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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업무를 마무리하려는데 메일이 도착했다. 

"OO평가 낙제 인원 재시험 일정 안내."

낙제. 낯선 단어에 잠시 멍해졌다. 마흔에 낙제라니. 살면서 낙제를 해본 적이 있던가? 불합격의 동의어가 낙제이니 숱하게 해 본 것이긴 한데, 마흔과 낙제는 뭔가 새로웠다. 나도 모르게 헤픈 웃음이 나왔다.
 
당황하면서도 당당하게
▲ 마흔의 낙제 당황하면서도 당당하게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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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4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시험을 치르면서 불안했다. 알듯 모를듯하면서도 애매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쓴 답을 고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불운을 맞이할 때의 아찔한 느낌이 떠올랐다.

마치 사과를 따는데, 사다리가 없어 의자 위에 의자를 놓고 까치발을 들고 있는 느낌. 답안지를 걷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답안을 제출하며 요행을 빌었다. 손끝에 닿아 떨어졌던 무엇이 제발 잘 익은 사과이길 바라면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동기들이 주고받는 정답과 오답의 정보 속에서 불안하던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대화는 불안함을 확신으로 변모시켰고 요동치던 내 마음을 얼려버렸다. 남의 심정도 모르고 마흔이 되어서도 시험 보고 답 맞춰보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은 어릴 때도 미웠지만 지금도 밉다.

현실 극복은 마음으로부터

불길한 예상이 들어맞을 때 우리는 해탈한다. 마치 삼라만상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듯 한없이 여유롭고 너그러워진다. 그럴 수 있다는 당위성을 피력하며 이는 삶의 한 부분일 뿐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애써 가볍게 대할 수 있게 된다.

내 안의 부처가 따로 없다. 나 역시 그 오래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꺼내와 낙제 한 번으로 변하는 건 없다고 믿으려 했고 그렇게 얘기했다. 나의 능청스러움에 모두가 웃었고 약간의 시간 차를 거쳐 내 웃음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전에 낙제를 받았다는 후배의 고백에 웃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역시 사람은 남의 불행에 즐거워하면 안 된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왜인지 그 후배는 웃었다. 그것도 소리 내어. 아주 행복해했다.

아마도 진정한 동료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낙제라는 청천벽력에 많이도 당황했던 그를 그럴 수도 있다며 위로했는데, 나의 낙제가 말뿐만이 아닌 현실 위로가 되었다. 나의 불행이 남의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사회공헌엔 많은 길이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리고 나의 낙제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당당한 낙제였음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지켰던 일말의 자존심이 묻어 있는 결과다. 누군가는 강의 자료를 보고 시험을 보았고 누군가는 메모한 것을 들춰보았다고도 했다. 심지어 내 뒷자리의 동기는 뒤에서부터 걷어져 온 답안지를 보고 빈칸을 채워 넣었다.

마흔의 시험도 학창 시절의 시험과 다르지 않았다. 커닝이 난무했고 뭐든 할 만큼 절실함은 극에 달했다. 낙제가 무슨 자랑이겠냐마는 적어도 나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속이지 않았다. 성적은 낙제였지만 성정은 합격이라고 할까. 누군가의 코로 나오는 방귀 소리도 들리고 철없는 합리화 같기도 하지만, 낙제로 스스로를 검증했음에 나름 큰 의미를 두려 한다.

불행도 추억으로 바꾸는 재주

이 철없는 '마흔이'는 거기다 한 가지 생각을 더하는데,

'와! 마흔에 낙제라니, 이거 글로 쓰면 재밌겠는데...'

그렇게 자괴감이나 부끄러움을 건너뛰고 즐거움이라는 감정의 선택지에 진한 마킹을 했다. 현실에선 심각해서 재미있을 수 없는 일들이 글로 옮겨지는 순간 이야기가 된다.

위태로운 순간은 흥미를 돋우는 조미료가 되고 의도하지 않았던 수많은 감정은 곱씹을수록 삶을 영양가 있게 만든다. 자기방어적 합리화와 글을 쓰는 생활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아마 머리를 쥐어뜯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모자란 자신에 대해 낙담하고 있지 않았을까. 

낙제 메일을 받은 순간 당황하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합리화와 글 쓰는 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테다. 자주 깨닫고 또 자주 잊어버리지만, 처한 상황이나 보는 관점에 따라 마음은 참으로 다양하게 반응한다.

덕분에 내 마음은 오늘 하루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간사한 이 마음을 나 좋을 대로 이끄는 철없음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재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기를.... 뭐.. 안 되면 또 쓰지 뭐. :)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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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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