로?"
"눈썹 올리는 건데, 와?"
"눈썹? ...근데 이 시간에?"
"그라모, 지금 해야 출근을 하지."


나로서는 처음 보는 방식의 화장도 놀라웠지만, 그 행위를 이 시간에 하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었다. 몰랐다. 출근 4시간 전에 일어나서 2시간 동안 화장을 하는 줄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데 왜 못생겨졌던 거지?'

누나의 성격을 알기에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못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2시간을 화장했다고? 백화점에서 일했던 누나, 그렇기에 다소 과한 화장은 익숙했지만 그 화장이 그만큼의 공을 들인 결과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애써 공들여 못생겨(?)지다니. 어째서?

나의 시선이 불편했던지 누나가 던진 "가서 디비자라"는 말에 떠밀리듯 나오기는 했지만, 그 심리상태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변장인가? 아니면 놀이? 도통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누나는 맨 얼굴이 훨씬 예뻤다. 어릴 적 나를 괴롭히고, 줬던 걸 뺏어 갔던 숱한 사건을 되뇌어도 화장기가 없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퇴근한 누나를 볼 때마다 '오늘도 2시간의 결과냐'고 물었고, 누나의 당연하다는 끄덕임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나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아지려는 자를 비웃지 말 것 

요즘 내가 회사에서 누나가 했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지켜봐 주는 사람도 없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딱히 티나게 성과를 드러내 보일 수도 없는 일. 정해진 답이 없는 결정을 위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순간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순간
ⓒ copilot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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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장문의 메일을 주고받고 이곳저곳에 문의전화를 돌린다.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거절로 인해,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일을 하면서 '이걸 왜하고 있나' 싶은 생각을 하루에 서른네 번 정도하는 것 같다. 분명 일에는 진전이 있는데 쏟아 부은 노력에 비하면 얼마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대충할까 싶은 유혹이 물결치던 어느 날, 무심히 읽던 공지 메일의 말미에 적힌 한 문장이 유혹의 물결에 흔들리던 내 마음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Don't make fun of people who are trying to better themselves."
(스스로 나아지려는 사람들을 조롱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노력을 존중하라는 말. 순간, "사람들"이 "자신"으로 바뀌어 보였고, 조금 더 나아지려 고군분투하는 스스로를 조롱했던 내 자신이 보였다. 그랬다. 노력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되는 거였다.

2시간 화장해서 못생겨지기(?)도 하는데, 많이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일인데 의심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혹여 그 결과가 더 못나지는 것이라 해도, 잘해보려 노력했던 누나를, 나 자신을 조롱할 필요는 없을 테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최선에 답이 어디 있나?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지. 타인이든 나 자신이든, 더 이상 답답해하지도 조롱하지도 않기로 했다.

정성스레 그을린 면봉을 들고 있던 누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썩 괜찮은 롤 모델을 곁에 두고서도 잘 배우지 못한 게 아니었나 싶다. 쩝, 누나 미안.

정말이지, 시작하면 끝을 보는 누나 

백화점 일을 하지 않게 된 후부터 누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게 덕지덕지 챙겨 바르던 갖가지 화장품과 관리 용품 대신에 요즘엔 온 몸에 근육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다. 자형의 권유로 시작한 테니스에 푹 빠진 덕분이다.

지난여름에 누나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얼굴을 제외하고 드러난 부위가 온통 까맸다. 구릿빛도 아니고 정말로 새까맣게 그을린 누나를 보고 한 10분은 잔소리를 퍼부은 것 같다. 그 하얗던 피부가 그렇게 까매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되도록 땡볕에서 뛰어다닌 누나가 더 신기했다. 정말, 누나는 뭐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누나는 요즘 어디선가 계속 메달을 따온다. 매달 들려오는 메달 소식을 듣고 있자니, 2시간 동안 화장하던 누나가 떠오른다. 혀를 차고 타박했지만 까만 몸에 하얀 얼굴만 둥둥 떠서 해맑게 웃던 누나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스스로 나아지려는 자. 누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아무튼 옅은 화장을 한 요즘 누나는 짙은 화장을 했던 한창 때보다 훨씬 예쁘다. 살이 너무 많이 빠져 통통했던 볼은 사라졌지만,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하는 건지 '엄마스럽게' 예뻐지고 있다. 중간이 없는 이 롤모델을 이번에는 좀 본받아 보려한다. 누나가 받는 메달이야 못 받겠지만, 매달 받는 월급은 당당히 받을 수 있겠지.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제는행복한중년, #최선, #자기만족, #누나,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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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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